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조 팩트체크] 대한항공 상표권 박탈 가능할까?

대한·Korean 상호 쓰면서 해외에 망신…"국가 표기 박탈하라" 목소리

전문가들 "상표는 오래될 수록 가치 증가"…상표 반납은 어려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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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대한항공]


대한항공 조현민 전무의 ‘물컵 갑질’과 관련, ‘대한항공’에 대한 사명과 국적기 자격을 박탈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대한항공은 기업명·태극모양의 CI·영문명인 ‘Korean Air’ 등 여러 상징물들이 대한민국 표기법과 겹친다. 오너 일가의 갑질로 국제적인 망신을 산 기업이 국가 브랜드를 상징하는 표기로 혼동을 주는 만큼 기업명과 CI 등을 바꾸도록 정부가 나서야한다는 주장이다. 그러나 법조계에서 보는 판단은 사뭇 다르다.

17일 청와대에 따르면 “대한항공 개인회사의 ‘대한(Korean Air)’ 명칭 사용금지 요청”과 관련된 청원은 개시 나흘 만에 7만 5000명이 넘게 찬성했다. 국적기 자격 박탈 및 대한항공에 대한 페널티 부여 등과 관련된 다른 청원도 15건이 넘게 올라왔다. 이들은 “‘대한’은 기업의 사유재산권이기 전에 국가브랜드”라며 “특히 항공산업을 하는 기업이 오너 일가의 갑질폭력으로 수시로 국·내외 이슈가 되는 만큼 ‘Korean’ 대신 ‘hanjin’ 등으로 바꿔 대한민국과 대한항공을 분리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법률적으로 이같은 주장은 실현되기 어렵다. 우선 국적기는 국적항공기의 준말로 국가가 박탈할 수 있는 개념이 아니다. 대한민국 국적기는 국토교통부가 영업을 허가한 모든 항공기를 포괄하는 것으로 대한항공 뿐 아니라 아시아나항공·제주항공·에어부산·이스타항공·진에어 등 다수를 포함한다.

또 상표법 7조1항에 따르면 대한민국의 국기·국장·군기 등 대한민국 또는 공공기관 인장·기호 등과 동일하거나 유사한 상표는 상표등록을 할 수 없다. 특히 국기 유사성 조항은 상표법이 생긴 1949년부터 예외가 없다. 건곤감리가 있거나 태극이 분리되지 않으면 상표권 침해다. 문제는 ‘지리적 명칭과 결합된 상법상 회사 명칭은 해당 조항을 적용하지 않는다’고 규정한 과거 기준에 있다. 이 조항은 2008년 4월까지 유지됐다.

대한항공의 전신은 1962년 설립된 대한항공공사다. 정부가 운영권을 쥐고 있던 걸 1969년 고 조중훈 한진상사 회장이 인수하면서 민영항공사로 바뀌었다. 대한항공이라는 이름과 영문명인 ‘KOREAN AIR’ 역시 이 때부터 사용했다.

구기완 변리사는 "상표는 오래 사용할수록 보호되는 개념"이라며 "항공산업의 독점구조 등 시대적 상황이 어찌됐든 50년 가까이 한 기업이 상표를 독점적으로 사용해온 만큼 소유권이 인정된다"고 말했다.

국기 유사성과 관련된 조항을 적용하더라도 대한항공이 사용하고 있는 태극문양 로고는 문제가 안된다. 대한항공의 CI는 태극마크가 분리된 상태기 때문에 국기와 유사하다고 볼 수 없다는 게 전문가들 시각이다. 실제 대법원은 1971년 펩시콜라가 제기한 상표권 소송에서 “태극 반달모양의 색차가 윗부분이 적색, 아랫부분이 청색이라는 사실만으로는 국기가 동일한 인상을 준다고 할 수 없다”며 펩시콜라 손을 들어줬다.

