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지연의 머니LAW] '안희정 무죄'가 대법원에서 뒤집힐 수도 있는 이유

안희정 전 충남지사 '위계·위력에 의한 성범죄' 재판…1심서 '무죄'

대법원, 권력형 성범죄…일반적인 시각 말고, 피해자 시각에서 봐라

직장내 발생하는 권력형 성범죄, 재판시 쟁점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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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경제 DB]


‘비서 성폭행’ 의혹을 받는 안희정 전 충남지사의 1심 재판 결과가 ‘무죄’로 나오면서 직장 내에서 발생하는 성희롱·성폭력 사건에 대한 법원의 판단 기준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다. 안 전 지사의 핵심 혐의는 ‘위계·위력에 의한 성폭행 및 강제추행’이다. 직장 역시 권력형 성범죄가 일상적으로 발생하는 공간이다.

대법원은 어떻게 판단할까. 대법원은 지난 4월 여학생들을 상대로 상습 성추행을 벌인 대학교수의 해임처분 취소소송 재판을 통해 권력형 성희롱·성폭행 사건에 대한 심리와 증거 판단에 관한 법리를 제시했다.

모 대학 컴퓨터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던 A씨는 지난 2015년 자신의 수업에 참여한 학생들을 뒤에서 안는 듯한 ‘백허그’ 포즈로 지도하거나, 추천서를 받으러 온 학생에게 뽀뽀를 요구하는 등 다수의 학생에게 14건의 성희롱을 저질러 교수직에서 해임됐다. A씨는 해임 징계에 불복해 소청심사를 제기했지만 기각됐고, 결국 법원까지 왔다. 

원심 재판부는 “A씨 해임 처분이 비위 정도에 비춰볼 때 지나치게 무겁다”라면서 “대학 측이 징계 재량권의 범위를 일탈·남용해 위법하다”라고 A씨 손을 들어줬다. 재판부는 △피해자들이 익명으로 한 강의평가에서 A씨의 성희롱에 대해 언급하지 않은 점 △교사 교육방식을 긍정적으로 평가한 점 등을 고려했을 때 피해 발생 사실 자체를 인정하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A씨가 피해자의 어깨를 잡는 등 불필요한 신체접촉이 있었대도 이는 원고의 적극적인 교수 방법에 해당하며, 해당 피해자들이 계속해서 원고 수업을 수강한 점 등을 비춰보면 일반적인 사람 입장에서 성적 굴욕감이나 혐오감을 느낄 수 있는 정도에 이른다고 보기 어렵다”라고 설명했다.

또한 “피해자와의 대화 가운데 전체 맥락을 고려하지 않고 극히 일부분을 문제 삼는 것은 부적절하며, 당시에는 별다른 문제를 느끼지 못하다가 문제가 제기된 후 (피해자들이) 적극적으로 나서는 것은 (피해자로서) 일관적이지 않다”라고 밝혔다.

반면 대법원은 성희롱 가해자가 교수이고 피해자가 취업을 위해 교수의 추천서 등을 필요로하는 학생들이었다는 점에 주목했다.

대법원은 “원심 판단은 성희롱 피해자들이 처한 특별한 사정을 고려하지 않은 채 은연중에 가해자 중심적인 사고와 인식을 토대로 평가를 내렸다는 오해를 불러올 수 있어 적절치 않다”라며 “성희롱 여부를 판단할 때는 단순히 행위 자체의 내용뿐 아니라 가해자와 피해자가 놓여있는 권력관계와 사회적 지위 차이 역시 고려해야 한다”라고 지적했다.

이어 “A씨의 경우 추천서 작성 등을 빌미로 성적 언동이 지속해서 이뤄져 온 정황 등을 고려해 피해자들과 같은 처지에 있는 평균적인 사람 입장에서 성적 굴욕감이나 혐오감을 느낄 수 있는 정도였는지를 기준으로 심리·판단해야 옳다”라고 강조했다. 대법원에서 파기환송된 해당 사건은 원심 재판부로 회부됐다.

대법원 사법연감에 따르면 성범죄의 유기징역 비율은 지난해 기준 20.4%로, 일반 범죄(29.1%)와 비교해 훨씬 낮다. 성범죄의 경우 피해자 진술 말고는 별다른 증거가 없는데, 이 진술이 신빙성이 떨어진다고 판단되면 대부분 무죄로 결정되기 때문이다. 대법원의 이번 판결은 성범죄 사건에서 유력 증거를 판단할 때 ‘성인지 감수성’을 법리로서 최초로 제시했다는 데 의미가 있다.

그러나 안 전 지사의 재판 결과는 피해자와 같은 처지에 있는 사람의 감성으로 진술 신빙성을 판단해야 한다는 대법원 판단과 배치된다. 앞서 서울서부지법은 “피해자 진술의 신빙성이 떨어지고, (성폭행 당시) 위력이 작용하지 않았다”라면서 안 전 지사를 무죄로 판단했다.

이와 관련 법조계 관계자는 “그동안 정상적인 성인에 대한 위계·위력 간음에 대한 범위를 제시한 판결이 없었다”라면서 “대법원 판결로 ‘위력’에 대한 해석과 범위가 넓어진 만큼 끝까지 지켜봐야 한다”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