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헌재 갈등이 양승태 기소 초래

헌재 권한 ‘한정위헌’ 놓고 힘겨루기...재판소원도 대립

양 대법원장 시절 첩보수집·상고법원 추진으로 헌재 견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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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법행정권 남용 혐의로 구속기소 된 양승태 전 대법원장이 보석(보증금 등 조건을 내건 석방) 여부를 가릴 심문기일에 참석하기 위해 지난달 26일 오후 서초구 서울중앙지법에 도착, 호송차에 내려 법정으로 향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헌정사 최초로 전직 대법원장을 법정에 세운 ‘사법농단’ 사건의 시작은 대법원과 헌법재판소의 갈등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냐는 분석이 제기되고 있다.

7일 법조계 안팎에선 양승태 전 대법원장 시절 헌재 파견 부장판사가 2년이 채 안 되는 기간 300건 넘는 헌재 관련 정보를 대법원에 보고한 것을 두고 대법원과 헌재의 해묵은 갈등이 표출된 것이라는 해석이 나오고 있다.

◆2년간 대법원에 보고된 헌재 첩보만 325건

언론을 통해 확인된 양 전 대법원장의 공소사실에 따르면, 헌재에 파견된 최 모 부장판사는 2015년 7월부터 2017년 4월까지 총 325건의 헌재 관련 정보를 대법원에 보고했다.

그는 현대차 비정규직 노조 사건 등 헌재에 계류 중인 주요사건 정보 194건, 헌재소장 주재 비공개 회의 등 헌재 내부동향 정보 131건을 이규진 전 양형위원회 상임위원을 통해 대법원에 전달했다.

검찰은 최 부장판사가 단순히 업무 중 알게 된 정보를 보고하는 수준이 아니었던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주요 현안을 적극적으로 파악해 보고한 것으로 의심되는 정황들이 포착됐기 때문이다.

헌재소장 개인동향도 보고됐다. 최 부장판사는 2016년 10월 사회적 논란이 일었던 백남기 농민 부검영장에 대한 박한철 전 헌재소장의 개인적 견해도 대법원에 보고했다. 뿐만 아니라 비공개 회의서 있었던 헌재소장 발언 등도 보고됐다.

◆헌재 위상 높아지자 대법원 위기의식 발동

입법례를 살펴보면 미국과 일본 등은 일반법원이 헌법 분쟁을 담당한다. 반면 독일과 오스트리아 등은 독립된 헌법재판소가 헌법적 문제를 다루고 있다. 대한민국은 1960년 제2공화국 헌법에 헌재의 설치가 규정됐지만 5·16 군사정변이 발발하면서 실제 설립이 무산됐다. 그 후 법원 또는 헌법위원회가 헌법 분쟁을 맡았다. 그러다 1987년 개정된 현행 헌법에서 다시 헌법재판소 제도가 도입됐고, 1988년 최초로 헌재가 구성됐다.

헌법 제111조 1항은 헌재가 △법원의 제청에 의한 법률의 위헌여부 심판 △탄핵의 심판 △정당의 해산 심판 △국가기관 상호간, 국가기관과 지방자치단체 간 및 지방자치단체 상호간의 권한쟁의에 관한 심판 △법률이 정하는 헌법소원에 관한 심판을 관장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모 헌법교수는 “우리 헌법에 탄핵심판, 정당해산심판이 규정돼 있지만 현실에서 탄핵이나 정당해산이 일어날 거라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2004년 3월 노무현 전 대통령과 2016년 12월 박근혜 전 대통령에 대한 탄핵심판이 현실화 됐고, 2013년 11월에는 통합진보당 해산심판도 있었다.

법조계 안팎에선 탄핵심판·정당해산심판으로 헌재의 위상이 높아지자 대법원은 ‘최고법원’으로서의 위상에 위기의식을 느꼈을 것이라는 분석이 제기되고 있다. 대법원이 헌재 파견 판사를 통해 헌재 관련 첩보를 수집한 것도 이런 위기의식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설명이다.

◆상고법원 추진도 같은 맥락

양승태 사법부가 추진했던 ‘상고법원’도 같은 맥락에서 보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상고법원은 대법원이 맡는 상고심 사건 중 단순한 사건만을 별도로 처리하는 법원이다. 간단한 일반 사건은 상고법원이, 사회적으로 파장이 크거나 판례를 변경해야 하는 사건은 대법원이 맡는다는 구상이었다. 대법관 1인당 연간 3000건의 상고심 사건이 맡겨져 과중한 업무 부담이 문제되자 양승태 사법부가 역점 사업으로 추진했다.

상고법원 도입 논의가 나왔을 당시 다양한 측면에서 비판이 제기됐다. 특히 상고법원 설치로 대법원의 위상 강화를 노리는 게 아니냐는 비판도 많았다.

법률사무소 다한 홍성훈 변호사는 “상고법원 제도는 항소심까지는 현행 제도대로 유지되지만, 3심부터는 대법원이 사건의 중요도를 기준으로 심사해 대법원에서 심리할 것인지 상고법원에서 심리할 것인지를 분류한다는 것이다”며 “상고법원은 대법원의 과중한 업무 부담 해소와 동시에 대법관 숫자 동결, 상고법원 법관의 인사권을 통한 대법원장의 권한 강화로 이어지는 묘수였다”고 설명했다.

