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법

미국 가정폭력 의무체포 제도의 피해자 보호 함의 및 시사점

(외국 입법정책 분석 5호-20210916)미국 가정폭력 의무체포 제도의 피해자 보호 함의 및 시사점.pdf
허민숙 (국회입법조사처 사회문화조사실 보건복지여성팀 입법조사관)

요약

미국의 모든 50개 주와 워싱턴 D.C.는 가정폭력 범죄 발생 시 체포 규정을 마련하고 있다. 이 중 23개 주는 가정폭력에 대한 대응으로 가해자에 대한 ‘의무체포’ 제도를 도입·시행하고 있다. 의무체포제도란 가정폭력 현장에 출동한 경찰로 하여금 가해자를 정확히 식별하여 반드시 체포하도록 하는 제도이다. 경찰은 피해자에게 가해자 체포를 원하는지, 처벌을 원하는지를 질문해서도 안된다.
의무체포 제도는 미국에서도 오랜 기간 동안 범죄로 여겨지지 않았던 가정폭력을 범죄로 인식하게하는 시민 의식 개선에 일조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또한, 가정폭력 피해자 보호 및 지원 제도의 효과성을 담보하는 데 있어 가해자 제재의 필요성 및 중요성도 강조되고 있다.
이 글에서는 특히 뉴욕주의 제도 운영 현황을 살펴보았다. 뉴욕주는 가정폭력 관련 통계가 잘 구축되어 있음은 물론, 가해자 체포가 실질적인 피해자 보호 효과를 산출할 수 있도록 피해자 보호 및 지원 제도를 효율적으로 운영하여 가정폭력이 강력범죄로 귀결되지 않도록 노력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가정폭력 처벌법」과 「가정폭력 방지법」 시행 23년이 지난 시점에서도 가해자 제재에 소극적인 태도를 취하고 있고, 이러한 현행 법·제도로는 가정폭력 근절이라는 정책적 목표를 달성하기 어렵다. 이런 점에서 가해자 제재로의 전격적인 입법·정책 방향의 선회를 필요로 한다.
이 글에서 살핀 가해자 의무체포 제도의 도입은 가해자 제재 정책의 필수요건인 동시에 피해자 보호의 필요조건이라는 점에서 적극적으로 검토될 필요가 있다.

I​. 들어가며

지난 7월 가정폭력을 수 차례 자행하던 의붓아버지에 의해 잔혹하게 살해된 제주 중학생 사망사건이 언론에 크게 보도된 지 얼마 지나지도 않아, 9월에는 가정폭력 이혼소송 중 아이들 짐을 챙기러 갔던 가정폭력 피해자가 동행했던 친정아버지가 보는 앞에서 남편에 의해 무참히 살해된 사건이 발생하였다.
우리나라는 이미 24년 전 가정폭력을 처벌하고 피해자를 보호하기 위한 법률3)을 제정·시행하였기에 국민들은 가정폭력이 발생하면 수사기관에 신고하여 도움을 요청하고, 피해자는 공권력으로부터 적절한 보호조치를 받을 수 있으리라 기대하고 있다. 가해자에 대한 적절하고 합리적인 처벌이 이루어져 가정폭력이 재발하지 않으리라는 믿음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일련의 사건들은 우리나라의 가정폭력 가해자 제재 조치에 심각한 수준의 입법 공백이 있음을 드러내고 있다.
우리나라의 한해 가정폭력 신고건수는 20만 건을 넘는다. 이 자체로도 작은 수치는 아니지만 여성가족부의 『2019년 가정폭력 실태조사 연구』에 따르면 가정폭력을 경찰에 신고한 비율이 2.3%4)에 불과해, 실제 발생하고 있는 가정폭력 사건은 훨씬 더 큰 규모임을 짐작하게 한다.
가정에서 발생하는, 가장 친밀한 관계에 있는 자에 의한 행위라는 점에서 그리 심각하지 않은 수준의 부부간 상호폭력일 것이라는 낡은 편견과 달리 가정폭력은 상해, 살인, 방화, 감금, 납치, 성폭력 등 강력범죄 유형이 총망라된 잔인한 범죄다. 가정폭력의 피해자는 여성 배우자가 가장 많지만, 자녀 역시 가정폭력의 피해자다.
여성가족부의 『2019년 가정폭력 피해자 및 관련 지원기관·수사기관 조사』에 따르면 가해자들은 배우자 외에도 자녀에게 폭력을 휘두르고 있다. 피해자의 63.3%가 자녀도 폭력피해를 당했다고 응답한 바 있다.5)
그러나, 가정폭력을 수사기관에 신고해도 가정폭력 가해자가 처벌받는 경우는 거의 드문 것으로 조사되었다. 가정폭력 피해자만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서 가해자가 ‘아무런 조치를 받지 않았다’는 답변이 41.8%, ‘상담명령’ 35.2%, ‘접근 행위 제한’ 22.1%, ‘벌금 및 과태료’ 9.0%, ‘보호관찰’ 5.7%, ‘사회봉사명령’ 4.9% 였으며, ‘집행유예’ 선고를 받은 경우는 2.5%, ‘유치장 수감’은 1.6%에 불과하였다. 가정폭력 가해행위에 관한 미약한 제재는 ‘가족의 친밀성’이라는 특수성을 고려한 결과일 수 있다.
그러나 다른 한편, ‘친밀성’이 감경 혹은 관용의 사유가 될 수 없다는 시선도 있고, 바로 그 친밀성을 이유로 더 엄격하게 처벌하는 국가도 있다. 특히 미국은 가정폭력 가해자에 대한 엄중한 제재 조치를 마련하고 있다.
이 글에서는 미국의 ‘의무체포’ 제도의 도입 배경 및 운영 현황을 살펴보고, 가정폭력 가해자를 제재하는 것이 피해자 보호에 가지는 함의를 살펴보고자 한다.

