​[판례로 보는 세상] ‘싸우면 무조건 전과자?’…정당방위 인정 기준에 대해

  • 대구지방법원 상주지원 2017년 10월 31일 선고 2017고단227 판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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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광진 변호사 
입력 : 2017-12-26 06:00
수정 : 2017-12-26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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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들어가며

“지금부터 정당방위다.”

많은 사람들로부터 사랑을 받은 영화 ‘베테랑’에서 유아인(조태오 역)에게 계속된 폭행을 당하다가, 황정민(서도철 역)이 반격을 가하기 전에 내뱉은 말이다. 그리고는 두 사람은 엉겨 붙어 서로 폭행을 주고받다가, 결국 유아인은 황정민에게 체포를 당한다. 황정민의 행위, 과연 정당방위일까?

이번 판례는 친구끼리 술자리 후 시비가 붙어 싸움이 발생했지만, 정당방위로 무죄를 선고받은 사건이다. 정당방위를 이해하기 위한 기초적 케이스로 적절해 보이므로 소개하기로 한다.

2. 사실관계

2016년 7월 31일 고등학교 동창생인 이길정(가명)과 하안식(가명)은 술을 마시기로 했고, 그 자리에는 이길정의 아는 여자 동생 소선명(가명)도 같이 나오게 됐다.

셋이서 1차로 술을 마시고 하안식이 계산을 하고, 2차 술자리에서 술을 마신 후 또 하안식이 계산을 했다. 계산할 때 이길정과 소선명은 서로 귓속말을 주고받으며, 돈이 없다고만 해서 하안식은 기분이 상해있었다.

하안식이 이길정에게 “너희 둘이 가라, 나는 가겠다”고 말했다. 이길정은 “왜 그러냐”고 하면서 그렇게 실랑이 중에 갑자기 하안식이 이길정의 손목을 꺾어서 꽉 잡았다. 이길정은 하안식보다 체구가 왜소해 체력적으로 열세였기에 손목이 꺾인 채로 한동안 잡힌 손목을 떼 내려고 발버둥치고 있었다.

차 안에서 이 모습을 지켜보던 소선명이 다가와서 제지하려고 했지만, 힘이 부족해 쉽지 않았다. 그러다가 힘에 밀린 이길정이 얼굴을 바닥에 거의 닿은 상태로 도로에 전도됐으며, 하안식이 이길정의 위에서 이길정의 손목 등을 장악한 채 일어나지 못하도록 하여 누르고 있던 상황이었다.

이길정은 손목을 하안식에 의해 장악당한 상태에서 일어나기 위해 발버둥을 쳤다. 이 과정에서 하안식이 뒤로 밀리면서 식당건물의 셔터에 머리를 부딪혔다. 그 순간 출동한 경찰관에 의하여 상황이 종료됐고, 이길정과 하안식은 서로 폭행을 당했다며 고소를 했다.

이 사건으로 이길정은 90일 간의 치료를 요하는 ‘우측 완관절 주월상골간 인대 파열’의 상해를 입었다. 하안식은 치료기간을 알 수 없는 오른손 소지의 염좌, 왼쪽 다리 및 얼굴, 목 등에 찰과상의 상해를 입었다.

검찰에서는 이길정과 하안식이 서로 폭행을 가한 것(쌍방폭행)으로 보고, 두 사람에 대해 각 상해죄로 기소했다.

이에 대해 이길정의 변호를 맡은 필자는 이 같이 주장했다.

“하안식이 이길정의 위에서 손목을 꽉 잡고 누르고 있던 상황이어서 빠져나오기 어려운 상황이었고, 이런 상황에서 이길정이 하안식을 밀거나 넘어뜨리는 방법 외에는 달리 회피수단이 없었다고 보여진다. 그러므로 열세적 상황에서 하안식의 폭력에서 벗어나고자 부득이하게 밀어 넘어뜨린 것은 소극적 저항행위로써 정당방위 또는 사회상규에 반하지 않는 정당행위다.”

