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례로 보는 세상] 도박자금으로 사용하겠다고 알리고 돈을 빌린 경우 사기죄가 될까

  • 차용사기, 편취범의에 관한 판단 기준
  • 대구지방법원 상주지원 2018. 2. 20. 선고 2016고단563 판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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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광진 변호사
입력 : 2018-03-26 10:53
수정 : 2022-06-04 15: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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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들어가며

변호사로 6년간 활동하며 체감한 것 중 하나는 사기 고소 사건이 상당히 많다는 점이다. 또 일단 사기죄로 기소가 되면 무죄를 받기가 쉽지 않다는 점도 있다. 돈을 빌려준 뒤 돌려받지 못하면 사기로 고소하는 경우가 많다. 수사기관에서도 차주가 상당한 금원을 변제했다거나 또는 갑작스런 경제적 악화로 돈을 변제하지 못했다는 등의 사정이 있지 않다면, 돈을 빌릴 당시 미필적으로나마 편취의 의사가 있다고 보고 사기죄로 기소하는 경향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아래는 사기 사건에서 무죄를 받아 낸 경우다. 단지 돈을 빌린 후 갚지 못했다는 사정만으로는 사기라고 볼 수 없다는 최근 대법원 판시경향을 확인할 수 있는 좋은 사례로 보인다. 요컨대 대주가 차주의 신용상태를 알고 있어 장래에 돈을 갚지 못할 위험을 예상할 수 있는 경우에는 차주가 돈을 갚지 못했다는 사정만으로 사기죄 성립을 단정 지을 수 없다는 취지다.

2. 사실관계

피고인은 피해자의 고향선배인 A씨의 동거녀로, 피해자는 피고인을 형수님이라고 부르며 알고 지냈던 관계다. 피고인과 피해자는 과거 도박죄로 수차례 처벌 받은 전력이 있고, 이들은 도박장에서 만난 적도 있으며, 피해자의 내연녀 B씨 역시 피고인과 친하게 지내며 도박을 해 왔다.

2015년 초 피고인은 B에게 도박자금이 필요한데 어디 돈 빌릴 곳이 없는 지 물어보자, B는 자신의 내연남인 피해자를 소개해줬다. 이에 피고인은 B와 함께 피해자에게 찾아가서 도박에 사용할 돈을 빌려달라고 부탁했다. 피해자는 피고인이 신용불량으로서 별다른 직업 없이 고향선배인 A에 의지하며 생활하고 있음을 알고 있으면서도, 사실상 높은 이자를 받으려는 목적으로 피고인에게 도박자금 명목의 돈을 빌려주게 되었다. 2015년 초부터 2016년에 이르기까지 돈을 빌려줬는데, 일부 돈을 변제받고 다시 빌려주기를 반복했다. 요컨대 피해자는 피고인이 특별한 수입이 없고 신용불량 상태에 있다는 점을 알면서도 피고인이 도박에서 돈을 많이 따서 고율의 이자를 더해 변제할 것을 기대해 오랜기간 피고인에게 도박자금을 빌려줬던 것이다.

그런데 2016년 5월경부터 피고인은 도박수익이 나지 않아 3,800만원 상당의 돈을 갚지 못했다. 피해자는 “아는 동생하고 장사를 시작하는데 돈을 빌려달라, 곧 갚겠다”는 말로 기망해 돈을 편취했다는 취지로 피고인을 사기 혐의로고소했다.

사건을 맡은 필자는 무죄 주장으로 변론을 이어갔다.

“피고인은 장사목적이 아닌 도박에 사용할 것을 알리고 돈을 빌렸으며, 피고인이 신용불량이며 별다른 재산이 없다는 점을 피해자가 알고 있었으므로, 피해자로서는 피고인에게 도박수익이 발생하지 아니하면 변제받지 못할 가능성을 인지하고서 피고인에게 돈을 빌려준 것이므로 결국 피고인은 금전 차용 시 피해자를 기망한 사실이 없고 편취의 범의가 있었다고 볼 수도 없다”

3. 판결 요지

재판부는 무죄를 선고했다. 판결 내용은 아래와 같다.

“이 사건 공소사실에 부합하는 증거로는 피해자의 진술이 있다. 그러나 이 사건 변론 및 기록에 의하여 알 수 있는 다음과 같은 사정들에 비추어볼 때 위 증거는 믿기 어렵다.
① 피해자는 피고인이 어떤 장사를 하는지도 모르고 있고, 가장 중요한 부분인 편취액수에 대해서도 진술이 명확하지 못하므로, 정말 피해자가 피고인에게 장사 명목으로 돈을 빌려준 것이 맞는지 의심이 든다. ② 피고인은 피해자에게 도박에 사용할 돈을 빌려달라고 한 것이라고 주장하는데, 이는 증인들의 법정 진술에 의하여 거의 완전히 뒷받침된다. 이에 더하여 피고인은 도박 관련 범죄로 여러 번 처벌 전력이 있고, 피해자 역시 도박장에서 피고인을 만난 적이 있고, 이자가 일수 형식의 고율인 점 등을 더해 보면, 도박자금으로 빌려준 것이 진실이고, 장사비용으로 빌려준 것은 거짓으로 보인다. ③ 이에 더해 피해자는 A의 지역 후배로서, A의 동거인인 피고인이 별다른 직업 없이 A에 의지하며 생활하고 있다는 것도 알고 있었고, 피고인이 신용불량인 점도 알고 있었다. 따라서 요컨대 피해자는 피고인이 특별한 수입이 없고 신용불량 상태에 있다는 점을 인식하고 있었음에도 오랜 기간 피고인에게 도박자금을 빌려준 것이다. 그렇다면 피해자는 피고인의 장래의 변제지체 또는 변제불능에 대한 위험을 예상하고 있었거나 충분히 예상할 수 있었다고 봄이 상당하다. 도박이라는 것은 그 본질상 우연한 승패에 의하여 재물의 득실이 결정되는 것이어서 피고인이 계속하여 도박에서 돈을 딸 수는 없는 것이고 그렇다면 특별한 수입이 없고 신용불량 상태에 있는 피고인의 경우 어느 순간에는 제대로 변제를 할 수 없는 상황에 다다를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④ 그렇다면 피고인이 변제능력에 관하여 피해자를 기망하였다거나, 피고인에게 편취의 범의가 있었다고 단정할 수 없다. 오히려 피해자는 피고인에게 속아서 돈을 빌려준 것이 아니라, 피고인이 정상적인 방법으로는 돈을 갚을 능력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면서도, 피고인이 ‘고위험-고수익’ 구조를 띠는 도박에서 돈을 많이 따서 고율의 이자까지 더하여 변제할 것을 기대 내지 욕망하여 지속적으로 도박자금을 빌려준 것으로 보일 뿐이다. 그 밖에 다른 증거들을 더하여도 공소사실을 인정하기에 부족하고, 달리 이를 인정할 증거가 없다. 그렇다면 이 사건 공소사실은 범죄의 증명이 없는 경우에 해당하므로 무죄”

