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의사실공표금지...고위 공직자 ‘깜깜이 수사’되나

법무부, 피의사실공표 일체 금지 추진

과거 개정안, 해외 사례도 예외 열어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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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무부가 검찰의 피의사실공표를 일체 금지하겠다고 나서자 법조계 안팎에서 논란이 일고 있다.

검찰이 조국 법무부 장관 일가를 둘러싼 각종 의혹에 대해 수사를 벌이고 있는 상황에서 검찰 압박용 카드가 아니냐는 비판이 제기됐다. 조 장관이 “피의사실 공표 제한은 가족 수사 뒤에 할 것”이라며 한 발 물러섰지만 논란은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피의사실공표를 둘러싼 논란은 어제 오늘 일이 아니다. 하지만 이를 ‘일체 금지’하겠다는 것에 대해선 신중한 검토가 요구될 것으로 보인다. 특히 고위공직자 비리 의혹에 대해서도 공표가 금지되는 게 타당한 것이지는 더 많은 고민이 필요할 것이다.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이 서거한 2009년, 피의사실공표 관련 두 건의 형법개정안이 국회에 발의됐다. 검찰이 ‘논두렁 시계’ 등 망신주기 식 피의사실을 언론에 흘려 노 전 대통령을 사망으로 내몰았다는 비난이 많던 시기다. 당시에도 고위공직자 등의 수사나 공익을 위해 필요한 경우에는 피의사실을 공표할 수 있도록 예외를 두려고 했다.

2009년 9월 고 박상천 당시 민주당 의원이 발의한 법안은 피의사실공표죄의 처벌 수위를 강화하면서도 고위공직자 등의 수사는 수사상황을 발표할 수 있도록 예외를 뒀다. 즉, 고위공직자 등이 관련되거나 기타 국민적 관심의 대상이 되는 사건처럼 중대한 공익상 필요가 있는 때에는 혐의사실과 수사상황 등을 공식적으로 발표, 공개할 수 있도록 했다.

같은 해 10월 이한성 당시 한나라당 의원이 발의한 법안은 피의사실공표죄 처벌의 예외를 분명히 했다. 공공의 이익을 위해 필요한 경우에는 진실한 사실을 소속기관 장의 지시에 따라 공표하는 것을 허용했다.

당시 두 법안의 검토보고서를 보면 모두 외국 입법례를 찾아볼 수 있다. 미국, 독일, 프랑스, 일본 등 주요 선진국에선 표현의 자유, 국민의 알권리를 중시해 피의사실공표죄 규정이 존재하지는 않고, 피의사실 공표로 인한 민·형사상 책임을 제한하고 있다는 내용이다.

미국의 경우 연방검사업무지침(US Attorney’s Manual)에서 사건내용이 대중에게 상당히 알려진 경우, 수사기관이 사건을 수사 중에 있다는 사실을 공개해 시민들을 안심시킬 필요가 있는 경우 등에는 예외적으로 수사사건 정보를 공개한다.

독일은 사회의 이목을 집중시키는 사건에 한해 가치평가적 확인을 배제하고 확실하게 규명된 범위 내에서 사실관계만 예외적으로 언론 브리핑을 하기도 한다.

프랑스도 형사소송법에서 일정한 절차에 따라서 절차 진행상황에 대한 객관적인 사실을 발표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

일본의 경우 공소제기 전 범죄행위에 관한 사실은 공공의 이해에 관한 사실로 간주해 명예훼손죄의 성립범위를 제한함으로써 표현의 자유를 넓게 보장하고 있다.

2008년 이후 18~20대 국회에선 피의사실공표 관련 형법 개정안이 총 9차례 발의됐지만 충분한 논의 없이 대부분 임기만료로 폐기됐다.

서초동의 한 변호사는 “법무부는 검찰, 대법원, 대한변협 등으로부터 다양한 의견을 수렴하면서 최종안을 만들어 나갈 예정이라고 밝힌 만큼, 이 과정에서 고위공직자에 대한 국민의 알권리에 대한 충분한 고민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대법원은 수사기관의 피의사실 공표와 관련한 기준으로, ①일반 국민들의 정당한 관심의 대상일 것 ②객관적이고도 충분한 증거나 자료를 바탕으로 하는 사실발표에 한정할 것 ③정당한 목적 하에 수사결과를 발표할 수 있는 권한을 가진 자에 의해 공식의 절차에 따라 행할 것 ④무죄추정의 원칙에 반하여 유죄를 속단하게 할 우려가 있는 표현이나 추측 또는 예단을 불러일으킬 우려가 있는 표현을 피할 것을 제시한 바 있다.
 

수사기관의 피의사실공표 관행 방지를 위한 정책토론회 (서울=연합뉴스) 김인철 기자 = 조현욱 대한변호사협회 부협회장(왼쪽 네번째)이 18일 오후 국회 의원회관 제3세미나실에서 열린 '수사기관의 피의사실공표 관행 방지를 위한 정책토론회'에서 발언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