3. 판결요지

재판부는 이길정에 대한 상해죄에 대해는 정당방위로써 무죄를, 하안식에 대한 상해죄에 대하여는 유죄를 각 선고했다. 재판부의 판결은 아래와 같았다.

“이 사건 공소사실은 피고인 이길정이 하안식과 함께 땅바닥에 넘어졌다가 일어서면서 하안식을 밀어 뒤로 넘어뜨려 상해를 가했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 사건 변론 및 기록에 의하면, 이길정과 하안식은 단순히 함께 땅바닥에 넘어진 것이 아니었다. 즉 기분이 상한 하안식이 갑작스레 이길정을 공격하는 바람에 실랑이가 있었고, 그러다가 이길정이 얼굴을 바닥에 거의 닿은 상태로 도로에 전도됐다. (중략) 이와 같이 이길정은 하안식에게 등을 보인 채 사실상 결박당한 상태에서 벗어나기 위해 강하게 움직였다. 이길정이 자신의 신체에 대한 부당한 침해로부터 벗어나기 위한 행동의 일환이지, 이를 두고 이길정이 하안식을 위법하게 폭행했다고 볼 수는 없다. (중략) 이길정의 행위는 그 이유 및 유형력 행사 방법, 정도 등에 비춰 사회적으로 상당성 있는 행위라고 할 것이다. 따라서 이길정의 행위는 형법 제21조 제1항의 정당방위에 해당하여 위법성이 조각된다.”

재판부는 이길정의 행동은 그 행동의 이유 및 유형력 행사의 방법, 정도 등에 비추어 사회적으로 상당성 있는 행위이므로 정당방위에 해당한다고 본 것이다. 다시 말해 자신의 신체에 대한 부당한 침해로부터 벗어나기 위한 행동인 것이지, 위법한 폭행은 아니라는 취지다.

4. 판결의 의의

위 판결은 정당방위의 요건을 합리적으로 해석해 싸우면 무조건 쌍방폭행이라는 오해를 경감해 줄 좋은 예시라고 볼 수 있다.

우리 형법 제21조 제1항은 “자기 또는 타인의 법익에 대한 현재의 부당한 침해를 방위하기 위한 행위는 상당한 이유가 있는 때에는 벌하지 아니한다”고 정당방위의 근거를 규정해두고 있다.

정당방위가 성립하기 위해서는 △현재 부당한 침해가 있을 것 △자기 또는 타인의 법익을 방위(방어)하기 위한 행위일 것 △상당한 이유가 있을 것 등의 조건이 필요하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아무래도 ‘방어하기 위한 행위’인지 여부, 그리고 ‘그 행위가 상당성이 있는지’ 여부일 것이다.

위 사건에서 이길정은 다리를 걸거나 또는 밀어서 하안식을 넘어뜨렸다. 이러한 이길정의 행위를 공격의 의사가 담긴 공격 행위로 봐야 할지, 순수한 방어의 목적으로 한 방어 행위로 봐야 할지 의문이 있다.

종전의 상황을 되짚어보자. 하안식이 이길정의 손목을 꺾으며 선제적 폭행을 가했다. 이길정이 도로에 넘어진 상황에서 하안식은 이길정을 사실상 결박한 상태로 위에서 제압하고 있던 중이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이길정이 하안식의 다리를 걸거나 밀어서 넘어뜨린 것은 계속된 하안식의 공격행위를 모면(방어)하려는 행위로 해석하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

그렇게 넘어뜨린 후에도 이길정은 하안식을 폭행하지 않았다. 이러한 점을 종합하면, 이길정이 하안식을 공격의 의사로 밀어 넘긴 것은 아니라고 보는 것이 맞을 것이다. 그래서 재판부는 공격행위가 아니라고 봤다.