구 변리사는 "대한민국의 근거한 모든 항공사는 '대한항공'과 'Korean Air'라는 명칭을 사용하는 게 가능하기 때문에 지금의 기준으로 보면 대한항공의 상표권 등록은 무효"라면서도 "하지만 이미 수십년간 대한항공이 관행적으로 사용했고, 국내외 소비자들이 대한항공을 국적기가 아닌 특정기업의 상호명으로 인식하고 있기 때문에 이를 박탈하기는 어렵다"고 말했다.

이어 "상표법은 수요자보호의 원칙에 따라 작동한다"며 "오너가 명예롭지 못한 사건에 연루됐다고 해서 상표법 무효가 가능하다면 수요자 및 시장의 혼란, 기업의 법적 안정성이 침해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상표권 침해 소송에 관한 대법원 판단은 사안에 따라 차이를 보인다. '서울대학교'와 불고기전문 음식점 '사리원' 소송이 대표적이다.

특허청은 2011년 서울대학교가 자체상품 590여개에 서울대학교 상표를 사용하고자 냈던 상표등록출원을 거절했다. 서울대학교는 ‘서울’과 ‘대학교’가 결합한 만큼 상표로서 독점적 권한을 줄 수 없다는 판단이었다. 그러나 대법원은 2015년 판결을 통해 ‘서울대학교’는 두 단어가 결합해 새로운 의미가 형성됐다며 상표권 등록이 가능하다고 봤다.

대법원은 “'지리적 명칭, 약어 또는 지도만으로 된 상표는 그 등록을 받을 수 없다'는 상표법은 특정 개인에게만 독점사용권을 부여하지 않으려는 데 그 규정의 취지가 있다”며 “지리적 명칭이 식별력 없는 표장과 결합돼 새로운 관념을 낳은 경우에는 위 법조항의 적용이 배제된다”고 판결했다.

최근 불고기전문 음식점 ‘사리원’ 상표권 분쟁에선 널리 알려진 지명은 상표로 독점권을 인정해주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대법원은 ‘사리원불고기(현 사리현불고기)’ 대표가 ‘사리원면옥’ 대표를 상대로 낸 상표등록무효 청구소송에서 원고패소한 원심을 파기하고 사건을 특허법원으로 돌려보냈다.

‘사리원면옥’(대전 소재)은 '사리원' 상표권을 먼저 등록했다며 ‘사리원불고기’(서울 소재)를 상대로 2015년 상표권 침해소송을 제기했다. 사리원불고기 측도 ‘사리원’은 황해도 지명인만큼 독점적으로 사용할 수 없다고 맞섰다. 특허법원은 사리원면옥이 근거로 제시한 ‘2016년 수요자 인식조사결과’를 토대로 “사리원이 국내 일반 수요자에게 지명으로 널리 알려지지 않았다”며 사리원면옥 손을 들어줬다.

그러나 대법원은 “판결의 근거로 작용한 수요자 인식 조사는 ‘사리원’ 등록결정일로부터 20년이나 지난 후에 이뤄진 결정으로 당시를 기준으로 일반 수요자의 인식을 정확히 반영하고 있다고 보기 어렵다”며 파기환송했다. 상표권 소송을 법리적 해석이 아닌 당시 사회적, 문화적 등 종합적인 배경을 고려해 판단했다는 데 의의가 있다. 때문에 대한항공 사명과 관련해서도 법리적 논쟁이 가능하다는 전문가의 시각도 있다.

한편, 국토부는 최근 미국 국적인 조 전무가 6년간(2010~2016년) 진에어 등기임원을 지냈다는 사실이 밝혀짐에 따라 진에어의 항공운송면허를 취소하는 방안을 검토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대한항공의 경우 미등기임원으로 재직했는데 이와 관련한 문제 소지 여부도 검토한다.

심상정 정의당 의원은 "국내 항공 사업법이나 항공 안전법상 외국인은 한국 국적 항공사의 등기 이사가 될 수 없는 데도 불구하고, 조 상무가 6년간 불법 등기 이사직을 유지하게 된 그 배경에 대해 국토부가 영업 취소 등 책임있는 조치를 취해야 한다"며 "대한항공이 국적기라는 공적 혜택을 더이상 누릴 수 없도록 '대한'이라는 명칭부터 조속히 회수해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