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용 판결과 입법과제①] 스튜어드십 코드 강화법

국민연금,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에 2천억 손실

ISS 등 자문기관들 반대 의견에도 합병에 찬성

기금 평가에 '스튜어드십 코드' 포함 법안 발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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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석방됐다. 당장 재계는 삼성그룹이 경영 정상화에 속도를 내 한국경제에 활기를 불어넣어 줄 것이라 기대하고 있다. 반면 시민사회와 법조계 등은 항소심 재판부가 이 부회장의 편법승계에 면죄부를 줬다는 비판을 쏟아내고 있다. 특히 이들은 재판부가 '이 부회장을 위한 경영권 승계작업이 존재하지 않았다'고 판단한 데 대해 "명백한 현실에 눈감았다"며 날을 세우고 있다. 법과 정치는 이번 판결을 계기로 현재 국회에서 논의 중인 경영권 승계 관련 주요 입법과제를 분석, 소개한다. 이에 따라 △국가재정법 개정안 △금융회사 지배구조법 개정안 △보험업법 개정안 등 3가지 계류 법안을 차례로 짚어본다. <편집자 주>
 

항소심에서 징역 2년 6개월에 집행유예 4년을 선고받은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지난 5일 오후 의왕시 서울구치소를 나서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 국민연금,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에 2천억 손실

"특검과 세간에서 제가 국민연금에 손해를 끼치고 막대한 이익을 취한 것 아닌가 의심하고 있습니다. 재판장님 결코 아닙니다. 제가 아무리 부족하고 못난 놈이라도 우리 국민들의 우리 서민들의 노후자금인 국민연금에 손해를 끼치고 제가 욕심을 내겠습니까. 너무나 심한 오해입니다. 정말 억울합니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은 지난해 8월 '삼성 뇌물' 1심 공판에서 이같이 주장했다. 하지만 이 부회장의 '결백'과 별개로 국민연금은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으로 막대한 손실을 봤다.

12일 국민연금공단 등에 따르면 2015년 5월 26일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 발표 이후부터 지난해 10월까지 국민연금이 본 투자 손해액은 2356억원에 이른다. 국정농단 사건을 수사한 박영수 특검팀이 추정한 손해액(1388억원)보다 1000억원가량 초과한 수치다.

국민연금의 손실은 예상된 결과였다.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 당시 합병 비율은 1 대 0.35로, 이는 삼성물산 주주들은 물론 합병 기준일 구 삼성물산 지분(11.2%)을 제일모직 지분(4.8%)보다 더 많이 보유하고 있었던 국민연금에도 불리한 비율이었기 때문이다. 

반대로 합병 기준일 삼성 총수 일가는 제일모직 지분(42.2%)을 구 삼성물산 지분(1.4%)보다 더 많이 보유하고 있었다. 덕분에 이재용 부회장 등 총수 일가는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으로 통합 삼성물산 지분을 30.4%까지 늘릴 수 있었다. 특히 이 부회장은 사실상 지주회사인 통합 삼성물산의 대주주(16.4%)에 오르면서 전체 삼성 계열사에 대한 지배력을 강화했다. 

◆ 삼성 총수 일가에 유리한 합병 비율 '1 대 0.35'

당시 합병 비율 산정의 근거는 주가였다. 문제는 이때 구 삼성물산 주가(5만 5767원)가 5년 이래 최저 수준을 기록한 반면, 제일모직 주가(15만 9294원)는 2014년 12월 상장된 이후 공모가의 3배로 치솟은 시점이었다는 점이다.

김기식 전 더불어민주당 의원에 따르면 당시 구 삼성물산이 보유한 계열사 주식 가치는 삼성전자 8조 6000억원을 비롯해 13조원에 달했지만, 구 삼성물산의 주가는 보유자산에도 미치지 못할 정도로 저평가된 상태였다.

이에 따라 서스틴베스트와 ISS 등 국내외 의결권 행사 자문기관들은 합병 비율이 삼성물산 주주들에게 불리하다며 '합병 반대' 권고 의견을 냈다. 적정 합병 비율 역시 한국기업지배구조원은 1 대 0.42, 서스틴베스트는 1 대 0.92, ISS는 1 대 1.21 등 실제 합병 비율보다 구 삼성물산에 유리한 비율을 제시했다.

홍순탁 '내가 만드는 복지국가' 정책위원(회계사)이 삼성물산 제일모직의 적정 합병비율 범위(1 대 0.64~1 대 1.21)를 활용해 손실액을 산정한 결과 국민연금의 손실액은 3000억~6000억, 이재용 부회장 등 삼성 총수 일가의 이득은 최소 1조 8000억원에 이른다. 합병 비율에 따른 이해득실이 뚜렷하다는 의미다. 

그러나 국민연금은 2015년 7월 삼성물산 주주총회에서 제일모직과 합병에 찬성표를 밀어붙였다. 이와 관련해 법원은 문형표 전 보건복지부 장관과 홍완선 전 국민연금공단 기금운용본부장에 대해 "업무상 임무를 위배해 이재용 등 삼성그룹 대주주에게 재산상 이익을 취득하게 했다"며 직권남용과 배임 등의 혐의로 1·2심에서 징역 2년 6개월의 실형을 선고했다.
 

지난해 10월 전북 전주시 국민연금공단 기금운용본부 청사 전경. [사진=연합뉴스]


◆ 기금 평가에 '스튜어드십 코드' 포함 법안 발의

상황이 이렇자 더불어민주당 최운열 의원과 이원욱 의원은 각각 지난해 3월과 6월 기금 평가 항목에 '스튜어드십 코드' 내용을 반영하는 국가재정법 일부개정법률안을 발의했다.

스튜어드십 코드란 집안일을 맡아보는 집사(steward)처럼 기관 투자자들이 타인의 자금을 맡아 운용하는 수탁자로서 책임을 충실히 수행하고, 더 적극적으로 의결권을 행사하도록 유도하기 위해 만든 자율 지침이다. 국민연금은 올해 말 스튜어드십 코드를 도입할 예정이다. 

두 법안 모두 기금관리 주체가 기금운용 실태를 조사·평가할 때 △기금관리·운용의 원칙 △기금자산 운용의 원칙 △의결권 행사의 원칙 △자산운용 지침 등의 준수 여부를 반영하도록 하는 내용을 포함했다. 국민연금의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 찬성 당시 '의결권 행사 전문위원회 측에 판단 미요청' 등 절차적 정당성과 관련한 논란을 줄일 수 있는 대목이다. 

홍순탁 위원은 "국가재정법 개정안 통과로 앞으로 재벌 상속과 관련한 제2, 제3의 모든 시도를 다 막을 수 있을지에 대해선 회의적"이라면서도 "스튜어드십 코드는 기본적으로 ESG(환경·사회적 책임·지배구조) 요소를 고려해 지배구조 측면을 살펴볼 근거가 생긴다"고 말했다.

최운열 의원실 관계자는 개정안 통과 전망에 대해 "워낙 첨예한 사안이라 반반이라고 본다"며 "일각에선 '국가재정법에 담아서 일괄적으로 연기금을 통제하는 게 옳으냐. 필요하면 국민연금만 하면 되지 않냐'는 의견이 있다. 또 '정부가 민간 기업에 과도한 간섭을 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