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승국 칼럼] 사실에 충실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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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승국 변호사(법무법인 로고스 대표)
입력 : 2021-01-16 09:00
수정 : 2021-01-16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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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 : 전 세계 30세 남성은 평균 10년간 학교를 다닌다. 같은 나이의 여성은 평균 몇 년간 학교를 다닐까?
답 : A: 9년, B: 6년, C: 3년

스웨덴의 통계학자이자 의사인 한스 로슬링(Hans Rosling, 1948~2017)이 쓴 책 <팩트풀니스(Factfulness)>에 나오는 문제이다. 정답은 무엇일 것 같은가? 나는 아직은 제3세계 여성들이 교육의 기회에서 많은 차별을 받고 있다고 생각하여 정답을 B라고 하였다가 틀렸다. 정답은 A이다. 책을 펼치면 먼저 이런 류의 13항의 문제가 독자들을 맞이한다. 나는 13개의 문제 중에 5개를 맞혀 낙제점을 받았다. 그래서 나는 “내가 이렇게 세계적인 인구, 가난, 건강, 교육 등의 문제에 대한 상식이 형편없구나”하며 자탄하였다. 그런데 책을 보니 배운 사람이든 못 배운 사람이든 대부분의 사람들이 형편없는 점수를 받았다. 이는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 학자, 전문가는 물론이고 언론인 등도 자기 분야 이외에서는 낙제점을 면하지 못하였다. 한스 로슬링은 침팬지에게 문제를 내도 확률상 평균 1/3의 정답률을 보일 텐데, 인간들은 침팬지보다 못하다고 하였다.

어떻게 인간이 침팬지보다 못한 답을 낼 수 있을까? 인간이 무지하다고 하더라도 최소한 침팬지 정도의 정답은 내야 할 것 아닌가? 그렇지 않다는 것은 인간의 인식 세계가 편향되어 있다는 것이다. 세상은 계속 변하고 있다. 그러므로 인간은 계속하여 새로운 것을 받아들이며 끊임없이 자신의 사고체계를 유연하게 가지고 가야 하는데, 많은 사람들이 처음 형성한 사고체계에 고착화되어 좀처럼 바꾸질 못한다. 여기에 다른 인종, 다른 문화 등에 대한 편견까지 겹치면 자신의 생각과 다른 것을 접하여도 자신의 생각을 쉽게 바꾸려 하지 않는다. 실제로 로슬링이 세계를 돌며 강의를 할 때 확실한 자료와 통계수치를 인용하며 얘기를 하여도 자신의 잘못된 믿음을 바꾸려 하지 않는 경우를 많이 보았다고 한다. 처음 로슬링은 사람들의 지식을 업그레이드하기 위해 의욕을 냈지만, 사람들의 이런 성향을 보고 좌절을 하기도 하였다고 한다. 그러면서 인간이 왜 이럴까 하는 의문에 대해 깊이 생각하면서 <팩트풀니스>라는 책을 쓰게 된 것이다. 한스 로슬링은 인간의 이런 인식 고착화를 간극 본능, 부정 본능, 공포 본능, 비난 본능 등 10개의 본능으로 나누어 설명하고 있다. 이를테면 사람은 모든 것을 서로 다른 두 집단, 나아가 상충하는 두 집단으로 나누고 둘 사이에 거대한 불평등의 틈을 상상하는 거부하기 힘든 본능이 있다고 한다. 일례로 세상을 가난한 나라와 부유한 나라로 나누고 그 간극은 여전히 크게 존재한다고 생각한다. 내가 위 문제에서 틀린 것도 가난한 나라의 여성은 교육을 받을 기회가 크게 제약되어 있을 거라는 간극 본능에서 벗어나지 못했기 때문이다.

