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례로 보는 세상] 계약 해제권 배제 규정의 효력

  • 대구지방법원 상주지원 2020카합3027 가처분이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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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광진 변호사
입력 : 2022-01-08 06:00
수정 : 2022-06-01 21: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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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남광진 변호사]

1. 들어가며
 
부동산 매매계약서를 작성하였는데, 상대방의 요청으로 ‘어떠한 경우라도 본 계약을 해제할 수 없다’는 규정을 넣게 되었다. 그런데 상대방이 계약서에 명시된 약속, 가령 주기로 한 돈을 오랜 기간 주지는 않는 등 주된 의무를 어기고 있다고 치자. 그런데도 이 계약을 해제하지 못하고 마냥 기다려야만 할까. 계약을 해제하고 부동산을 다른 곳에 팔고 싶다면, 어떤 방법이 있을까.
 
2. 사실 관계
 
가. 채권자와 채무자는 2017. 11. 12. 채무자가 채권자에게 00시 00면 00리 산 000 임야 000,000㎡(이하 ‘이 사건 토지’라 한다)를 대금 20억 원에 매도하기로 하는 매매계약을 체결하였다. 채권자는 같은 날 채무자에게 계약금으로 2억 원을 지급하였다.
 
나. 채권자와 채무자는 2017. 12. 12. 이 사건 토지의 매매대금을 28억 원으로 정하여 새로운 매매계약서를 작성하였다(이하 위 매매계약서에 따른 매매계약을 ‘이 사건 매매계약’이라 한다). 채권자는 같은 날 채무자에게 8,000만 원을 지급하였다. 이 사건 매매계약의 내용 중 이 사건과 관계된 부분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부동산 매매 계약서
 
 
매매대금 이실팝억 원정(₩2,800,000,000)
계약금 이억 원정(₩200,000,000)은 2017년 11월 12일에 지불완료 소급적용하기로 한다.
중도금 팔천만 원정(₩80,000,000)은 2017년 12월 12일에 지불한다.
잔금 이십오억이천만원정(₩2,520,000,000)은 2018년 10월 31일 지불한다. 단, 잔금지급일 이전에 개발행위허가 완료시 완료 후 1개월 이내에 지급하기로 하고 이를 어길시 계약금을 포기키로 한다.

 
3. 특약사항
6. 본 계약체결 후 매도인은 어떠한 이유로도 계약을 해제할 수 없다. 해제시 매수인은 잔금 공탁 후 소유권을 이전키로 하고 매도인은 어떠한 이의를 제기할 수 없기로 한다.

 
다. 채권자는 2018. 10. 31. 채무자에게 이 사건 매매계약에 따른 잔금을 지급하지 못하였고, 채무자는 2019. 11. 30. 주식회사 0000에 이 사건 토지를 대금 15억원에 매도하는 새로운 매매계약을 체결하였다.
 
라. 채무자는 2019. 12. 13. 채권자에게 잔금 지급기일을 2019. 12. 27.까지 유예하며 위 날짜까지 잔금을 지급하지 않으면 계약이 해제된다는 내용의 ‘부동산 매매계약 해약 통보서’를 보냈다.
 
마. 채권자는 2019. 12. 24. 채무자에 대한 이 사건 매매계약에 따른 소유권이전등기청구권을 피보전권리로 하여 이 사건 토지에 대하여 아래 3항 주문 제1항 기재 가처분결정(이하 ‘이 사건 가처분’이라 한다)을 받았다.
 
바. 채권자는 2020. 7. 24. 채무자에게, 채무자가 토지사용승낙서 등 필요한 서류를 제공할 의무에 협조하지 않고 이 사건 토지를 제3자에게 이중으로 매도하였으므로, 이 사건 매매계약을 해제하고 원상회복 및 손해배상을 구할 예정이라는 내용의 문서를 보냈다.
 
사. 채무자는 이 사건 가처분을 취소해달라고 하며 필자를 찾아왔고, 필자는 채무자를 위하여 가처분 이의 신청을 제기하고, 다음과 같이 주장하였다.
 
“(1) 채권자가 잔금 지급기일인 2018. 10. 31.까지 잔금을 지급하지 않아 채무자는 그로부터 1년이 지난 2019. 12. 13. 채권자에게 잔금 미지급을 원인으로 이 사건 매매계약을 해제한다고 통보하였다. 이에 따라 이 사건 매매계약은 해제되었으므로, 위 계약에 따른 채권자의 소유권이전등기청구권 또한 존재하지 않아 이 사건 가처분은 취소되어야 한다.
(2) 설령 이 사건 매매계약이 위 해제 통보로 해제되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채권자가 2020. 7. 24. 이 사건 매매계약을 이행하지 않을 의사를 표시하였으므로, 이 사건 매매계약은 상호 의사가 합치되어 해제되었다고 보아야 한다.”
 
아. 이에 대해 채권자는 다음과 같이 주장하였다.
 
“(1) 이 사건 매매계약의 특약사항 제6항은 매도인의 해제권을 제한하고 있으므로, 채무자가 2019. 12. 13. 이 사건 매매계약의 해제를 통보한 사실만으로 위 계약이 해제되었다고 볼 수 없다.
(2) 채권자가 2020. 7. 24. 채무자에게 보낸 문서는 이 사건 매매계약의 이행을 촉구하는 것일 뿐 해제 의사표시가 기재되어 있지 않으므로, 이 사건 매매계약이 합의로 해제되었다고 보기도 어렵다. 결국 채권자는 이 사건 매매계약에 따른 소유권이전등기청구권을 보유하고 있으므로, 이 사건 가처분은 유지되어야 한다.”
 
