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직 대법관이 범죄 혐의를 받아 구속영장이 청구되기는 헌정 사상 처음이다.
3일 서울중앙지검 수사팀(팀장 한동훈 3차장검사)은 이날 오전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 등의 혐의를 적용해 두 전직 대법관에 대한 구속영장 청구서를 법원에 접수했다.
검찰 관계자는 "이미 구속된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의 상급자로서 더 큰 결정 권한을 행사한 만큼 엄정한 책임을 묻는 게 사건의 전모를 밝히는 데 필요하다"며 "두 전직 대법관이 모두 혐의를 부인하고 하급자들과 진술이 상당히 달라 구속영장 청구가 불가피하다"고 말했다.
박 전 대법관의 구속영장은 158쪽, 고 전 대법관은 108쪽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박 전 대법관은 2014년 2월부터 2년간 법원행정처장을 지내면서 △일제 강제동원 피해자들이 일본 기업을 상대로 낸 민사소송 △전교조 법외노조 통보처분 관련 행정소송 △원세훈 전 국가정보원장 댓글 사건 형사재판 △옛 통합진보당 국회·지방의회 의원들의 지위확인 소송 등 다수재판에 개입하거나 법관 독립을 침해하는 내용의 문건 작성을 지시한 혐의를 받는다.
검찰은 당시 법원행정처가 청와대·외교부 뿐만 아니라 소송의 피고인 일본 전범기업 측과도 비밀리에 접촉한 사실도 확인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외에도 박 전 대법관은 법원행정처가 2015년 각급 법원 공보관실 운영비 명목으로 따낸 예산 3억5000만원을 현금으로 돌려받아 비자금을 조성한 혐의도 받고있다.
박 전 대법관의 후임으로 2016년 2월부터 지난해 5월까지 법원행정처장을 지낸 고 전 대법관은 '정운호 게이트' 사건 당시 판사들을 상대로 한 수사 확대를 차단하기 위해 수사정보를 빼내고 영장재판 가이드라인을 내려보낸 혐의를 받는다.
고 전 대법관은 2016년 서울서부지검의 집행관 비리 수사 때도 비슷한 수법으로 일선 법원을 통해 검찰 수사기밀을 보고받은 것으로 파악됐다.
장기간 조직적으로 벌어진 사법행정권 남용에는 연달아 법원행정처장으로 재직한 두 전직 대법관이 모두 개입했다는 게 검찰 시각이다.
특히 두 전직 대법관은 2014년부터 지난해까지 사법행정이나 특정 재판에 비판적인 의견을 낸 판사들에게 인사 불이익을 줄 목적으로 생산된 '판사 블랙리스트' 문건을 보고받고 승인한 혐의도 있다.
앞선 검찰 조사에서 두 전직 대법관은 “정당한 업무지시였다”면서 혐의 대부분을 부인한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은 이들의 신병을 확보하는 대로 양승태 전 대법원장도 피의자로 소환할 방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