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조산책] ​“이제는 민주주의의 성숙을 고민할 시기”

적극적인 민주주의 개념 정의의 필요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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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 벽두에 이순자 여사가 한 “전두환은 민주주의의 아버지” 발언에 대한 논란이 거세다. 이 발언에 대한 일반적인 반응은 단순히 ‘망언’이다 정도의 평가 절하로 그치는 경우가 많다. 물론 극히 일부에서는 “용기있게 진실을 말했다”고 찬양하는 경우도 없지 않아 있지만 그러한 예외적인 경우는 논외로 하기로 한다.

그러나 필자는 이순자 여사의 해당 발언이 남편에 대한 변호 과정에서 나온 단순한 말실수라기 기보다는 민주주의에 대한 우리 사회의 관점을 정확히 반영한 발언으로 보인다. 즉, 여기서 이순자 여사가 말하는 민주주의란 ‘북한이 아님’ 또는 ‘공산주의가 아님’을 의미한다. 이러한 변형된 형태의 민주주의 정의는 우리 사회에 생각보다 만연하다. 여기서 약간 더 나아가더라도 ‘독재가 아님’ 정도의 수준에 머무르는 경우가 많다.

예컨대 2010년대 이후 한국 사회의 중요한 담론으로 자리 잡은 ‘헬조선 담론’에 대한 가장 일반적인 반론은 “그래도 우리사회가 북한보다 낫다”라는 것이다. 어떠한 인권 문제를 지적했을 때 가장 일반적으로 나오는 반론 역시 “그런데 그 인권 단체는 북한의 인권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나요”이다.
지난 지방선거에서 모 정당이 채택한 슬로건으로 사용한 “자유대한민국을 지키겠습니다” 역시 명시적이지는 않지만 북한으로부터(또는 국내의 “사회주의자로부터”) 대한민국을 지키겠다는 의미로 보인다.

우리 사회가 북한보다 우월하다는 점에는 의문의 여지가 없다. 북한의 인권이 개선되어야 하는 점, 북한의 안보위협으로부터 우리를 보해해야하는 점, 국내의 시장질서가 보호되어야 한다는 점 모두에 어떠한 의문의 여지가 없다. 그러나 이렇게 모든 논의를 기승전 ‘NOT 북한(또는 공산주의)’으로 끌고 가는 문제점은 우리 사회가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한 진지한 논의가 실종된다는 점이다. 즉, 이러한 논의 구조하에 ‘헬조선’이란 해결해야 할 사회적 문제가 아니라 북한(또는 아프리카의 어느 개발도상국)과 대한민국과의 비교 우위 또는 과거의 대한민국에 대한 현재의 대한민국에 대한 비교 우위에 대한 ‘훈계’를 통하여 ‘경험이 부족한 청년 세대’가 만들어 낸 오해로 바뀌게 된다. 마찬가지로 모 정당이 그토록 지키겠다는 “자유대한민국”은 어떠한 나라인지에 대한 설명은 들을 수 없다.

뿐만 아니라 이와 같은 논리를 조금만 극단적으로 가져가면 얼마나 허무맹랑한지 금방 알 수 있다. 예컨대, 일제 강점기 일본제국은 조선을 외적으로부터도 보호하였을 뿐 아니라 조선 내에 있던 무정부주의자나 공산주의자들에 대한 탄압을 통하여 사회를 매우 안정적으로 유지하였다. 이러한 의미에서 일제강점기는 우리나라 민주주의의 할아버지 쯤이 되지 않을까? 결국 이러한 식민사관은 ‘잘못된 역사인식’이 아니라 ‘잘못된 민주주의 개념’에서부터 발생하는 것이다.

이순자 여사의 발언을 다시 한 번 살펴보면 전두환을 민주주의의 아버지라 칭한 근거는 “직선제 개헌을 하였다”가 아닌(물론 직선제 개헌 도입이 전두환의 공적이라고 하기도 어렵지만) “연임을 시도하지 않았다”였다. 즉, 국민이 지도자를 직접 뽑는다는 민주주의의 가장 쉬운 정의 방법 대신(전두환의 대통령 취임이 이 정의에 부합하지 못한다는 것을 너무도 잘 알기에) “다른 독재자들처럼 평생 국가의 지도자를 한 것은 아니지 않나?”라는 비교우위적 접근을 시도한 것이다. 이 경우 앞서 언급한 논리 구조에서는 이순자의 발언은 그럴듯한 이야기로 둔갑된다. 서두에 언급한 이순자 발언을 ‘용기있는 진실’로 치켜세우는 세력은 사실은 일부의 극단적인 세력이 아니라 우리사회의 주류적 감성이다. 민주주의 개념이 정립되지 않은 상태에서는 누구나 언제든지 말로는 이순자의 발언을 “망언”이라 지칭하면서 마음 한구석에서는 “틀린말은 아니지”라고 생각하게 되는 것이다.

민주주의는 민주주의이기 때문에 민주주의이지 북한, 중국 및 어떠한 나라와의 비교우위를 위한 수단이 아니다. 이 땅에 대통령 직선제가 시행된 지 30년이 되었다. 이제 우리는 민주주의의 성숙을 고민할 시기이다. 즉, 단순히 자유로운 투표가 이루어지는 것으로서 민의가 대변되는가? 인권이 보장되는가? 등의 질문이 우리 앞에 있다. 이러한 과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언제보다도 적극적으로 민주주의 개념을 인식하고 토론할 필요가 있다.

민주주의의 개념에 대한 진지한 토론을 지금 시작하지 않는다면 언제든 제2, 제3의 ‘이순자 망언’이 반복될 것이다.
 

[사진=전정환 변호사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