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등을 넘어 상생으로]⑧미투·홍대 누드모델·이수역 폭행…敵이 된 남·여

  • 젠더 갈등
  • 전통문화적 차이에 사회·경제적 대립…극단적 혐오로 치달아
  • “가부장적 질서 벗어나 시대상 담은 새 젠더규범 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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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9-01-07 01:04
수정 : 2019-01-07 0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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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12월 22일 서울 광화문 광장에서 불법촬영 범죄를 규탄하는 여성단체 '불편한 용기' 주최로 열린 '편파판결, 불법촬영 규탄 6차 집회'에서 참가자들이 구호를 외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갈등(葛藤)의 한자어는 칡나무(葛)와 등나무(藤)가 서로 얽혀 있는 모습을 그린다. 갈등은 개인이나 집단이 가지고 있는 두 가지 이상의 목표나 정서가 서로 충돌하는 현상이다. 이런 갈등이 무조건 나쁜 것만은 아니다. 적잖은 사회학자들은 갈등을 해결하고 극복하는 과정을 통해 세상이 한층 나아진다고 설파한다. 그렇다면 2019년 대한민국이 직면한 수많은 갈등은 과연 더 좋은 세상을 가져올 ‘진통’의 과정일까? <아주경제>는 그 답에 대한 단초를 신년기획 ‘갈등을 넘어 상생으로’를 통해 고민해 본다. [편집자 주]

2018년은 ‘남녀갈등’으로 점철된 한 해였다. 미투운동과 곰탕집 성추행, 홍대 누드모델, 이수역 폭행사건 등 수많은 사건이 남녀 간 갈등을 촉발했고, 다양한 갈등이 건전하게 해결되지 못한 채 ‘여혐(여성혐오)’이나 ‘남혐(남성혐오)’ 식의 극단적 갈등으로 치달았다.

최근 남녀갈등은 전통적인 문화적 차이에 사회·경제적 변화를 더해 복잡하게 변하고 있다. 여성 권익이 향상되고 이들과의 경쟁에서 도태되는 남성들이 등장하면서 좌절감과 함께 상실감, 분노 등 다양한 양상으로 드러나고 있다는 분석이다.

◆#미투부터 이수역 폭행까지...‘2018년 젠더갈등’

지난해 1월 서지현 검사의 폭로로 시작된 ‘#미투(me too·나도 당했다)’는 법조계·문화예술계·교육계·정계·의료계 등으로 번지며 사회 전반을 뒤흔들었다. 서 검사는 지난 2010년 서울북부지검 근무 당시 한 장례식장에서 검찰 간부에게 성추행을 당한 뒤 문제를 제기하자 보복성 인사를 당했다고 주장했다.

서 검사는 “성폭력 피해 당사자임에도 지난 8년 동안 ’내가 잘못한 건 없었는지’ 자책만 하면서 시간을 보냈다“면서 “피해자들에게 ‘피해자다움’이라는 엄격한 잣대를 들이대기 전에 가해자를 꾸짖어 주시길 바라는 마음에서 폭로하게 됐다”고 말했다. 그의 용기 있는 고백은 위계에 의한 성희롱·성폭력 문제가 수면 위로 드러내는 계기가 됐다. 그동안 숨죽여왔던 피해자들은 용감하게 자신의 피해 사실을 고백하며 #미투 운동에 동참했다.

미투 운동으로 이윤택 연희단거리패 감독을 비롯해 배우 조재현·오달수·고 조민기와 방송인 김생민, 김기덕 감독, 시인 고은, 안희정 전 충남도지사 등 사회 저명인사들의 성폭행·성희롱 사실이 낱낱이 드러났다. 이에 힘입어 일반인 폭로도 이어졌다. 유튜버 양예원은 배우 지망생을 상대로 한 강압적 출사·성희롱 촬영 등을 폭로해 많은 지지를 받았다. ‘지식의 상아탑’이라는 대학교에서 발생한 교수들의 추악한 성희롱·성폭력 실태도 학생들 고백으로 드러났다.

홍익대에서 발생한 남성 누드모델 사진 유출과 서울 이수역에서 발생한 남녀 폭행사건은 남녀갈등이 건전하게 해결되지 못하고 ‘양성혐오’라는 극단적 행태로 치닫는 모습을 보였다.

