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法사각지대 제천화재①] 2009년 정부 안일이 火 키웠다

가연성 외장재 사용 금지법, 국회 속기록 살펴보니

권도엽 전 국토부 차관 "아주 제한적 규제 해야" 반대

'사고→땜질식 막기' 반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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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연합뉴스]


가연성 외부마감재로 순식간에 불길이 번졌다. 불법 주차로 소방차 진입이 지연돼 화를 키웠다. 대형 화재 사고의 똑같은 문제점은 계속해서 되풀이된다. 사고가 날 때마다 '땜질식' 안일한 대처를 해온 결과 이번 제천 스포츠센터 화재에서도 '대참사'를 불러일으켰다. 특히 화재 시 불쏘시개 역할을 해 화재를 급격히 확산시키고 유독가스 질식으로 인한 인명 피해 규모를 키우는 가연성 마감재의 사용을 금지하기 위한 법안 개정의 시도는 2009년부터 꾸준히 있었다.

2009년은 이명박 정부는 서민 주택난 해소를 위해 도시형 생활주택으로 규정된 각종 건축물에 대한 규제를 완화하던 때였다. 서민 주거의 안전성을 위해 마련된 '규제 완화'는 투자 및 개발에 초점이 맞춰지면서 건물의 안정성이나 주거의 질을 낮추는 결과로 되돌아 왔다. 규제 완화를 틈타 건축업자들이 싼 외장재를 사용해 마감이 쉬운 드라이비트 공법으로 건축물을 짓기 시작했다. 그 결과 한국내화건축자재협회에 따르면, 국내 가연성 단열재 사용 비율은 68%로 △미국 9% △일본 25% △유럽 33%에 비해 압도적이다.

국회와 정부는 참사를 맞았을 때마다 규정을 조금씩 강화했지만 그 시도는 이명박·박근혜 정부의 건축 규제 완화 정책, 외장재 업계 및 건축업계의 로비와 맞물려 번번이 무산되거나 지연됐다. 난연 및 준불연 단열재를 생산하는 업계에 피해가 가며, 모든 건축물에 일괄적으로 소급 적용하기에는 공사비 부담 등으로 과도한 규제라는 게 이유다. 실제 [법과 정치] 취재팀이 국회 속기록을 검토한 결과 제천화재참사는 정부의 안일함이 빚은 '예정된' 재앙이었다.
 

질의하는 강창일 의원. [사진=연합뉴스]


◆ 2009년 '6층 이상 건물 강창일안' 논의 당시, 국토부 차관 반대

2009년 건축물의 일반적인 외부마감 재료에 대해서는 어떤 제한규정도 없었다. 따라서 같은 해 4월 8일 강창일 더불어민주당 의원(당시 민주당)은 △층수가 6층 이상인 건축물 △연면적이 3000㎡ 미터 이상인 건축물 △그 밖에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용도 및 규모의 건축물에 가연성 외부 마감 재료 사용을 금지하는 '건축법 일부개정법률안'을 대표 발의했다. 아울러 이를 위반한 공사시공자, 그 재료사용에 책임이 있는 건축주, 설계자 및 공사감리자에 대해 2년 이하의 징역 또는 1000만원 이하의 벌금을 물리도록 했다.

즉, 불연 또는 준불연재료 등 방화에 지장이 없는 재료를 사용하도록 한 것이다. '불연재료'는 불에 타지 않는 재료로서 20분간 가열(750°C) 시 자체 열 발생이 적으며(50°C 미만), 10분간 가열(350°C) 후 잔류 불꽃이 없는(30초 미만) 재료다. 콘크리트, 석재, 벽돌, 기와, 석면판, 철강, 알루미늄, 유리, 시멘트모르타르, 회, 그라스울, 미네랄울, 시멘트한, 석고시멘트판, 섬유시멘트판, 압출시멘트판 등이 있다. '준불연재료'는 불에 잘 타지 않는 재료로서 10분간 가열(350°C) 후 잔류 불꽃이 없고(30초 미만), 그 재료의 연소가스 속에 방치된 쥐가 9분 이상 활동하는 재료로써 석고보드, 목모시멘트판, 펄프시멘트판, 미네랄텍스 등이 이에 해당한다.