자. 재판부는 어떻게 판단하였을까.
 
3. 판결 요지
 
채권자가 이 사건 매매계약의 잔금 지급기일인 2018. 10. 31.까지 잔금을 지급하지 못한 사실은 앞서 본 바와 같고, 채무자가 매매계약의 해제를 통보하면서 유예한 잔금 지급기일인 2019. 12. 27.까지도 잔금을 지급하지 못한 사실은 당사자 사이에 다툼이 없으므로, 이 사건 매매계약은 2019. 12. 27. 민법 제544조에 따라 해제되었다고 봄이 타당하다. 채권자는 이 사건 매매계약의 특약사항 제6항에 따라 채무자가 이 사건 매매계약을 해제할 수 없다고 주장한다. 위 특약사항 제6항이 ‘매도인은 어떠한 이유로도 계약을 해제할 수 없다’고 규정하고 있는 사실은 앞서 본 바와 같으나, 위 규정을 상대방(매수인)이 채무를 불이행한 경우에까지 해제권을 전혀 행사할 수 없다고 해석하는 것은 계약당사자 일방의 지위를 지나치게 제한하는 것으로 받아들이기 어려우므로, 매도인은 매수인의 채무불이행이 있는 경우 민법이 정한 법정해제권은 행사할 수 있다고 보아야 한다. 채권자의 위 주장은 이유 없다. 결국 이 사건 매매계약이 해제되었다고 보는 이상 채권자의 소유권이전등기청구권 또한 존재하지 않으므로, 이 사건 가처분의 피보전권리가 소멸되어 이 사건 가처분은 더 이상 유지될 수 없게 되었다. 이상과 같은 이유로 주문과 같이 결정한다.
 
 
주 문
 
1. 채권자와 채무자 사이의 이 법원 2019카합3056 부동산처분금지가처분 신청사건에 관하여 이 법원이 2019. 12. 24. 한 가처분결정을 취소한다.
2. 채권자의 가처분신청을 기각한다.
3. 소송비용은 채권자가 부담한다.

 
4. 판결의 의의
 
계약당사자 사이의 채무불이행에 따른 법정해제권을 배제하는 약정은 비록 손해배상의 청구가 보장된다고 하더라도 그 자체로서 채무불이행을 용인하는 결과가 되므로 계약당사자의 합의에 따라 명시적으로 법정해제권을 배제하기로 약정하였다고 볼 수 있는 경우가 아닌 이상 엄격하게 제한 해석하여야 할 것이다(대법원 2006. 11. 9. 선고 2004다22971 판결 참조).
 
위 대법원 판례의 법리와, 이 사건의 제반 사정을 아울러 고려하면, 비록 이 사건 매매계약 특약사항 제6조에서 매도인인 채무자의 계약해제권을 배제하기로 하는 내용이 기재되어 있긴 하지만, 이는 또한 매매 잔금 2,520,000,000원의 지급기일을 2018. 10. 31.로 특정한 점에 비추어 매수인인 채권자의 잔금 지급이 상당한 기간 불이행되더라도 언제까지라도 채무자가 계약 해제를 못 하도록 법정해제권을 완전히 배제하는 조항이라고 해석할 수는 없을 것이다.
 
채권자가 계약금만 지급하고 잔금을 지급하지 아니한 채 수십년을 가도록 채무자가 계약 해제를 못한다고 하면, 채무자에게 극히 불리하기 때문이며, 채무자로서는 이같은 불리한 약정을 체결할 만한 다른 사정이 없었다. 실제 채권자는 계약일로부터 수년의 기간 동안 태양광발전사업을 위한 절차를 진행할 충분한 시간을 보장 받았음에도 허가 등 목적 달성이 지체되자, 자신의 의무인 잔금 지급은 외면한 채 계약의 존재를 여전히 주장하며 채무자의 부동산의 처분, 사용수익권을 계속 침해하고 있는 바 이는 형평에 반함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따라서 위 규정은 어떠한 경우라도 계약의 해제권을 배제하는 규정이라기 보다는 잔금 지급이 상당 기간 불이행되는 경우 등 일정한 상대방의 채무불이행이 있는 경우에는 계약을 해제할 수 있다는 규정으로 제한하여 해석함이 타당하다고 본다. 이러한 취지에서 본 판결은 계약서에 매도인의 해제권을 배제하기로 약정하였다고 볼 만한 사정이 있었음에도, 이는 계약당사자 일방의 지위를 지나치게 제한하는 것으로써 효력이 없다고 보았다. 구체적 타당성과 형평을 고려한 합리적인 판결로 보인다.
 
5. 나가며
 
계약서에 계약 해제권을 배제하는 규정을 명시했더라도, 구체적 타당성과 형평 등을 고려하여 그 규정은 엄격하게 해석해야 할 것이다. 다만, 해제권 배제 여부는 구체적 사안마다 개별적으로 정하여야 마땅하므로, ‘구체적 사정 상 계약당사자의 합의에 따라 온전히 법정해제권을 배제하기로 약정하였다’고 볼 수 있는 경우에는 계약 해제가 어려울 수도 있을 것이다. 따라서 계약서 작성 시, 부당한 요구가 있거나 어떤 문제에 봉착하는 경우 반드시 사전에 법률전문가의 도움을 받도록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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