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례로 보는 세상] 보이스피싱에 속아서 한 행위, 처벌받을까?

  • 대법원 2019. 6. 27. 선고 2017도16946 판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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빅진택 변호사(법무법인 법승)
입력 : 2019-09-29 09:00
수정 : 2022-06-01 21: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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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서설

전자금융거래법 제6조 제3항 제2호는 [대가를 수수(授受)ㆍ요구 또는 약속하면서 접근매체를 대여받거나 대여하는 행위 또는 보관ㆍ전달ㆍ유통하는 행위]를 금지하고 있으며, 이를 위반할 경우 동법 제49조 제4항에 의거하여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2천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고 있다.

그렇다면 위 조문에서 말하는 ‘대가’란 무엇이며 어느 범위까지 인정되고 있는 것일까?

아래 대법원의 대상판결에서는 위 조문에서 말하는 ‘대가’의 의미에 관해 아래와 같이 제시함으로서 구체적인 판결을 내린 바, 이를 원심법원(2심)의 판단과 비교하여 살펴보기로 하자.

2. 대상판결의 사실관계

(1) 피고인은 수입이 없어 생활비가 필요하여 인터넷으로 여러 군데 대출상담을 받았지만 대부분 어렵다는 답변을 들었다. 그러던 중 피고인은 2016. 6.경 (상호 생략) 공소외인 팀장이라는 사람에게서 대출이 필요한지 물어보는 전화를 받았다. 공소외인 팀장이라는 사람은 ‘대출을 받으려면 심사를 받아야 하고, 대출심사를 통해 대출을 받으려면 가공으로라도 입출금내역 거래실적을 만들어서 신용한도를 높여야 하며, 대출이자를 자동이체할 수 있는 계좌도 필요하므로 주민등록 등본, 통장 사본, 신분증 사본, 체크카드를 퀵서비스를 통해 보내라’고 요구하였고, 피고인은 바로 그날 피고인 명의의 신한은행 계좌와 연결된 체크카드 등을 송부하였다.

(2) 피고인은 당시 공소외인 팀장이라는 사람에게서 막연히 대출 절차가 마무리되면 체크카드를 다시 돌려받는다는 말만 들었을 뿐이고, 언제 어떠한 방법으로 돌려받을지 구체적으로 정하지 않았다. 피고인은 체크카드를 송부한 다음 날 인터넷 뱅킹을 통해 신한은행 계좌로 자신이 알지 못하는 입출금 거래내역이 있음을 알게 되었는데, 공소외인 팀장이라는 사람에게서 거래실적을 늘리는 것이라는 설명을 듣자 별다른 이의 없이 대출이 되기를 기다렸다.

(3) 이후 피고인은 공소외인 팀장이라는 사람 등에게서 더 이상 연락을 받지 못한 채 위 신한은행 계좌가 거래 정지되었다.

3. 판결의 요지

가. 원심판결(2심)의 요지

① 피고인은 '대출을 받는 과정에서 대출심사 및 대출금 상환을 위해 체크카드를 교부하고, 계좌 비밀번호를 알려주었는데, 이틀 뒤 대출이 이루어졌는지 확인하던 중 계좌 거래가 정지된 사실을 알게 되어 경찰서에 방문했더니, 경찰이 차후에 연락을 주겠다고 하여 집으로 돌아왔다.'는 취지로 일관되게 진술하고 있는 점

② 피고인과 성명불상자의 통화내용을 살펴보면, 피고인은 G팀장이라는 사람의 "자동이체를 거실 계좌번호의 비밀번호를 한 번 확인할게요."라는 말을 듣고 자동이체 설정을 위해 계좌 비밀번호를 알려준 것으로 보이고, G 팀장이라는 사람으로 하여금 피고인의 계좌를 사적 용도로 사용하게 할 의도로 이를 알려준 것으로는 보이지 않는 점,

➂ 피고인은 2014. 2. 12. 이 사건 계좌를 개설한 이래 이 사건 전날인 2016. 6. 7.까지도 위 계좌를 통해 일상적인 금전거래를 해왔던 점,

④ 피고인이 이 사건 범행 당시 만 20세로서 동종 범죄로 수사를 받거나 처벌받은 전력이 전혀 없는 점 등을 종합하면

⑤ 피고인은 대출과정에서 체크카드가 필요하다는 G 팀장이라는 사람의 거짓말에 속아 체크카드를 교부하였던 것으로 보이는바, 피고인이 G 팀장이라는 사람으로부터 '피고인의 계좌 거래실적을 늘리기 위해 가공의 입·출금이 이루어질수 있다'는 말을 들었다고 하더라도, 그러한 사정만으로는 피고인이 대출받을 기회를 얻을 목적으로 상대방에게 피고인의 계좌에 대한 자유로운 사용권한을 넘겨준 것이라고 단정하기 어렵고, 달리 이를 인정할 증거가 부족하다.

