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승국 칼럼] 걱정되는 사법불신

  • 사법부 권위, 우리 모두 위해 지켜져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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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승국 변호사(로고스 대표)
입력 : 2019-08-04 09:00
수정 : 2019-08-04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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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 8일자 법률신문에 사법불신이 심각하다는 기사가 1면 톱으로 실렸다. 기사를 보니 법관 상대 진정, 청원 건수가 2014년 1920건에서 2015년 1776건, 2016년 1476건으로 감소 추세를 보였다고 한다. 그러던 것이 2017년 3644건으로 갑자기 2배를 훨씬 뛰어넘게 급증하더니, 작년에는 4606건으로 더욱 증가하였다는 것이다.

2017년에 무슨 일이 있었기에, 이렇게 진정, 청원 건수가 급등하였을까? 2017년은 바로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 사태가 본격화된 해이다. 2017년에 연일 언론을 장식하는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 보도를 보면서, 뜻있는 사람들은 ‘이를 보는 국민들이 사법 전체를 불신하면 어떻게 하나’하는 걱정을 하였는데, 그 걱정이 현실화된 것이다. 분명 이런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 사건은 법원의 전체 사건 중에서는 극히 일부분이지만, 일반 국민들이야 그렇게 생각하겠는가? 법원의 얼굴이 망가지면 전체가 망가지는 것이다.

재판이란 서로 이해관계가 대립되는 양 당사자가 자기가 옳고 상대방이 틀렸다며 목소리를 높이며 싸우는 장(場)이다. 그런데 판사는 신이 아니기에 나타난 증거 하에서 판례와 학설을 이리저리 찾아보고 입증책임이라는 잣대로 재보면서 최선의 판결을 하는 것이다. 그렇기에 판사가 아무리 최선의 판단을 한다고 하더라도 자기 주장이 받아들여지지 않는 쪽에서는 불만이 있게 마련이다. 과거 국민들이 사법부의 권위를 존중해주던 시절에는 그런 불만이 있다고 하더라도 항소, 상고, 재심이라는 법의 테두리 안에서 다투어 보고 최종적인 판결에는 판사가 최선을 다했을 거라고 생각하며 승복하는 분위기였다.

그런데 이렇게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이 낱낱이 펼쳐지면서 이제는 분위기가 반전되어 판사의 판결을 못 믿겠다는 불신이 급증하고 있는 것이다. 실제로 작년의 법관 상대 진정, 청원 건수 중 92.3%인 4253건이 재판 결과에 대한 불만이라고 한다. 내가 젊은 법관 시절 법복을 입고 가다보면 마주치는 사람들이 옆으로 잠시 비켜주면서 예를 차려주던 것은 이젠 전설 같은 이야기가 되어버렸다. 그렇지만 그것까지는 바라지 않더라도 최소한 법관의 판결에 대해서는 존중해주어야 할 텐데... 정말 걱정되는 사법불신 현상이다. 대법원 청사 중앙홀로 들어가면 정의의 여신상이 있다. 정의의 여신은 오른손에 천칭(天秤, balance)을 높이 들고 있고, 왼손에는 법전을 쥐고 있다. 왼손의 법전을 잘 살펴서 한쪽에 치우치지 않는 공정한 판단을 하라는 것이리라. 그런데 얼마 전에 인터넷을 검색하다가 충격을 받았다. 정의의 여신이 왼손에 들고 있는 것은 법전이 아니라 장부라는 조롱이 인터넷에 나돌고 있는 것이다. 정의의 여신은 장부를 보면서 누구 편을 들어주어야 나에게 이익이 되는가 따져보는 것이란다. 이걸 보면서 어쩌다가 사법부의 권위가 이 정도로 땅에 떨어졌나 하며 한숨이 절로 나왔다.

정의를 실현해야 할 법원에 대한 불신이 이 지경까지 왔는데, 정말 어찌할 것인가? 사법부가 이 지경에까지 이르도록 한 데에는 1차적으로 사법부의 책임이 크고, 그에 대해서는 사법부의 뼈를 깎는 반성이 있어야 할 것이다. 그렇지만, 아무리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에 불만이 많더라도 민주주의가 제대로 돌아가기 위해선 사법부의 권위는 지켜져야 한다. 사법부는 민주주의 최후의 보루이다. 이 사법부의 권위가 지켜지지 않아 아무도 사법부의 판결을 따르지 않고 무시한다면, 도대체 민주주의가 제대로 지켜질 수 있겠는가? 그렇기에 사법부의 권위를 지켜야 한다는 것은 사법부가 예뻐서가 아니라, 우리 모두가 민주주의 사회에서 살아가기 위한 최소한의 필요인 것이다. 사법 적폐를 청산하는 것은 물론 필요한 일이다.

그러한 사법행정권 남용이 무조건 100% 비난받아야만 하는 것인지, 거기에는 그럴 수밖에 없었던 사정은 없었는지, 거기에 관련된 판사들을 싸잡아 모두 적폐판사로 몰아세워도 되는 것인지, 혹시 그 중에는 그 때 그 자리에 있음으로 해서 한 때 잘못을 저질렀지만 판사 본연의 임무에서는 정말 존경할만한 부분이 더 컸던 판사가 있지는 않았는지 등등을 살펴볼 수는 없었을까? 그리하여 국민들이 사법부 전체가 썩었다는 오해를 갖지 않도록 적폐를 청산하는 일방으로 그렇지 않은 정의를 향한 사법의 흔들리지 않는 의지도 적극 알려주었어야 하지 않았을까?

그런데 그러한 세심한 배려 없이 무조건 사법부를 몰아쳐 국민들에게 사법부가 온통 썩었다는 인상을 주게 한 것은 자칫 교각살우(矯角殺牛)의 우를 범하는 것은 아닌가하는 생각이 자꾸 든다. 이미 위와 같은 사법불신의 통계는 사법이라는 소가 살처분(殺處分)까지는 아니더라도 빈사상태로 내몰렸다고 하여도 지나친 과장이 아닐 것이다. 한 번 무너진 사법부의 신뢰를 다시 세우는 데는 지난한 노력이 필요하고 시간도 많이 걸리는 일이다. 어쩌겠는가? 사태가 이미 이 지경까지 와 있는 것을. 지금이라도 사법부는 아니 더 나아가 법조 삼륜은 더 이상 사법부의 신뢰가 무너지지 않도록 노력하고, 무너진 사법부의 신뢰를 다시 원래대로 세우는 데 더욱 뼈를 깎는 노력을 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국민들도 무너지는 사법부는 바로 국민들의 한 축이 무너지는 것이라는 점을 인식하고, 사법 신뢰 회복을 위해 노력하는 법조를 인내를 가지고 따뜻한 눈으로 바라봐주어야 할 것이다.
 

[사진=양승국 대표변호사, 법무법인 로고스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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