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승국 칼럼] ​군자와 소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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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승국 변호사(법무법인 로고스 대표)
입력 : 2020-05-09 09:00
수정 : 2020-05-12 15: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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훈민정음 해례 상주본 소식이 궁금하다. 작년 10월 7일 문화재청 국정감사에서 정재숙 문화재청장이 법원·검찰 등과 함께 지속적 회의를 거쳐 찾아오도록 노력하겠다고 하였는데, 아직 찾아왔다는 얘기가 들리지 않는다. 훈민정음 해례본은 집현전 학사들이 한글의 자음과 모음을 만든 원리와 용법 등을 설명한, 우리 민족에게 아주 소중한 문화유산이다. 그동안 훈민정음 해례본이 있다는 것은 기록상으로만 알고 있었지 실제 해례본의 실물은 찾지 못하였다. 그러다가 1943년에 해례본이 처음 안동에 나타나 전형필이 구입했으니, 이를 훈민정음 해례 안동본이라고 한다. 그 후 상주에 나타나 현재 배익기씨가 소장하고 있는 것을 상주본이라고 한다. 이 훈민정음 해례본을 대하는 전형필과 배익기의 태도를 보면서 논어의 한 구절이 떠오른다. ‘군자유어의 소인유어리(君子喩於義 小人喩於利)’이다. 풀이하면 군자는 정의에 밝고, 소인은 이익에 밝다는 뜻이리라.

먼저 전형필의 훈민정음 해례본 구입에 대해서 보자. 1943년 6월경 전형필은 고서 중개인으로부터 경북 안동에 훈민정음 해례본이 나타났다는 소식을 듣고, 값으로도 따질 수 없는 우리 민족의 소중한 문화유산이 나타났다는 것에 흥분한다. 또한 당시는 일제가 한글 말살정책을 펴고 있던 때라, 자칫 해례본의 소식이 일제의 귀에 들어갔다가는 겨우 나타난 이 해례본이 일제에 의해 소멸될 수 있다는 것을 직감한다. 그리하여 전형필은 중개인이 얘기해준 1000원의 10배인 1만원을 주고 이 해례본을 구입한다. 당시 1000원이면 서울의 큰 기와집 한 채 값이라는데, 전형필은 그 10배의 사재를 털어 이를 구입한 것이다. 더구나 중개인에게도 해례본을 구입할 수 있게 해주어 고맙다며 1000원이라는 거액을 지급하였다.

그리고 이를 비밀에 부치고 있다가 1945년 광복한 후에야 이를 세상에 공개한다. 그런데 훈민정음 해례본에 또 한 번의 위기가 찾아온다. 6·25전쟁이 발발한 것이다. 전형필은 급히 피란을 가야 하는 상황에서 자신이 수집한 그 많은 문화재 중 이 해례본만은 어떠한 일이 있어도 보존해야 한다고 다짐한다. 그리하여 해례본을 오동나무 상자에 넣어 소중히 챙겨 피란을 간다. 그리고 이를 잃어버릴세라 낮에는 품에 꼭 품고 다니고, 밤에는 베개 삼아 베고 자며 자신의 몸에서 한순간도 떼어내지 않고 지켰다고 한다. 이런 전형필의 노력으로 훈민정음 해례 안동본은 1962년 국보 제70호로 지정되었고, 1997년에는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되었다. 그리고 지금도 간송미술관에서 소중히 보호되며 우리 후손들에게 자랑스러운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한편 2008년 경북 상주에 또 하나의 훈민정음 해례본이 나타난다. 배익기가 자신이 훈민정음 해례본을 소장하고 있다고 밝힌 것이다. 그러나 이 상주본은 곧 법정분쟁에 휘말린다. 골동품 판매업자 조모씨가 배씨를 상대로 해례본 인도 청구 소송을 제기한 것이다. 조씨의 주장은 배씨가 자신의 가게에서 고서적을 사가며 상주본을 몰래 훔쳐갔다는 것이다. 소송은 대법원까지 가면서 조씨의 승소로 최종판결이 났다. 이후 배익기는 문화재 절도죄로 구속 기소되어 1심에서는 10년형을 선고받았으나 2심, 3심에서 무죄 판결을 받았다. 언뜻 민사와 형사가 모순되는 것 아니냐고 생각할 수 있다. 그렇지만 사람을 처벌하는 형사사건에 있어서는 엄격한 증명을 요하기에 단순히 강한 의심이 든다는 정도만으로는 유죄를 인정할 없기에 민사와 형사가 서로 다른 결론이 나올 수 있다. 그 사이 조씨는 2012년 12월경 사망하였는데, 죽기 전에 상주본을 국가에 기증한다. 그런데 배익기는 자신이 무죄 판결을 받았다며 상주본 인도를 계속 거부하고, 2017년에는 문화재청의 강제집행을 막아달라며 청구이의 소송을 제기한다. 그러나 2019년 7월경 대법원은 형사소송에서 무죄 판결을 받았다고 소유권이 인정되는 것은 아니라며 배씨의 청구를 기각하였다.

자, 이쯤 되면, 문화재를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문화재청의 인도 요청에 응해야 할 것이 아닌가? 더구나 그 문화재가 보통 문화재인가? 값어치를 따질 수 없는 우리 민족의 소중한 유산이 아닌가? 그런데 배익기는 상주본이 최소한 1조원의 가치가 있다며 그 10%인 1000억원을 주지 않는 한 인도할 수 없다고 고집을 피우고 있다. 그 사이 배익기의 관리 소흘로 배씨의 집에 불이 나 상주본 한 장이 불에 타고 나머지도 불에 그슬리는 사고까지 발생했다. 현재 문화재청은 강제집행을 하다가는 배익기가 아예 상주본을 멸실시킬까봐 이를 주저하고 있다. 그렇다고 배씨의 요구대로 1000억원을 줄 수는 없는 것 아닌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문화재청의 고민은 깊어만 간다.

서울의 기와집 한 채 값이면 되는데도, 소중한 해례본이 사라질세라 열 채 값을 주고 이를 구입한 전형필, 그리고 6·25전쟁 중에도 한순간도 이를 몸에서 떼어놓지 않고 소중히 간직한 전형필. 또한 한 푼의 보상도 바라지 않고 지금은 세계문화유산으로 빛을 발하게 한 전형필. 한편 해례본을 인도하라는 판결에도 불구하고 이를 거부하며 1000억원을 요구하는 배익기, 게다가 관리 소홀로 이 소중한 해례본을 불에 일부 소실시킨 배익기(일부에선 배익기가 고의적으로 훼손시킨 것이 아니냐며 의혹을 제기하고 있기도 하다). 누가 군자이고 누가 소인인지는 굳이 말하지 않아도 될 것이다. 배익기도 1963년생으로 이제 육십을 앞두고 있다. 그런데 남은 노년의 삶에 다 쓰지도 못할 1000억원이라는 거액에 탐욕의 눈을 부라려야만 할까? 우리 민족의 보물을 인질로 하여 탐욕을 부리는 배익기에게 분노감이 치밀면서, 또 한편으로 노년에 들어서도 그런 탐욕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그가 측은하게 느껴진다. 자기가 억울하게 옥살이를 하였다는 응어리가 있는 것일까? 어떻게 하든 문화재청이 배익기의 심리 상태를 잘 파악하고 설득하여, 그가 욕심을 내려놓고 민족 앞에 우리의 보물을 내놓을 날이 빨리 오기를 바란다.
 

[사진=양승국 변호사, 법무법인 로고스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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