당시 대법원은 이례적으로 언론 접촉을 통해 상고법원 도입의 필요성을 역설하는 등 유래가 없을 정도로 적극적인 추진의지를 보였다.

양 전 대법원장은 본격적인 재판을 앞두고 있다. 상고법원 추진을 위해 강제징용 소송, 전교조 법외노조 소송 등을 놓고 청와대와 거래를 시도한 의혹으로 직권남용 혐의가 적용됐다.

홍 변호사는 “양승태 전 대법원장이 최고법원으로서 대법원의 위상을 공고히 하려다 넘지 말아야 할 선을 넘은 게 아닌가 싶어 안타깝다”고 말했다.

◆‘한정 위헌’ 둘러싼 힘겨루기

대법원과 헌재는 ‘한정위헌결정의 기속력’을 두고 수 십 년째 힘겨루기를 이어오고 있다.

한정위헌은 법률이 전면적 위헌은 아니지만 개념이 불확정적이거나 다의적으로 해석이 가능한 경우 축소해석을 하고 그 이상으로 적용범위를 확대하는 것은 위헌선언하는 결정이다. ‘...라고 해석하는 한 위헌이다’는 식이다.

홍성훈 변호사는 “한정위헌결정은 위헌인 것처럼 보이는 법률일지라도 헌법정신에 합치되도록 해석될 여지가 조금이라도 있다면 합헌으로 판단하는 것이다”며 “법률을 제정한 입법부를 존중하고, 위헌선언으로 인한 법적 공백 상태를 피하기 위한 것이다”고 설명했다.

한정위헌을 어떻게 바라보는가에 따른 입장 차이에서 대법원과 헌재의 힘겨루기가 비롯됐다.

대법원은 한정위헌결정의 기속력을 인정하지 않을 뿐 아니라 한정위헌 심판청구 자체를 부정하는 입장이다. 2001년 “재판의 근거가 된 국가배상법 제2조 1항 단서 조항이 헌재에 의해 한정위헌이 났으므로 재심을 받아들여 달라”는 사건에서 대법원은 “헌재의 한정위헌결정은 기속력이 없다”며 재심청구를 기각했다. 앞서 대법원은 1996년 ‘소득세법’ 사건에서도 같은 취지로 재판을 했다.

대법원은 사법권이 법원에 전속된 것이므로 사법권의 본질인 ‘법령의 해석·적용’도 법원에 전속된 것이라는 입장이다. 한정위헌결정도 법률해석이므로 법원이 헌재의 판단에 따를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하지만 헌법은 사법권 중에서 위헌법률심판을 헌재의 권한으로 두고 있다. 한정위헌은 위헌 여부에 대한 헌재의 변경결정이므로 한정위헌의 기속력을 인정하지 않는 대법원의 태도는 헌법에 반한다는 점이 학계와 법조계에서 논란이 되고 있다.

◆재판소원, 법원은 반대 vs 헌재는 찬성

한정위헌 논란과 맞물려 ‘재판소원’도 대법원과 헌재 갈등의 한 축이다. 재판소원은 법원의 판결도 헌법소원심판 청구대상에 포함시키자는 것이다.

헌법은 헌법소원심판을 헌재의 심판 대상으로 규정하면서 법률로 청구사유를 정하도록 위임하고 있다. 헌법재판소법 제68조 1항은 ‘공권력의 행사 또는 불행사로 인해 헌법상 보장된 기본권을 침해받은 자는 ‘법원의 재판을 제외’하고는 헌재에 헌법소원을 청구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즉, 현행 법률은 재판소원을 금지하고 있다.

재판소원 도입에 대해 법원은 반대 입장, 헌재는 찬성 입장을 보이며 대립하고 있는 상황이다. 양 기관은 2017년 2월 국회 헌법개정 특별위원회에 출석해 입장을 밝힌 바 있다.

당시 고영한 법원행정처장은 대법원과 헌재의 권한을 명확하게 하되, 재판소원 도입은 헌재가 최고 권력기관이 될 우려가 있어 신중해야 한다는 입장을 보였다. 그는 “재판에 대한 헌법소원은 확정 판결의 재심사로, 일반적·포괄적 재판을 담당하고 있는 대법원의 사법권을 훼손할 수 있다”며 “재판소원 제도가 도입되면 4심제로 인해 소송비용도 증가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반면 김용헌 헌재 사무처장은 헌법해석의 통일성과 권리구제의 효율성을 기할 수 있는 방향으로 개헌이 돼야 한다는 견해를 밝히면서, 재판소원을 허용해야 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그는 “입법부에서 만든 법률에 대해서도 헌법소원을 하는데, 민주적 정당성이 약한 행정부의 처분이나 사법부의 판결에 대해 심사를 못하는 것은 기능적 권력분립에 반한다”며 “일정한 요건 하에 재판소원을 도입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홍성훈 변호사는 “과거 대법원과 헌재는 재판소원에 대해 수차례 다른 판단을 내려왔다. 두 기관이 국민에 대한 봉사의 차원에서 서로 다른 의견을 제시하고 선의의 경쟁을 하는 것은 바람직하다”면서도 “전직 대법원장이 법정에 선 근간에 대법원과 헌재의 갈등이 자리 잡고 있다는 분석이 설득력을 얻고 있는 현실이 안타깝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