⑥ 따라서 피고인이 상대방에게 접근매체를 교부한 것과 대출받을 기회를 얻은 것 사이에 대가관계가 있다고 판단한 원심판결에는 사실오인의 위법이 있다

나. 대상판결(대법원)의 요지

➀ 피고인은 인터넷으로 여러 군데 대출상담을 받았지만 대부분 어렵다는 답변을 들었으므로 정상적인 방법으로 대출받기 어려웠다. 피고인은 공소외인 G팀장이라는 사람에게서 접근매체인 체크카드를 통해 가공으로라도 입출금내역 거래실적을 만들어 신용한도를 높이는 방법으로 대출받을 기회를 얻을 수 있다는 설명을 들은 다음 막연히 대출 절차가 마무리되면 다시 돌려받기로 하고 체크카드를 송부하였다.

➁ 피고인은 대출받을 기회를 얻기로 약속하면서 일시적으로 다른 사람으로 하여금 접근매체 이용자의 관리·감독 없이 접근매체를 사용해서 전자금융거래를 할 수 있도록 접근매체를 빌려주었고, 피고인이 정상적인 방법으로 대출받기 어려운 상황인데도 대출받을 기회를 얻은 것은 접근매체의 대여와 대응하는 관계, 즉 대가관계가 있다고 볼 여지가 있다.

➂ 원심으로서는 피고인이 대출받을 기회를 얻기로 약속하면서 접근매체를 대여하였는지 여부를 심리하여 판단했어야 한다. 원심의 판단에는 필요한 심리를 다하지 않은 채 전자금융거래법 제6조 제3항 제2호에서 정한 ‘접근매체의 대여’ 또는 ‘대가’에 관한 법리를 오해하여 판결에 영향을 미친 잘못이 있다. 이를 지적하는 상고이유 주장은 정당하다.

4. 대상판결의 의의

‘대출을 받기 위한 목적으로 자신의 체크카드를 퀵서비스를 통해 송부한 행위’가 전자금융거래법 제6조 제3항 제2호에서 규율하는 ‘접근매체의 대여와 대응하는 대가관계‘가 있는 행위인지에 대하여 원심법원과 대법원은 판단을 달리하고 있다.

즉, 원심법원은 피고인의 행위를 ‘보이스피싱 조직원의 기망에 속아 접근매체를 교부한 행위’로 보아 ‘대가관계’ 부정하였으나, 대법원은 ‘정상적인 방법으로 대출받기 어려운 상황인데도 대출받을 기회를 얻은 것은 접근매체의 대여와 상관관계 가 있다’고 보아 ‘대가관계’를 긍정한 것이다.

이러한 대법원의 판단에 의한다면 ‘보이스피싱 조직’의 기망에 속아 자신의 접근매체를 전달한 자들은, 자신들의 행위가 ‘보이스피싱’에 연루된 것이라는 ‘정’을 모른다 하더라도 ‘전자금융거래법 위반죄’로 처벌받을 가능성이 높아졌다고 볼 수 있다.

5. 결어

사법부는 ‘보이스피싱’과 관련된 범죄에 대하여 날이 갈수록 엄격하고 신중한 자세를 취하고 있다.

대상판결에서 적용하고 있는 ‘전자금융거래법 제6조 제3항 제2호’ 또한 [대가를 주고 접근매체를 대여받거나 대가를 받고 접근매체를 대여하는 행위]로 규정되어 있던 조문이 2015. 1. 20. [대가를 수수(수수)ㆍ요구 또는 약속하면서 접근매체를 대여받거나 대여하는 행위 또는 보관ㆍ전달ㆍ유통하는 행위]로 개정됨으로써 처벌범위가 넓어진 예 중 하나이다.

(개정 전에는 대가를 주거나 받은 후 접근매체를 대여하는 행위만 처벌하였으나, 개정후에는 이를 약속하고 대여하는 경우에도 처벌하게 된 것이다)

그러나 위 조항이 대상판결의 피고인과 같이 ‘보이스피싱 조직의 기망에 의하여 철저히 이용당한 자’들에게도 반드시 적용되어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의구심이 든다. 애초에 위 조항은 ‘보이스피싱 범죄’를 억제하고 관련자들을 처벌하기 위한 목적으로 제/개정되었을 뿐, 자신의 행위가 ‘보이스피싱’에 해당한다는 ‘정’을 전혀 모른 자들이나 미필적 고의조차 없는 자들을 처벌하기 위한 목적은 아니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보이스피싱 조직’은 날로 성장하고 있으며, 이로 인한 폐해가 큰 만큼 관련자들을 엄단하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 정을 모르고 ‘보이스피싱 조직’에 철저히 이용당한 채 아무런 이득도 얻지 못한 자들을 처벌하는 것은, 범죄억제의 측면에서도 효과가 없을 뿐더러 불필요한 처벌만능주의로 빠지는 것이 아닐까 걱정해본다.
 

[사진=박진택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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