II. 미국의 가정폭력 의무체포 제도

1. 도입배경


미국에서 가정폭력에 대한 공권력 개입 방법 중 “체포(arrest)”가 가장 효과적인 방안으로 인식된 데에는 1984년도 미네아폴리스 경찰서 실험(The Minneapolis Domestic Violence Experiment)이 큰 영향을 미쳤다. 미국 법무연구소(The National Institute of Justice)의 지원으로 미네아폴리스 경찰서에서 1981년 초~1982년 중반에 걸쳐 시행된 실험 결과, 가정폭력 억제 방안으로 “체포”가 가장 효과적이었다는 결과가 도출되었다.
미네아폴리스 실험이 시도되었던 이유는 가정폭력에 대한 경찰 대응의 문제점이 꾸준히 비판받아왔기 때문이다. 가정폭력을 범죄로 다루기보다는 중재하는 것이 더 적절하다는 임상심리학자들(clinical psychologists)의 주장에 따라 1970년대 미국은 경찰관을 위한 가족위기개입 훈련프로그램을 도입하는 등 가정폭력 사건에 대해 가해자 체포보다는 당사자 간 중재에 초점을 두었다.9) 그러나 곧 이러한 방안은 권력 불균형에 의해 초래되는 가정폭력 범죄에 비효과적이라는 비판이 제기되었다.
여성주의 학자들은 양자 간 권력이 동등할 때 비로소 효력을 발휘할 수 있는 당사자 간 중재와 조정의 방식은 성별 권력 불균형의 문제인 가정폭력 해결에 적합하지 않다고 비판하며, 가정폭력 범죄에 대한 관계 조정 접근 방식은 오히려 피해자를 위험에 빠뜨릴 수 있다고 경고하였다.
한편, 가정폭력 범죄에서 가까스로 생존한 가정폭력 생존자들(Domestic Violence Survivor)은 폭력의 가해자가 단지 피해자의 ‘남편’이라는 이유로 사건에 적극적으로 개입하지 않은 경찰이 미국 수정헌법 제14조를 위반(평등보호조항을 위반하는 성차별(sex discrimination under the Equal Protection Clause))하였다며 주정부(State Government)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하였다. 1983년 코네티컷 주에서의 2천3백만 달러 (약 266억 원) 배상 판결을 시작으로, 가정폭력 생존자들이 잇따라 승소하게 되자, 주정부들은 현장에 출동한 경찰로 하여금 가해자를 의무적으로 체포하도록 하는 의무체포 제도를 속속 도입하게 되었다.11)
의무체포 제도의 의의는 이전에 범죄행위로 간주되지 않았던 가정폭력을 법적 제재의 중심에 놓았다는 점에서 논의되고 있다. 의무체포 제도의 도입은 다른 무엇보다 가정폭력이 범죄이고, 국가의 시민보호에 대한 임무가 단지 공공장소에서 수행되는 것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집안에서 가족구성원으로부터 자행되는 폭력으로부터 시민을 보호하는 데에까지 이른다는 분명한 메시지를 전달하였다는 점에서 그 효과성이 평가된 바 있다.