4. 판결의 의의

대법원은 ‘차용사기에 있어서의 편취의 범의에 관한 판단기준’과 관련해 최근 아래와 같이 판시했다.

“사기죄가 성립하는지는 행위 당시를 기준으로 판단하여야 하므로, 소비대차 거래에서 차주가 돈을 빌릴 당시에는 변제할 의사와 능력을 가지고 있었다면 비록 그 후에 변제하지 않고 있더라도 이는 민사상 채무불이행에 불과하며 형사상 사기죄가 성립하지는 아니한다. 따라서 소비대차 거래에서, 대주와 차주 사이의 친척·친지와 같은 인적 관계 및 계속적인 거래 관계 등에 의하여 대주가 차주의 신용 상태를 인식하고 있어 장래의 변제지체 또는 변제불능에 대한 위험을 예상하고 있었거나 충분히 예상할 수 있는 경우에는, 차주가 차용 당시 구체적인 변제의사, 변제능력, 차용조건 등과 관련하여 소비대차 여부를 결정지을 수 있는 중요한 사항에 관하여 허위사실을 말하였다는 등의 다른 사정이 없다면, 차주가 그 후 제대로 변제하지 못하였다는 사실만을 가지고 변제능력에 관하여 대주를 기망하였다거나 차주에게 편취의 범의가 있었다고 단정할 수 없다(대법원 2016. 4. 2. 선고 2012도14516 판결)”

즉, 돈을 빌린 후 비록 나중에 돈을 갚지 못하였더라도, 돈을 빌릴 당시에는 변제할 의사와 능력을 갖고 있었다면 이는 형사상 사기로 볼 수 없다. 민사상 채무불이행 문제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돈을 빌릴 당시 변제의사와 능력이 있었는지 여부는 어떻게 판단하는가. 대법원 판례에 따르면 ‘범행 전후의 피고인의 재력, 환경, 범행내용, 거래 이행과정, 피해자와의 관계’ 등과 같은 객관적인 사정을 종합해 판단해야 한다.

이제는 이런 사정들에 더해 ‘대주가 차주의 신용 상태를 인식하고 있어 장래의 변제지체 또는 변제불능에 대한 위험을 예상하고 있었거나 충분히 예상할 수 있는 경우인지 여부’를 확인해야 할 것이다.

다시 사건으로 돌아오면, ‘피고인은 도박자금으로 돈을 빌린다는 점, 즉 차용 용도를 피해자에게 분명히 말했고, 피해자는 피고인이 신용불량이며 별다른 수입이 없다는 점을 알고 있었으므로 피해자로서는 피고인이 우연한 승패에 기해 재물의 득실이 결정되는 도박으로 수익을 얻지 못한다면 자신의 돈을 갚지 못할 수 있었다는 점을 충분히 예상하였다고 볼 수 밖에 없다. 따라서 돈을 빌린 후에 피고인이 갚지 못했더라도 사기죄로 볼 수 없다’는 결론에 이른 것이다.

이 판결은 개인적인 금전 차용관계에 있어서 차주가 단순히 돈을 갚지 못했다는 사정만으로 사기죄를 인정했던 그간의 관행에 제동을 건 것이다. ‘대주가 차주의 신용상태를 인식하고 있어 장래의 변제지체 또는 변제불능에 대한 위험을 예상하고 있었거나 충분히 예상할 수 있는 경우에는 편취의 범의를 쉽게 인정해서는 안 된다’는 구체적인 사기 판단기준을 정립•확인해준 판결로 그 의미가 크다고 생각한다.

즉 대주가 차주의 신용상태 및 차용용도를 분명히 알고 있어서 추후 변제지체 또는 불능의 위험을 예견한 경우 차후 실제 변제지체 또는 변제불능이 발생하더라도 이에 대한 책임은 차주보다는 알면서도 돈을 빌려준 대주에게 더 크게 있다고 본 것이다. 옳은 판단이라고 생각한다.

5. 나가며

돈은 빌려주더라도 잘 빌려줘야 한다. 차주가 무슨 용도로 빌려달라고 하는지 확인해야 한다. 그리고 차주의 신용상태도 확인해야 한다. 이런 점들을 검토했는데 나중에 돌려받지 못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면, 사기죄로 고소하기어렵겠다는 점을 알고선 빌려줄지 결정해야 할 것이다.
 

[사진=변호사 남광진 법률사무소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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