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SW 저작권 침해..."매출액 절반 내놔라"

  • 한국 에스리, 과한 합의금 요구 논란
  • "정품 구매 외면" VS "사내 학습용"
  • 전문가 "브로커 기획소송 등 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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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8-06-21 07:00
수정 : 2018-06-22 15: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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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경제 DB]


한국에스리가 중소기업 A사에 저작권법 위반을 이유로 형사소송을 진행하면서 피해보상액으로 A사 연매출의 절반가량을 요구한 것으로 알려져 논란이 일고 있다.

20일 법조계와 정보통신기술(ICT)업계에 따르면 한국에스리는 지난해 1월 A사를 저작권법 위반 혐의로 고소했다. 형사고소는 A사가 에스리의 ‘아크 지아이에스(이하 GIS)’ 8종 등을 불법 복제해 저작권을 침해했다는 게 주요 내용이다. GIS(공간정보시스템)는 지도와 각종 지리 정보의 관리·분석·편집 등을 해주는 지리정보체계 애플리케이션이다. 에스리는 이 분야에 독보적인 기술을 가진 것으로 알려졌다.

A사 측은 “문제가 된 에스리의 GIS는 직원이 사내학습용으로 내려받은 것”이라며 “상업적으로 사용할 목적은 전혀 없었다”고 주장했다. 시스템 개발과 직접적인 업무 관련성이 없는 만큼 영업권을 침해할 의도가 없었다는 설명이다. A사는 광역도시·산업단지·전원주택단지 같은 도시환경을 계획하는 중소기업이다.
 

한국에스리 기업로고 [아주경제 DB]
 

하지만 에스리는 A사에 형사합의 피해보상액으로 10억원을 요구했다. A사는 지난 2016년 기준으로 매출액이 26억원, 당기순이익이 1900만원인 소규모 기업이다. 에스리가 요구한 금액은 A사 당기순이익의 5배에 달한다. 

A사 관계자는 “해당 프로그램은 파일 공유 사이트인 토렌트에서 내려받았는데, 이를 고발한 사람은 전문 브로커로 추정된다”면서 “에스리가 기업을 존폐 기로에 서게 할 만큼 위협적인 합의금을 요구하고 있다”고 말했다. 

반면 한국에스리 측은 “영리적 사용 목적이 없었다는 A사 주장은 믿을 수 없다”고 반박하고 있다.

한국에스리 관계자는 “만약 이들의 주장이 사실이었다고 해도 15대가 넘는 PC에서 1건의 정품도 발견되지 않았다는 건 이들의 저작권 개념이 얼마나 무지한지 보여주는 것”이라며 “불법 프로그램 사용 사실을 알고 정품 구매를 요구했는데 A사가 이를 거부해 소송까지 가게 된 것”이라고 주장했다. 

업계에서는 A사 사례처럼 SW기업이 저작권 불법 사용을 빌미로 국내 중소기업에 무리한 합의금을 요구하는 경우가 최근 빈번하게 일어나고 있다는 지적이다.

기업에서 SW를 쓰려면 따로 구매해야 하지만 저작권 개념이 약하고 자금 여유가 없는 스타트업(창업초기기업)이나 중소기업은 공유 사이트에서 무단으로 내려받아 사용하는 경우가 많다는 점을 악용한 것이다. 최근에는 무분별한 고소로 중소기업이 도산하거나 혐의자가 자살하는 사건도 발생하고 있다.

이와 관련 ICT업계 관계자는 “SW 저작권자가 고소·고발로 ‘합의금 장사’를 하는 건 공공연한 비밀”이라며 “겉으로는 저작권 침해를 내걸고 있지만 뒤로는 이를 빌미로 강매영업을 한다”고 토로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지방자치단체나 투자기관, 중소기업이 이들의 주요 먹잇감”이라며 “SW업체가 본연의 업무인 프로그램 개발보다 저작권 시비를 통한 제품 판매에만 몰두하는 것 같다”고 주장했다.

이런 분위기는 법조계에서도 감지하고 있다. 저작권법에 정통한 한 변호사는 “스타트업이나 중소기업이 저작권법에 무지하다는 점을 이용해 합의금을 노린 전문 브로커와 로펌이 소송을 기획하는 경우가 많다”면서 “이런 이유로 저작권 소송이 매년 크게 늘고 있다”고 말했다.

또 다른 변호사 역시 “법원이 지적재산권 보호에 적극적인 입장을 취하면서 검찰의 기소 내용을 그대로 인정해 판결하는 경향이 있다”며 “저작권법의 친고죄와 양벌규정을 악용한 것으로 선의의 피해자가 얼마든 지 생길 수 있는 구조”라고 지적했다.

실제 이와 관련된 판결이 있다. 서울고법은 지난 2013년 마이크로소프트와 한글과컴퓨터 등 7개 SW업체가 국내 중소기업 A사와 B사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소송 항소심에서 원고승소 판결했다. 이들 중소기업이 한글과컴퓨터·오피스 2007·윈도우XP 등의 SW를 무단 복제해 사용했다는 이유에서다. 이 판결은 대법원에서 심리불속행기각으로 확정됐다.

재판부는 저작권 침해로 인한 손해액을 정품 소매가격으로 구체화하면서 “컴퓨터 프로그램을 복제해 영구적으로 사용할 지위를 취득한 경우, 해당 프로그램 정품 소매가격 자체가 침해자 이익액과 저작권 행사로 통상받을 수 있는 금액으로 봐야 한다”고 판시했다.

법조계는 합의금을 목적으로 한 고소·고발이 난무하고 있는 만큼 저작권법 악용을 막기 위한 법원의 다양한 해석이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한 법조계 관계자는 “저작권법 위반 손해액 산출은 판례에 따른 것이지 절대불변의 원칙이 아니다”라며 “저작권자가 영세업체 생존을 위협할 만큼의 무리한 합의금을 요구하는 것은 사회적으로 바람직하지 않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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