2. 운영 현황

미국의 모든 50개 주와 워싱턴 D.C.는 가정폭력 범죄 발생 시 가해자 체포와 관련된 법령을 마련하였다. 가정폭력 체포 법령은 대략 3가지 유형으로 구분되는데, 경찰관의 판단에 따라 체포를 결정하는 자유재량(discretionary) 체포, 반드시 체포해야 하는 의무(mandatory) 체포, 체포를 더 선호하는 우선(preferred)체포로 구분된다.
자유재량 체포 제도는 가해자 체포 여부를 경찰관의 판단에 맡겨두고 있다. 예를 들어, 플로리다주의 경우 데이트 폭력 또는 가정폭력이 발생했다는 합리적인 판단이 서면 경찰관은 영장 없이 가해자를 체포할 수(may arrest) 있다. 이때 경찰관은 피해자의 동의를 구할 필요가 없고, 둘 간의 관계를 고려할 필요도 없다.
의무체포 제도는 가정폭력이 발생하였다는 믿음이 있다면 반드시 가해자를 체포하도록 하는 제도로 뉴욕주를 포함하여 23개 주가 의무체포 제도를 도입·시행하고 있다. 경찰관의 재량권이 가장 축소화된 형태로, 경찰은 체포 필요성 여부를 판단할 필요 없이 무조건 가해자를 체포해야(must arrest) 한다.


III. 미국 뉴욕주 의무체포 제도 운영 사례

1. 가정폭력 발생 현황


뉴욕시의 가정폭력 및 젠더기반 폭력 근절을 위한 시장실(Mayor’s Office to End Domestic and
Gender-Based Violence) 발간 자료에 따르면, 2020년 뉴욕시(City of New York)에 신고 접수된 가정폭력 사건은 모두 23만 3,006건이다. 이 중 10만 5,781건은 친밀한 관계에서 발생한 사건이고, 7만 4,805건은가족 관계에서 발생하였다. 그 관계가 알려지지 않은 사건은 5만 2,420건으로 보고되었다.15)
2010~2019년의 기간 동안 뉴욕시에서 발생한 가정폭력 및 친밀한 관계에서의 폭력에 의한 사망자는 모두 633명이고, 이 중 친밀한 관계에서 발생한 살인사건 피해자의 77.1%가 여성이었으며, 가정폭력으로 사망한 피해자 중 10세 이하의 아동도 20.5%(136명)에 이르는 것으로 밝혀졌다.