그러나 구체적인 적용 건축물의 용도 및 종류는 국토부의 강한 반발로 '대통령령으로 정하도록' 수정해야 했으며 건축주, 설계자 등에 대한 처벌 규정은 그 범위를 좁혔다. 국토부의 '반대 기조'는 당시 속기록에서도 여실히 드러났다. 2009년 9월 21일 국토해양위원회(현 국토교통위원회) 소위원회에선 강 의원의 건축법 개정안을 단 7분간 논의했다. 당시 권도엽 국토해양부 제1차관은 "외장재를 불연 또는 준불연재로 사용하는 사례는 그렇게 많지 않은 것 같다"면서 "검토를 하고, 제한적으로 시행하는 게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국토위 전문위원실 또한 "'강창일안' 그대로 확정될 경우 외부마감 재료에 대한 사용제한 규정이 처음으로 도입되는 점을 고려해 적용대상과 대상별 사용재료에 대해 보다 구체적인 검토를 통해 그 범위와 내용을 대통령령으로 반영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검토보고 의견을 내놓자, 대표 발의한 강 의원 역시 이를 수용해 검토 후 하위법령에서 정하도록 했다. 후퇴한 수정안은 그해 12월 8일 재석 169인 찬성 167인, 기권 2인으로 본회의를 통과했다.

다음은 2009년 9월 21일 국토해양위원회 소위원회 속기록 중 강창일 민주당 의원의 '건축법 일부개정법률안' 관련 논의를 재구성한 내용이다.

○임병규 수석전문위원=적용 대상 건축물로는 6층 이상 건축물, 연면 3000㎡ 이상 건축물, 그 다음에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용도 및 규모의 건축물 이런 것입니다. 수정의견으로는 외부마감재로 제한 적용 대상 건축물의 용도와 종류, 그 대상별 재료에 대해서 이번에 처음 도입하는 것이기 때문에 구체적인 검토를 통해서 대통령령으로 일부를 위임하는 것이 좋지 않겠느냐는 그런 의견을 냈습니다.

○권도엽 국토해양부제1차관=외장재에 대해 불연 또는 준불연재로 사용하는 것은 처음 도입하는 것이고 사례가 그렇게 많지 않은 것 같습니다. 그래서 상당히 좀 검토를 해서 시행을 하는 게 좋고 대상도 아주 제한적으로 하는 것이 바람직 할 것으로 생각됩니다. 대통령령으로 하더라도 제한을 하는 게 바람직하다고 보고 건축주 처벌은 건축주는 전문가가 아니기 때문에 대상에서 제외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합니다.

○윤영 자유한국당 의원(당시 한나라당)=차관님, 보통 외장재 쓰는 것은 전부 다 건축주 말을 듣고 하잖아요? 건축주가 하자는 외장재를 쓰는 거지 시행자가 마음대로 쓰는 경우는 없기 때문에 외장재는 보통 건축주가 결정한다고 봐야지요. 안 그렇습니까?

○권도엽 국토해양부제1차관=방화나 그런 부분은 솔직히 (건축주가) 잘 모릅니다. 건축물에 난연재나 불연재로 써야하는 것은 내부마감재가 더 중요하거든요, 내부에서 사고가 나면 문제가 생기니까. 그런데 이 부분에 대해서 건축주를 처벌하는 규정이 없습니다. 왜냐하면, 아름답게 하기 위해 어떤 종류의 재료를 쓰는게 좋겠다는 건 건축주가 이야기할 수 있지만 난연성인지 불연성인지에 대한 판단은 건축주가 하기 어렵습니다. 건축주는 처벌 대상에서 제외를 해야 합니다.

○이용섭 더불어민주당 의원(당시 민주당)=건축주가 아니라 책임이 있는 건축주라고 했기 때문에 문제가 없지 않습니까.

