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조산책] 입시가 목적인 사회, 교육이 목적인 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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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원 변호사(성균관대학교 노동법 박사과정)
입력 : 2019-09-01 09:00
수정 : 2022-06-04 16: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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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국 법무부장관 후보의 자녀는 수시학생부종합전형으로 대학에 진학하고, 의학교육입문검사(MEET) 점수를 반영하지 않는 전형으로 의학전문대학원(의전원)에 진학했다고 한다. 이 과정에서 조국 후보의 자녀가 정성적인 입학 전형을 불공정하게 이용했다는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

수시전형·입학사정관제·의전원·법학전문대학원(로스쿨) 등에는 정성적 평가 요소가 있다. 정성적 요소가 있으면 불공정한 입시가 이루어질 가능성이 있다. ‘불공정의 여지를 없애기 위해, 정량적 시험 위주로 입시를 개편해야 한다’는 주장이 이루어지고 있다. ‘획일화된 시험의 점수만으로 평가하는 등 불공정의 가능성이 원천적으로 0인 절대적 공정성’을 ‘완전공정성’이라고 해보자.

한국의 학생에게 ‘공부를 잘하는 사람이 누구라고 생각하느냐’고 물어보자. ‘수학능력시험 수석, 서울대학교 수석졸업, 5급 공무원시험 공채 수석합격자, 전문직시험 수석합격자’ 등의 답이 대다수일 것이다. 한국은 완전공정 시험을 통한 정량적 점수와 ‘수석’에 의미를 둔다. 극단적으로 말하면 한국인의 관심은 교육이나 업적이 아니라 공정한 입시에 따른 점수 자체에 있다.

반면 서구의 학생에게 같은 질문을 해보자. 이들은 ‘아인슈타인, 스티븐 호킹, 폰 노이만, 케인즈, 마르크스, 스티브 잡스, 빌 게이츠’ 등의 대답이 많을 것이다. 서구는 점수화가 불가능한 “정성적 업적”에 의미를 둔다. 정성적 업적은 타인과의 자리 빼앗기 경쟁에서 이겨 더 나은 톱니바퀴에 배치되었다는 함의가 아니다. 그 사람이 아니었다면 발생하지 않았거나 더 늦어졌을 기술과 인식의 진전을 빠르고 효과적으로 발생시켰음을 의미한다.

공교육의 최종목적은 사회의 기술과 제도 수준을 상향시키기 위해 연구자를 양성·선발하는 것이다. “누가 좋은 대학·학과에 진학할지 여부를 완전공정 시험으로 결정하는” 것 자체가 공교육의 목적은 아니다. 시험은 정답이 있는 기존의 지식만으로 이루어진다. 시험은 스포츠 경기처럼 현실을 단순화하므로 완전공정성을 가질 수 있다. 그러나 실제 전쟁이 스포츠보다 복잡하듯, 기술과 제도를 실제로 발전시키는 일에는 시험 같이 단순한 정답이 없다. 사회는 기존의 지식을 바탕으로 새로운 것을 고안할 수 있는 창의적이고 정교한 사고력을 가진 다수의 연구자가 필요하다. 이러한 능력의 개발은 완전공정 시험에 고득점할 것을 요구하는 획일적 교육 방식으로 유도하기 어렵다.

유소년 축구단 선수 대부분은 훗날 축구선수가 되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고 축구단이 잠재적 축구선수의 자질을 발굴하지 못하는 방식의 체력 단련만 하지는 않는다. 마찬가지로 대부분의 학생들은 훗날 연구자가 되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고 하여 잠재적 연구자를 발굴하고 자질을 성장시키지 못하는 방식의 획일적 교육과 공정한 평가를 반복 하는 것은 부적절한 면이 있다. 사회는 학생들이 연구자가 될 가능성을 고려하지 않고, 수험에 맞추어 정답을 빠르게 찾아내는 사고방식을 장기간 요구하는 교육 방식을 유지했다. 이 교육이 잠재적 천재들의 재능을 죽여 능력있는 전문직이나 고위공무원의 삶을 살게 했을것이라고 보는 것은 지나친 비약일까. ‘정성적으로 무엇을’ 어떻게 연구해야하는지 고민하던 어린 천재와 ‘정량적으로 몇 점을’ 어떻게 올려야 할지 고민하던 어린 천재의 사고방식은 많이 달라졌을 것이다.