2. 제도의 특징

미국 뉴욕주의 가정폭력 의무체포 제도는 영장 없는 체포를 규정한 「N.Y. Crim. Proc. Law」 §140.10(4)(a)에 근거하고 있다.17) 법령에 따르면 뉴욕주의 경찰관은 가족, 가구구성원, 친밀한 관계에 있는 자가 폭력범죄를 저질렀다고 믿을 만한 합리적인 이유가 있는 경우에는 “반드시” 가해자를 체포해야 한다. 뿐만 아니라, 가정폭력 현장에 출동한 경찰관은 당사자 간 화해나 중재를 시도해서는 안된다. 경찰관은 재량권 없이 가해자 체포의 명을 수행해야 하기 때문이다.
가정폭력 의무체포 대상자는 현재 또는 이전 배우자, 현재 또는 이전 파트너이다. 동성커플도 대상자에 포함되고, 데이트 관계에 있는 자도 폭력 사건이 발생하면 체포 대상이며, 10대 청소년도 예외가 아니다. 또한, 둘 사이에 아이가 있는 관계(입양자녀 포함), 혼인과 관련이 있는 자(사돈 관계 등), 혈연관계에 있는 자(부모, 형제 등)가 포함된다.경찰은 가정폭력 가해자 체포 과정에서 피해자에게 가해자의 체포를 원하는지, 또는 고소할 것인지를 질문해서는 안된다. 피해자가 가해자 체포를 원하지 않는다는 의사를 밝힌 경우에도 이와 무관하게, 경찰은 반
드시 가해자를 체포해야 한다.
또한, ‘의무체포’란 반드시 현장에서 현행범을 체포한다는 의미는 아니다. 경찰이 현장에 도착했을 당시 가해자가 현장을 빠져나갔더라도 경찰은 가해자의 신병을 확보하여 반드시 체포해야 한다는 점에서 시간적 접착성을 요구하고 있지 않다.
의무체포 도입 시 가장 우려되었던 의도치 않은 부작용은 경찰이 가정폭력 사건을 ‘상호폭력’ 혹은 ‘쌍방폭행’으로 단정하거나 인식하여 가해자 및 피해자 모두를 체포하는 일이었다. 이 법은 경찰이 피해자를 체포하는 일을 사전에 방지하기 위하여 반드시 “주 공격자(primary aggressor)”만을 체포하도록 하고 있으며, 이를 위해 주 공격자를 어떻게 판단할 것인지를 법률에 명시하고 있다. 경찰은 상해의 유형과 심각성을 통해 주 공격자, 즉 상해를 입힌 자를 식별하고 판단해야 한다. 또한, 피해자 및 가족 구성원에게 미래의 폭력을 예고하며 위협하고 있는 자가 누구인지를 알아내고, 이전의 가정폭력 범죄 기록을 참고하여 주 공격자를 판별하도록 하고 있다. 양방이 모두 폭력을 사용한 경우라면 어느 일방이 자기방어(self-defense)를 위해 불가피하게 폭력을 사용할 수밖에 없었는지를 분별하여 방어폭력을 사용한 자를 가해자로 오인하여 체포하지 않도록 해야할 의무도 있다.
경찰은 가정폭력 의무체포 이후 가해자를 경찰서로 연행하고, 가해자의 신원을 기록하며, 머그샷(mugshot)을 촬영하고, 구금한 이후, 공소장을 준비한다. 이 과정에서 현행범으로 체포된 자는 피고인(defendant)으로 신분이 전환되고 변호사가 배정될 수 있으며, 피해자를 위한 보호(접근금지)명령이 발부될 수 있다. 사건에 배정된 판사는 피고인의 석방 여부, 보석금 책정, 교도소 수감 등을 결정하며, 석방 및 보석으로 풀려난 경우에는 법정 출석 기일이 통보된다.

3. 의무체포 제도에 수반되는 그 밖의 피해자 보호 조치

가정폭력 현장에 출동하여 가해자를 체포하는 것은 즉시의 위험으로부터 피해자를 효과적으로 보호하지만, 미래의 안전까지 보장해 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따라서 의무체포와 함께 피해자 보호조치가 수반되는 것이 필수적이다. 뉴욕주는 피해자가 머물 수 있는 안전한 장소를 제공해 주고 있다. 물론 자녀를 동반할 수 있다. 피해자 보호시설의 경우 반려동물 입소도 가능하다. 치료가 필요한 경우 경찰이 의료기관으로 안내하여 진료를 받을 수 있도록 하고, 안전한 거주지에 머물기 위해 집에서 필요한 물건을 챙겨오는 동안 경찰이 동행한다.
경찰 및 지원기관의 도움으로 법원에 보호명령을 신청할 수 있다. 무료 법률지원을 받을 수도 있다. 가해자가 피해자 보호명령을 위반하는 경우 경범죄 판정을 받으면 1년의 징역형을 선고받지만, 중범죄에 해당한다고판단되는 경우 최장 7년형을 선고받도록 하여 제도의 실효성을 확보하고 있다.
주정부에서 제공하는 주거지원 뿐 아니라, 가정폭력 피해자가 안전을 위해 주거지를 옮겨야 할 경우, 언제든지 임대차 계약을 해지하고 이사할 수 있다.25) 경찰뿐 아니라, The New York State 24-hour Domestic& Sexual Violence Hotline이 운영되어 24시간 필요한 도움을 받을 수 있고, 피해자가 청각 장애인인 경우 별도의 지원 시스템을 이용할 수 있다. 이주 여성을 위한 지원도 마련되어 있다.

