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O] 양승태 전 대법원장, ‘법관 중의 법관’서 사법농단 피의자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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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9-01-23 00:00
수정 : 2019-01-2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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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승태 전 대법원장이 지난 11일 오전 서울 서초구 대법원 앞에서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과 관련한 피의자 신분으로 검찰에 출석하기 전 입장을 밝히고 있다. [유대길 기자, dbeorlf123@ajunews.com]


‘법관 중의 법관’. 지금은 피의자 신분인 양승태 전 대법원장(70·사법연수원 2기)은 법관 가운데도 손꼽히는 인물이었다.

양 전 대법원장은 엘리트 코스를 충실하게 밟아왔다. 1948년 경남 밀양에서 태어난 양 전 대법원장은 부산·경남 지역 최고 명문고로 불리는 경남고를 나왔다. 문재인 대통령이 5년 후배다. 서울대 법학과를 졸업한 1970년 12회 사법시험에 합격했다.

사법연수원을 마친 뒤 군법무관을 거쳐 유신독재 시절인 1975년 11월 서울민사지법 판사로 임명됐다. 법관의 길로 들어선 그는 사법연수원 교수와 법원행정처 송무국장, 서울중앙지법 파산수석부장판사와 민사수석부장판사 등 법관 요직을 두루 거쳤다.

위기도 있었다. 그는 부산지법원장을 거쳐 2003년 2월 법원행정처 차장에 임명됐다. 당시 연공서열에 따른 대법관 후보자 임명제청에 반대하며 판사 160명이 연판장에 서명한 이른바 ‘4차 사법파동’이 일었다. 양 전 대법원장은 도의적 책임을 지겠다며 사의를 밝혔고 특허법원장으로 자리를 옮겼다.

기회는 다시 찾아왔다. 노무현 정부 시절인 2005년 2월 대법관에 임명되며 대법원에 재입성했다. 중앙선거관리위원장도 맡았다. 이명박 정부는 그에게 날개를 달아줬다. 2011년 2월 대법관 임기를 마친 뒤 히말라야와 미국 로키산맥 트레킹을 위해 해외에 있던 그를 이명박 전 대통령이 불렀다. 급거 귀국해 같은 해 9월 대법원장에 취임했다.

양승태 전 대법원장이 지난 11일 오전 서울 서초구 대법원 앞에서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 관련 피의자 신분으로 검찰에 출석하기 전 입장을 밝히고 있다. [유대길 기자, dbeorlf123@ajunews.com]


사법수장에 오른 그는 거침이 없었다. 자신의 구상을 하나하나 실현해 나갔다. 대법관에 오르지 못한 법원장이 법원을 떠나지 않고 하급심에서 재판할 수 있게 하는 ‘평생법관제’를 정착시켰다. 법조 경력이 없는 사법연수원 졸업생 대신 경력 10년 이상인 법조인을 판사로 임명하는 전면적인 법조일원화를 실시했다. 대법원 최고 판결기구인 전원합의체 회부사건을 늘리고, 대법원 공개변론 생중계도 시작했다. 역대 대법원장 가운데 가장 막강한 권한을 행사했다는 평가가 나오는 이유다.

하지만 과욕은 화를 불렀다. 대법원 상고심 사건 중 단순 사건만 맡는 상고법원 도입이 대표적이다. 상고법원 설치를 위해 청와대와 국회, 언론 등에 전방위 로비를 나섰다. 협조를 얻으려고 재판을 놓고 거래한 의혹도 나왔다. 성급하고 일방적인 도입에 반대하는 판사들을 사찰하기도 했다.

양 전 대법원장은 지난 11일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 관련 피의자 신분으로 서울중앙지검에 출석했다. 사법부 수장이 피의자로 소환된 건 헌정 사상 처음이다. 이어 18일엔 전직 대법원장 가운데 최초로 구속영장이 청구됐다. 그는 23일 후배 법관이 진행하는 구속 심사를 위해 다시 한번 검찰 포토라인에 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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