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조산책] 유명인의 성명, 초상 뒤 숨은 노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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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혜진 변호사
입력 : 2022-01-22 06:00
수정 : 2022-06-04 16: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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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 정혜진 변호사]

변호사가 되기 전, 신문사 기자로 일할 때였습니다. 동료 기자 한 명이 ‘씩씩’ 거리며 들어왔습니다. 자신이 오랫동안 공들여 쓴 신문의 기획 기사가 있었는데 그 기사의 내용을 한 방송기자가 그대로 베낀 뒤 ‘단독 기사’라는 타이틀로 방송에 보도했다는 것입니다.
 
벌써 10여 년 전 일이지만 타인의 노력과 시간이 투입된 성과물에 ‘무임승차’하려는 이런 행위는 지금도 성행 중인 것 같습니다.
 
최근 종영한 SBS의 드라마 ‘지금 헤어지는 중입니다’는 시청률 측면에서 기대보다는 저조한 성적으로 막을 내렸지만 매회 주연 여배우 송혜교의 패션은 여전히 사람들에게 큰 관심을 받았습니다.
 
실제로 한 회가 끝날 때마다 거의 실시간으로 송혜교가 입은 옷, 든 가방, 신은 구두의 브랜드와 제품명은 인터넷 포털 사이트의 카페나 검색을 통하여 소비되었습니다.
 
문제는 드라마나 예능에 출연하는 많은 연예인들의 착장 사진은 그 자체로 홍보 효과가 크기 때문에 이를 사이트에 올려 무단으로 사용하는 쇼핑몰들이 매우 많다는 데 있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행위가 연예인들은 물론이고 연예인과 전속계약을 맺고 연예인에게 비용과 시간을 투입한 엔터테인먼트사의 노력에 무임승차하는 것이라는 인식은 아직 많이 없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지금까지 법원 역시 이러한 연예인의 소위 ‘퍼플리시티권’(개인의 초상이나 이름, 음성 등 인격적 요소가 만들어낸 재산적 가치를 제3자가 허락 없이 이용할 수 없도록 하는 권리)을 대체로 인정하지 않았던 것이 사실입니다.
 
저작권의 경우 창작물을 만든 사람의 노력과 가치를 인정하여 그 권리를 보호하지만, 초상권이나 퍼블리시티권은 헌법상 권리인 인격권의 일부로 인식하여 경제적 가치 인정에 소극적이었던 것입니다.
 
실제로 법원은 그동안 위와 같은 침해 행위가 있어도 정신적 피해에 대한 손해배상, 즉 위자료 정도의 소액 배상 청구만 인용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그런데 지난달 11일 국회가 본회의를 열고 ‘부정경쟁방지 및 영업비밀보호에 관한 법률’(이하 ‘부정경쟁방지법’) 일부개정안을 통과시키고 같은 달 30일 이 개정안이 국무회의를 통과함에 따라 이 법이 시행되는 올해 4월 20일부터는 이 법을 근거로 유명인의 초상 성명 등을 무단으로 사용하는 행위에 대해 금지 청구 및 손해배상이 가능해졌습니다.
 
부정경쟁법 제2조 제1호 타목에서 ‘국내에 널리 인식되고 경제적 가치를 가지는 타인의 성명, 초상, 음성, 서명 등 그 타인을 식별할 수 있는 표지를 공정한 상거래 관행이나 경쟁질서에 반하는 방법으로 자신의 영업을 위하여 무단으로 사용함으로써 타인의 경제적 이익을 침해하는 행위’를 부정경쟁행위 유형의 하나로 추가한 것입니다.
 
다만 일각에서는 이 개정안을 두고 ‘퍼블리시티권’이 전면적으로 인정되었다고 보기는 어렵다는 비판도 있습니다.
 
재산권의 내용은 법률로 정한다는 헌법 제23조 제1문 혹은 민법 제185조 물권법정주의에 따라 ‘퍼블리시티권’을 명시하는 법률이 필요한데 저작권법, 상표법, 특허법, 디자인보호법에 의하여 인정되는 지식재산권과 달리 이번 개정안은 퍼블리시티권 유사 권리의 침해 행위를 부정경쟁행위의 하나로 추가한 것에 불과한 만큼 ‘퍼블리시티권’의 법률적 창설까지에 이르렀다고 보기는 어렵다는 것이 그 근거입니다.
 
그러나, 법으로 위반 행위를 명시하는 것과 간접적인 제재에 그치는 것은 매우 큰 차이입니다. 간통죄 폐지 이후 간통죄에 대한 사회적 비난의 정도가 간통죄가 존재할 당시에 비해 약화된 것만 보아도 알 수 있습니다.
 
따라서 위와 같이 연예인들의 인격권 더 나아가 이 인격권에서 파생된 재산적 권리에 대한 침해행위를 부정경쟁법에서 규율하게 된 것은, 그 자체로 한 연예인이 ‘스타’가 되기까지 연예인 자신은 물론이고 그 연예인을 키우기까지 투입된 엔터테인먼트사의 노력에 무임승차하려는 행위에 경종을 울리게 되었다는 의의가 있습니다. 다만 향후 이 법을 더 발전시켜 나가는 것은 엔터테인먼트사와 이를 둘러싼 관련 업계의 지속적인 몫일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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