사실 구체적 싸움 양태에 있어서, 공격과 방어는 수차례 교차되며 하나의 행위에 공격의 의사와 방어의 의사가 함께 담긴 경우가 많다. 수사기관에서 싸움의 경우를 쌍방폭행으로 처리하는 경우가 많은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 따라서 일선 수사를 책임지고 있는 경찰청은 판례분석을 통해 아래와 같이 정당방위 판단요건을 특정하고, 폭력사건 정당방위 처리지침도 만들었다.

<경찰청 폭력사건 정당방위 인정요건>

일반적으로 아래의 요건을 충족 할 경우 정당방위로 처리.

1. 침해행위에 대해 방어하기 위한 행위일 것.
2. 침해행위를 도발하지 않았을 것.
3. 먼저 폭력행위를 하지 않았을 것.
4. 폭력행위의 정도가 침해행위의 수준보다 중하지 않을 것.
5. 기타 위험한 물건을 사용하지 않았을 것.
6. 침해행위가 저지되거나 종료된 후에는 폭행행위를 하지 않았을 것.
7. 상대방의 피해정도가 본인보다 중하지 않을 것.
8. 치료에 3주(21일)이상을 요하는 상해를 입히지 않았을 것.​


그 다음, 방어행위일지라도 그 행위가 ‘상당’해야 한다. 상당하다는 의미가 다소 모호할 수 있다. 방어행위의 방법과 정도가 ‘사회상규에 비춰 봤을 때 납득이 될 정도’를 의미한다고 보면 된다.

예를 들어 자신을 추행하려는 사람에 대하여 칼로 찌르거나 총으로 쏴서 사살하는 경우는 정당방위가 성립되지 않는다. 방위행위가 상당한 정도를 넘었기 때문이다.

위 사건에서 이길정은 하안식의 다리를 걸거나 밀어서 넘어뜨렸을 뿐, 추가적 폭행도 없었다. 또한 흉기 등 위험한 물건으로 폭행한 것도 아니었으며, 결과적으로 하안식도 중한 상처를 입지도 않았다. 그렇다면 이길정의 행동은 제3자의 입장에서 당시 상황을 고려했을 때 납득이 갈만한 행동으로 보여지는 것이다.

참고로 유명한 2개의 판례가 있다. 2014년도에 집주인(22세)이 집안에 침입한 도둑(55세)을 알루미늄 재질의 빨래 건조대로 여러 차례 때려 뇌사 상태에 빠뜨린 사건이 있었다(결국 피의자는 사망). 1심 법원부터 대법원까지 모두 이 행위를 정당방위로 인정하지 않았다.

1989년도에는 남자 2명이 인적이 드문 심야에 혼자 귀가중인 여자 1명에게 달려들어 양팔을 붙잡고 담벽에 쓰러뜨린 후 무릎으로 차고 억지로 키스를 하려고 하자, 여자가 남자의 혀를 깨물어 설절단상(혀가 잘려나감)을 입힌 사건이 있었는데, 이 경우 정당방위를 인정했다.

5. 나가며

두 사건의 결론에 납득이 간다면, 정당방위에 대한 ‘감’이 어느 정도 생겼다고 볼 수 있다.

그렇다면, 처음 언급했던 영화 ‘베테랑’에서 황정민의 행동은 정당방위로 볼 수 있을까. 필자의 생각은 “아니오”다. 공격행위인지 방어행위인지 불분명하며, 때려도 너무 많이 때렸고 다쳐도 너무 많이 다쳤다. 순수한 방어행위로 보기 어렵고, 상당성도 없다. 정당방위의 본질은 순수한 자기방어 행위다.

지인들이 누가 시비를 걸어온다면 어떻게 대처해야 되냐고 많이 물어본다. 답은 “그냥 맞고 있어라(피하기만 해라), 그리고 빨리 경찰에 신고하라”인 것 같다.

기껏 정당방위를 설명해놓고 맞고 있으라니, 김빠지는 소리라고? 정당방위는 정당방위일 뿐, 각종 시비, 사고에는 현명하게 대처하길 바란다.

[남광진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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