서구의 공교육제도 및 대학제도의 평가·선발 방식에는 완전공정성이 없다. 기술과 제도의 발전을 위해 교육을 수단으로 사용했던 서구는 빠르게 기술과 제도를 발전시켰다. 중국과 조선은 공정한 시험 자체가 목적인 것처럼 완전공정 시험을 숭상했다. 중국·조선은 기술과 제도를 발전시키지 못해 도태됐다. 대학제도를 위시한 근대적 공교육제도는 고도의 기술 발전, 제도 발전을 견인했다고 여겨진다. 대학제도는 완전공정성을 포기하고 구성원의 평가와 선발에 불공정 소지가 있는 자유로운 재량을 주어 성공했다.

설령 일부 불공정한 입학사례가 있더라도, 수시전형·입학사정관제·의전원·로스쿨 입시의 정성적 평가 방식이 처음부터 금지되어야 한다고 말할 수는 없다. 부정입학을 막기 위한 투명한 구조가 필요한 따름이다. 지금의 사회 구성원들은 “누구나 완전공정 시험만 잘보면 좋은 직장을 얻을 수 있다, 불평등한 처우는 완전공정 시험을 잘 보지 못한 개인의 책임이다”라는 개념하에, 완전공정 시험의 점수 향상을 위해 반복적으로 몰두하고 있다. 젊은이들이 지위를 얻기 위해 완전공정 시험 공부만을 반복하는 것은 개인의 지위 성취에는 도움이 되어도 사회에는 도움이 되지 않는다. 젊은이들이 지위를 얻기 위해 정성적인 연구를 반복하는 것은 사회의 기술·제도 발전에 이바지한다. 지위 취득을 위한 학생들의 경쟁이 소모적인 자리 뺏기식 수험이 아니라 사회의 기술·제도 발전과 연계될 수 있는 연구의 방식으로 전환되어야 한다.

그럼에도 완전공정 시험은 공정하며 교육을 통한 계층 이동 통로로 기능할 가능성이 있는 등 장점이 많다. 완전공정 시험의 장점과 정성평가의 장점을 조화시키는 방법을 찾아야 할 것이다. 고려 가능한 방법 중 하나는 입시에서 전형적인 객관식 시험에 더하여, 비암기식 교양 논술 시험을 주요 평가요소로 사용하는 것이다. 교과 과정 이외의 분야의 학습이나 경험을 통해 정성적 평가 요소를 가진 사람은, 교양 논술 시험에 우수할 가능성이 높다. 논술 시험은 획일적·초인적인 수험을 요구하지 않는다. 이른바 ‘교과과정과 시험과 관련 없는 것에 관심을 갖는 바보’를 비웃는 식의 왜곡된 교육 문화가 감소할 것이다. 논술 능력은 적성 시험과 달리 학습·경험·훈련의 양에 상당한 영향을 받으므로 노력을 통한 계층 이동 통로로서의 역할도 가능할 것이다. 또는 평가자측에 정성 평가의 자유를 폭 넓게 주되, 합격자와 불합격자가 가진 모든 평가 요소를 익명으로 일반에 공개하는 방법도 고려해볼 수 있다. 입시 정보가 개인 정보로서 완전히 보호되어짐으로서 얻는 개인의 이익보다, 투명성이 확보되어 사회가 얻는 이익이 우월하다고 보는 관념일 것이다.

어떤 방안을 고안하든, 입시 제도를 구성할 때는 공정한 입시라는 목적을 위해 교육이라는 도구가 있는 것이 아니라 기술과 제도의 발전에 필요한 교육을 유도하는 목적을 위해 입시라는 도구가 있다는 전제에서는 벗어나지 않아야 할 것이다.
 

[사진=김기원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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