오늘날 우리 사회 갈등의 밑바닥에도 이런 본능들이 자리 잡고 있지 않을까? 보수와 진보로 나뉘어 서로를 인정하지 않는 부정 본능, 보수가 집권하면 인권이 크게 제약되고 부정부패를 저지를 것이라는 공포, 진보가 집권하면 나라를 빨갱이에게 팔아넘길 것이라는 공포 본능 등등. 그렇기에 서로에게 색안경을 끼고 조금이라도 트집 잡을 것이 있으면 그것 보라는 듯이 침소봉대하여 상대를 비난하기에 열을 올린다. 세상은 빠르게 변화하고 있는데, 언제까지 냉전 독재 시대에 형성된 빨갱이 논리와 자본 독재 논리에 사로잡혀 있을 것인가? 한스 로슬링은 책 제목을 ‘팩트풀니스(Factfulness)’라고 하였다. 사실에 충실하라는 얘기이다. 어렵고 복잡한 때일수록 ‘기본에 충실하라’는 말이 있는데, 한스 로슬링의 말처럼 사실에 충실해야 할 것이다. 하긴 요즘처럼 가짜 뉴스가 판을 치는 세상에서는 사실도 오염이 되긴 하는데, 그럴수록 진실된 사실에 충실해야 할 것이다. 사실은 신성하다는 말도 있지 않은가? 그럼 사실에 충실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 한스 로슬링은 겸손과 호기심을 얘기하고 있다. 겸손이란 본능으로 사실을 올바르게 파악하기가 얼마나 어려운지 아는 것이고, 지식의 한계를 솔직히 인정하는 것이라고 한다. 아울러 새로운 사실을 발견했을 때 기존 의견을 기꺼이 바꾸는 것이라고 한다. 그리고 호기심이란 새로운 정보를 마다하지 않고 적극 받아들이는 자세를 말한다고 한다. 아울러 내 세계관에 맞지 않는 사실을 끌어안고 그것이 내포한 의미를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것을 말한다고 한다.

새겨들어야 할 말이다. 진정한 보수, 진정한 진보라면 사실에 충실해야 할 것이다. 그리하여 겸허히 자기가 알고 있는 사실의 진실 여부를 확인하고, 자기가 알고 있는 사실이 틀렸다고 한다면 그에 터 잡은 자신의 생각도 겸손하게 바꿀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자신의 세계에만 사로 잡혀있지 말고, ‘왜 저 사람들은 저렇게 생각할까?’ 하는 호기심을 가지고 그들의 입장에서도 이해해보려고 해야 할 것이다. 그렇게 하다보면 서로에게 공통분모도 찾을 수 있지 않을까? 그리고 서로의 주장이 팽팽하게 대립할 때에도 ‘과연 이것은 누가 뭐라고 하여도 양보할 수 없는 절대적 가치인가?’를 염두에 두면서 양보할 수 있는 것을 찾아 서로 차근차근 맞춰나갈 수 있는 지혜를 발휘한다면 상생의 길도 열리지 않겠는가? 나는 합리적인 보수주의자, 진보주의자들이라면 이렇게 하리라고 생각한다. 지금 우리의 눈과 귀를 어지럽게 하는 이들은 과거에 형성된 생각에만 고착되어 자기 생각만이 절대적으로 옳다고 생각하며 도대체 남의 말을 들으려고 하지 않는 자들이다. 이들은 소위 말하는 수구꼴통, 좌빨이라고 할 것이지 진정한 보수, 진보주의자라고 할 수 없다. 지금은 이들의 목소리가 커서 이들이 진정한 보수, 진보를 가리고 있지만, 사회가 건강하려면 이들의 뒤에 가려져 있는 합리적 보수와 진보가 나서야 한다. 이들이 손을 잡고 저 수구꼴통과 좌빨을 퇴출시켜야 한다.

협상의 기술 한스 로슬링의 <팩트풀니스(Factfulness)>를 읽으면서 거짓이 난무하는 우리 사회에 기본적인 사실의 충실함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다시금 깨닫는다. 그러면서 겸손과 호기심으로 무장하고 사실에 충실하는 보수와 진보가 어서 빨리 우리 사회를 건강하게 이끌어 주기를 희망한다.
 

[사진=양승국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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