홍대 사건은 지난해 5월 남성 누드모델 신체를 몰래 찍어 온라인에 유출한 여성이 구속 기소돼 2심에서 징역 10개월을 선고받은 사건이다. 사건 초기 일부 여성 온라인 커뮤니티에서는 피해자가 남성이고, 피의자가 여성이라 사법당국이 ‘과잉대응·편파수사’를 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수역 폭행사건 역시 남녀갈등의 극단적 사례다. 당사자들은 “여혐(또는 남혐)으로 벌어진 폭행 사건”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이 사건이 피해자로만 존재했던 여성이 폭행 당사자로서 ‘여성 대 남성’ 구도를 행사했다는 데 주목하고 있다. 실제 사건 관련 여성들은 짧은 머리와 남성스러운 옷차림을 하고, 남성들이 생산해낸 여성혐오 표현들을 ‘미러링(거울처럼 똑같이 보여주는)’ 하는 방식으로 남성을 공격했다. 

익명을 요구한 여성단체 관계자는 “기존에는 된장녀·김치녀·맘충 등 여성혐오 발언을 아무렇지 않게 해오던 남성에게 여성이 아무런 대응을 할 수 없지만 앞으로는 여혐 발언을 하면 남혐으로 맞서는 맞대응 현상이 많아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그러면서 “여성차별을 혐오하는 젊은 여성과 남성·기성세대 간 갈등이 심화하면서 ‘100% 여성이 피해자’라고 말할 수 없는 모호하고 복잡한 사건이 더욱더 많아질 것”이라고 설명했다.

◆‘너 메갈?’ 일상적 여혐 발언이 문제...“시대상 맞춘 젠더규범 필요”

이런 갈등은 이미 사회적 몸짓이 되고 있다. 홍대 사건을 계기로 사법당국의 편파 판결을 규탄하는 여성들의 자발적 시위조직인 ‘불편한 용기’가 대표적이다. 지난해 5월 19일 서울 혜화역 일대에서 시작한 이 시위는 7개월간 이어지면서 주최 측 추산으로 약 30만명의 여성이 참석했다.

시위에 참여한 여성들의 입장은 다양했다. 지난달 22일 열린 6차 집회에 친구들과 함께 참석한 대학생 이해인씨(23)는 “가부장적인 아빠에게 엄마 입장을 대변해주다 패륜으로 찍힌 이후로 아빠와 말을 하지 않는다“면서 “(집회에) 힘을 보태고 싶어 나오게 됐다”고 했다. 지난해 10월 열린 5차 시위에 나온 회사원 최민지씨(26)는 “팀장이 농담이랍시고 민지씨, 연애도 안 하고 치마도 안 입고 설마 ’메갈(메갈리아, 남성혐오 온라인 커뮤니티)’은 아니지?라고 물었는데 너무 화가 나 몸이 부들부들 떨렸다”며 “그 뒤로 (그들 언어대로) 메갈이 되기로 했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갈등이 건전한 사회 발전으로 선순환되지 않는 구조를 문제 삼았다. 남녀갈등이 점점 극단적이고 소모적인 방향으로 치닫고 있는 데는 워마드·일간베스트저장소(일베) 등 일부 극성 사이트 영향도 있다. 여성 온라인 커뮤니티에선 이수역 폭행사건 발생 직후 ‘가해 한남(한국남성)을 살해하러 가자’는 내용을 담은 글이 게재됐다. 또한 남성 사이트에서는 ‘더러운 ‘페꼴(꼴통 페미니스트)’은 당해도 싸다‘는 게시글이 올라왔다.

익명을 요구한 한 여성학자는 “기존 질서를 유지하려는 소극적 사회통합 전략으로는 군가산점이나 성매매 문제, 일·가족 양립 등 우리 사회의 다양한 젠더갈등을 해결할 수 없다”면서 “가부장적 질서나 남성에 맞추는 기존 사회규범이 아닌 완전히 새로운 젠더규범을 만들어야 할 때”라고 강조했다. 또 다른 전문가는 “개인이나 특정 집단 일탈을 젠더갈등으로 확장 해석해서는 안 된다”면서 “한국 사회에서 벌어지는 모든 갈등을 여혐·남혐문제로 보기 시작하면 어떤 문제도 해결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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