IV. 함의 및 시사점

1997년 제정되어 1998년 시행된 우리나라의 「가정폭력 처벌법」과 「가정폭력 방지법」은 올해로 시행 23년차를 맞고 있다. 그러나 법률의 제정이 우리사회에 가정폭력이 범죄라는 분명한 인식을 심어주었는지, 그리고 가정폭력 범죄를 수사기관에 신고하였을 때, 피해자가 일상의 안정과 신변의 안전을 확보할 수 있을지에 대해서
는 여전히 회의적이다.
앞서 살펴본 대로, 가정폭력의 매우 일부분만이 수사기관에 신고되고 있고, 신고된 범죄자의 극소수만이 인신구속에 이르고 있다. 2020년 기준 신고건수 22만 2,046건 중 경찰의 사건처리 인원은 52,431명이나, 정확히 몇 명이나 현장에서, 혹은 그 이후 체포되었는지에 대한 통계 자료는 존재하지 않는다. 다만 2020년 한 해 가정폭력으로 구속된 자는 330명으로 사건처리 인원의 0.6%만을 구속하였고, 신고건수 대비 범죄자 구속율은 0.15%에 불과하다.
가정폭력 가해자 제재가 중요한 이유는 가정폭력이 더 이상 관용될 수 없는 범죄라는 사회적 메시지를 전달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보다 더 주목해야 할 것은 가해자 제재가 피해자의 생존과 안전 보장에 미치는 영향 때문이다. 국가가 가정폭력에 대해 안일한 태도를 보이는 것은 단지 가해자를 면책하는 것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피해자를 더 큰 위험에 빠뜨린다. 미국 제2연방 항소법원은 가정폭력 현장에 출동한 경찰이 “아무조치도 취하지 않는 것”은 “미래에도 가해자를 방해하지 않을 거라는 암시”라는 점에서 이러한 경찰의 행동을 “국
가가 초래한 위험”이라 판시한 바 있다.
가정폭력 신고율을 높이고, 피해자를 보호하기 위해 우리나라는 피해자 보호시설을 확대하고 다양한 지원 및 회복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그러나 그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가정폭력은 가해자가 폭력 행위를 중단할 때, 비로소 근절될 수 있는 것이지, 피해자가 가해자를 피해 오랜 기간 숨어지내는 방식으로는 피해자의 안전을 확보하기도 어렵고, 재피해를 예방하기도 어렵기 때문이다.
이런 점에서 우리나라도 가정폭력 가해자에 대한 의무체포 제도의 도입을 고려해 볼 수 있다. 물론 현행법으로도 가정폭력 현행범에 대한 체포는 가능하다. 그러나, 가정폭력은 신고 후 출동 시 이미 상황이 종료되어 있거나 도주 및 증거인멸의 우려가 높은 범죄로 인식되는 편이 아니어서, 현행범 체포 요건을 충족시키지 못할 우려가 높다. 또한, 방어폭력을 사용한 피해자에 대한 체포를 금지하는 지침이나 규정도 마련되어 있지 못하여 피해자까지 체포하는 이중체포에 대한 염려도 있다.
의무체포 제도의 도입이 가해자 제재 및 피해자 보호 효과를 발휘하기 위해서는 여러 다른 규정에도 변화가 필요하다. 가장 우선적으로 가해자에 대한 제재를 피해자에게 전가하고 있는 현행 반의사불벌죄의 폐지가 수반되어야 한다. 범인을 체포해 오더라도 피해자의 처벌불원으로 가해자 처벌이 무력화되면, 경찰의 적극적인 검거 노력을 기대하기도 어렵고, 피해자가 오히려 가해자의 협박과 회유에 시달리는 현실도 개선할 수 없다.
법제정에도 불구하고 완수하지 못한 가정폭력 근절이라는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가해자를 반드시 체포하고, 접근금지 명령 위반을 엄벌하는 등의 가해자 제재로 입법·정책 방향을 선회할 필요가 있다. 이때 가정폭력 가해자에 대한 ‘의무체포 제도’ 도입은 가해자 제재 정책의 필수요건인 동시에 피해자 보호의 필요조건이라는 점을 상기할 필요가 있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