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권 전리품’ 전락한 KT 회장 잔혹史

  • 2002년 민영화 됐지만 여전히 정부 입김 강한 KT
  • 이용경ㆍ남중수ㆍ이석채ㆍ황창규 역대 KT회장 불명예 퇴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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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8-04-27 07:58
수정 : 2018-04-27 07: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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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T로고[KT로고]


정권이 바뀔 때마다 KT 최고경영자(CEO)들의 잔혹사가 되풀이되고 있다. 새 정권이 들어설 때마다 KT 전·현직 CEO들은 ‘시민단체 고발-경찰·검찰수사-사퇴’ 공식을 밟으며 불명예 퇴진을 반복해왔다. 배임·횡령 혐의로 재판을 받고 있는 이석채 전 KT 회장과 불법정치자금 지원 의혹으로 경찰 조사 중에 있는 황창규 회장이 대표적이다. 그러나 법원이 이 전 회장에 대해 무죄를 선고하면서 관련 분위기가 반전되고 있다. 

26일 서울고등법원 형사합의9부(김우수 부장판사)는 이 전 회장에 대한 파기환송심 선고공판에서 징역 1년 6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한 이전 판결을 깨고 무죄를 선고했다. 이는 파기 전 2심이 유죄를 인정한 횡령 혐의 부분을 무죄로 판단한 것으로 1심 재판부의 선고와 같다.

재판부는 "검사가 제출한 증거만으로는 피고인이 회사 자금을 빼내 착복할 목적으로 비자금을 조성했다거나 비자금 사용의 주된 목적이 개인적 용도를 위한 것이었다는 점이 합리적 의심의 여지 없이 증명됐다고 보기 어렵다"고 설명했다.

이 전 회장은 KT 재직 당시인 2011년 8월부터 2012년 6월까지 KT가 이 전 회장의 친·인척과 공동설립한 기업 3곳의 주식을 실제보다 높게 사들여 회사에 103억5000여만원의 손해를 끼친 혐의(특경가법상 배임)로 재판에 넘겨졌다. 또 임원들에게 돈을 지급한 뒤 다시 돌려받는 형식으로 11억여원을 챙기는 등 비자금을 조성한 혐의도 있다.

이날 판결은 이 전 회장에게 선고된  네 번째 판결이다. 앞서 1심 재판부는 이 전 회장이 비자금을 비서실 운영자금이나 회사에 필요한 경조사비 등에 사용했다며 횡령 부분을 무죄로 봤다. 배임 혐의에 대해서도 합리적인 의사결정이었다고 봤다.

2심 재판부는 횡령 혐의만 유죄로 인정했다. 검찰은 이에 반발해 2심에서 무죄로 판단된 100억원대 배임에 대해 상고했다. 대법원은 배임 혐의는 무죄를 확정했고, 횡령 혐의는 무죄 취지로 사건을 다시 서울고법으로 돌려보냈다.

업계에선 이 전 회장에 대한 이번 판결을 계기로 황 회장의 거취가 "중도사퇴는 없다"는 쪽으로 굳어졌다는 분석이 나온다. 현재 황 회장은 정치자금법 위반 혐의로 KT 현직 CEO로서는 최초로 경찰 조사를 받고 있다.

경찰은 KT 전·현직 임원들이 2014~2017년 법인자금으로 상품권을 구매한 뒤 이를 현금화해 국회의원 90여명에게 총 4억3000만원을 불법후원한 혐의를 포착했는데 황 회장이 이에 직·간접적으로 개입한 것으로 의심하고 있다.

황 회장은 최근 경찰조사에서 대부분의 혐의를 부인한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해 3월 연임에 성공한 황 회장의 임기는 2020년까지다. 그러나 경찰 수사가 확대되면서 경영안정성을 위해 중도 사퇴가 맞지 않냐는 시각이 우세했다. 

한 업계 관계자는 "경찰 수사가 확대되면서 '(황 회장이) 조직을 위해 사퇴할 수밖에 없지 않느냐'는 시각이 우세했다"며 "본인이 사퇴하지 않겠다는 의지가 강했는데 이 전 회장의 무죄 판결로 여론이 우호적으로 변하면 (거취 면에서) 유리해지지 않겠나"라고 했다.

그러나 KT 내부는 여전히 어수선하다. 한 직원은 "앞으로 수사가 확대되면 주요 임원들이 구속될 수밖에 없는데 중요한 순간에 회사 내 분위기가 사분오열되는 것 같아 우려스럽다"고 전했다.  

KT와 관련된 정치적 잡음은 2002년 민영화 이후 끊이질 않고 있다. 1981년 설립된 KT는 본래 정부 통제를 받는 공기업이었다가 2002년 민영화됐다.

KT의 최대주주는 국민연금공단(9.97%)이다. 일본통신사 NTT 도코모(5.46%), 영국 투자회사인 실체스터(5.13%) 등 외국인 지분율이 49%에 달하지만 모두 소액주주로 지배주주는 없다. 우리사주(0.50%) 역시 의결권이 없다. 때문에 최대 ‘큰손’인 정권의 입맛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실제 역대 정권은 주인 없는 KT에 자기 사람을 심어놓으며 전리품으로서 점령해왔다. KT 민영화 첫 수장을 맡았던 엔지니어 출신 이용경 전 사장은 2002~2005년 사장을 지냈다가 노무현 정부가 들어서면서 연임을 포기했다. 노무현 정부 때 선임된 남중수 전 사장 역시 이명박 정부가 들어서면서 뇌물죄로 구속되자 사임했다.

첫 외부 출신 CEO인 이석채 전 회장은 '스카이라이프' 인수 등 굵직한 사업을 성사시켰지만 박근혜 정부가 들어선 후 배임·횡령 혐의로 검찰 조사를 받고 퇴진했다. 박 정부 시절 취임한 황 회장 역시 최근 불법 정치자금 의혹으로 경찰 조사를 받으며 곤욕을 치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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