○김성태 자유한국당 의원(당시 한나라당)=건축주를 설계자, 감리자와 동일선상에서 처벌하자는 이야기거든요. 개정안을 조금 완화해야지 똑같이 하는 것은…

○강창일 더불어민주당 의원=화재도 나고 마감재를 그냥 불타는 거로 해서 문제가 생기잖아. 지금 선진강국답게 처음이다 뭐다 이런 이야기 마시고 지금부터 해나가야지. 대통령령으로 정하기만 해도 외부마감재료를 함부로 사용하지 않을테니 좀 더 치밀하게 잘 해주시기를 바랍니다.

◆ '사고→땜질식 막기' 반복…법 사각지대서 치솟은 불길

2009년 안일하게 넘어간 건축법 규정(시행령 61조 △다중이용업 건물 △공장건물 한정)은 두고두고 화근이 됐다. 건축업자들은 싸고 빠르게 지을 수 있는 외장재를 계속해서 사용했다.

2010년 부산 해운대 38층짜리 주거용 오피스텔인 우신골든스위트에서 화재가 발생했다. 4층에서 발생한 불길은 가연성 외장재인 황금색 알루미늄 패널을 타고 20여 분 만에 옥상까지 번졌다. 미래 주거단지임을 자랑하던 마린시티는 일순간 아수라장이 됐다. 정부는 그제야 '30층 이상 건물에 사용하는 외장재는 잘 타지 않는 제품(불연성)을 사용해야 한다'고 건축법을 바꿨다.

'30층 이상 건물'에만 한정적으로 적용한 규정은 또 화근이 돼 소중한 목숨을 앗아갔다. 2015년 10층짜리 의정부 도시형생활주택 '대봉그린아파트'에 큰불이 나 130명의 사상자가 났다. 의정부 화재에서는 연소 속도가 빠른 외장재를 드라이비트 공법으로 시공해 화재가 순식간에 퍼졌다. '대봉그린아파트'는 저층 공동주택에 해당해 규제를 받지 않았다. 정부는 그해 9월 건축물 기준을 '6층 이상, 높이 22m 이상 건축물'로 규제를 한층 더 강화했다.

의정부 아파트 화재 이후 건축법 개정과 정부의 현장 모니터링이 진행됐지만 이번에도 법 사각지대가 있었다. 제천 스포츠센터는 6층 이상 또는 높이 22m 이상인 '다중이용업(운동·위락시설 용도) 건물'로 2009년도 개정안을 적용받아 건축해야 했지만, 법망을 피해갔다. 건축법에 불연성 외장재 관련 조항이 신설된 것은 2009년 12월 19일이고, 개정안은 1년 뒤인 2010년 12월 19일부터 시행됐다. 그러나 제천스포츠센터의 소유주가 제천시청에 건축허가 신청서를 제출한 때는 2010년 7월 29일로, 건축법 개정안이 시행되기 5개월 전 건축허가신청을 하면서 법 적용을 피해갔다.

제천 스포츠센터처럼 법 개정 전 건축 허가를 받은 건물은 모두 시한폭탄인 셈이다. 그러나 정부는 이렇다 할 대책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이미 지어진 건물 외장재를 전면 교체하는 것은 막대한 비용이 들기 때문이다. 국토부에 따르면, 30층 건물 한 동의 외장재를 모두 교체하려면 약 35억원이 소요된다.

일단 정부는 제천 스포츠센터 화재 등에서 드러난 가연성 외장재 규제의 사각지대 해소를 위해 화재 예방 검사 건물 범위를 6층까지 확대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지만 이 또한 검사비용 부담이 만만치 않다. 건물 1동당 소요되는 검사비용은 200만원 가량인데 30층 이상 고층 건물은 210여동에 불과하지만 6층 이상 건물로 확대할 경우 수만동에 달한다. 우원식 민주당 원원내대표는 26일 원내대책회의에서 "남은 임시국회에서 관련 상임위를 소집해 위법 처리와 더불어 무분별한 규제 완화 차원에서 도입된 필로티와 드라이비트 문제에 대한 해법을 모색하겠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