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률 전문기자의 이슈 톺아보기] 투기꾼이 농지에 버드나무 심은 이유····"허술한 농지법 때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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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1-03-16 03:00
수정 : 2021-03-16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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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한국토지주택공사 제공]


한국토지주택공사(LH) 임직원들이 광명·시흥 신도시 예정 부지에 사들인 토지 대부분이 농지인 것으로 밝혀졌다. 이를 두고 일각에서는 “농지가 투기꾼의 놀이터가 된 배경에는 사전 자격 취득이 필요한 농지를 쉽게 취득할 수 있도록 한 허술한 농지법 때문”이라는 비판이 나온다.

농지법상 농지는 원칙적으로 농사를 짓는 사람만 살 수 있다(제6조). 농지는 국민에게 식량을 공급하고 국토 환경을 보전하는 데 필요한 기반인 데다, 한정된 자원이기 때문에 농지가 직접적인 투기의 대상이 되는 것을 막기 위해서다. 그래서 농지를 사려면 관할 지자체에 농업경영계획서를 제출해 농지 취득 자격 증명을 발급받아야만 하고(제8조), 그 후에도 농사를 짓지 않으면 처분 명령이 내려진다(제10조).

그러나 비(非)농업인도 농지를 가지고 있는 사례가 적지 않다. 어떻게 그럴 수 있을까.

◆非농업인 농지취득 예외조항 16개··· '구멍 숭숭'

15일 법조계에 따르면 비농업인이 농지를 취득할 농지법의 예외조항은 16개에 달한다. 우선 현행법상 신청인이 직업이나 경력을 허위로 기재하거나 누락하는 등 부실 계획서를 제출하더라도 담당 공무원이 이를 걸러낼 법적 근거가 없어서다. 일선 공무원들 사이에서 “(현행법상) 확인사항은 기껏해야 토지 대장과 주민등록등본 정도인데, 법에도 명시하지 않은 재직증명서나 관련 서류를 무턱대고 요구할 수도 없는 노릇”이라는 볼멘 소리가 나오고 있는 이유다.

물론 농지법은 부정한 방법으로 자격 증명을 취득한 경우나 정당한 사유 없이 농업경영계획서 내용을 이행하지 않는 경우 5년 이하의 징역 등에 처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제58조). 이 조항을 적용해 처벌하려면 ‘(거짓으로 자격 증명을 받은 사람이) 농업이 아닌 다른 목적으로 농지를 취득했다’는 사실을 입증해야만 한다. 그러나 지자체가 이를 판단할 인력과 능력이 부족해 사후 점검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어 사실상 법 위반으로 처벌된 사례는 거의 없다.

농지법이 농민의 자격 요건을 완화하는 방향으로 개정돼 온 것도 문제점으로 꼽힌다.

현행법상 1000㎡ 이상의 농지에서 농작물이나 다년생식물을 경작 또는 재배하거나 1년 중 90일 이상 농업에 종사하는 사람이라면 농민 자격을 갖출 수 있다. 농민이 아니더라도 자신의 땅에 식물만 심으면 누구나 농민이 될 수 있는 것이다.

이 때문에 ‘LH 임직원들이 밭을 사면서 그곳에 버드나무를 급하게 심었을 것’으로 전문가들은 보고 있다. 매입한 땅에 비닐을 씌워 잡초가 자라지 못하게 한 뒤, 묘목을 심어 놓으면 특별한 관리 없이도 농사를 짓는 것처럼 보일 수 있기 때문이다.

◆농지취득 보완 구체화에 손사래 치는 정부

묘목을 심어 놓으면 추후 토지 보상과정에서 더 많은 돈을 받을 수 있는 이점도 있다. 이들은 지장물로 분류돼 이전비와 나무 1그루당 보상금이 책정된다. 특히 버드나무와 같은 희귀수종은 보상 기준이 모호해 토지 소유주와의 협상을 통해 보상액을 결정한다. 지장물이란 공공사업 시행 지구에 속한 토지에 설치되거나 재배되고 있어 그해 공공사업 시행에 방해가 되는 물건을 말한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투기 목적의 농지 취득을 막기 위한 장치를 강화하는 방향으로 농지법을 개정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농취증 발급 업무를 담당하는 한 공무원은 “(농취증)신청서류에 직업이나 경력란 등을 적지 않고 제출해도 증명서가 발급되는 경우가 적지 않다. 공란을 두면 발급을 거부하거나 증빙서류 제출을 의무화하는 방식으로 관련 규정을 개정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또 일부 전문가들은 “현행법에 규정된 농지 소유의 예외조항을 삭제해야 투기 가능성을 차단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농지법은 농지를 상속했거나 농사를 짓다가 중단한 사람, 1000㎡ 미만의 주말·체험농장을 가진 사람도 예외적으로 농지를 가질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 이 예외조항이 사실상의 투기 허용 조항으로 전락했다는 것이다.

이에 농림축산식품부 관계자는 “이전부터 농지가 투기에 악용된다는 지적이 계속돼 농지 취득 제도 보완을 검토하고 있다. 하지만 아직 구체화할 단계는 아니다”고 밝혔다. 그동안 농지가 다양하게 활용되도록 농지 취득 규제를 완화해 온 만큼 이를 다시 강화하는 데는 신중해야 한다는 취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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