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 게시글로 시작된 '착한 사마리아인법' 논란…사회 연대 강화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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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1-07-12 10:49
수정 : 2021-07-12 17: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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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에게 피해가 될까봐 성폭행 현장을 지나쳤다는 글은 뜨거운 논란의 대상이 됐다. [사진=뽐뿌 게시판]


지난 5월 말 어느 인터넷 커뮤니티에 실린 글이다. 별것 아니라 스쳐지나갈 뻔했던 이 글 하나로 ‘착한 사마리아인법’에 대한 사회적 논의가 촉발되기 시작했다. 이 게시글에서 익명의 글쓴이는 ‘강간·폭행 현장을 목격했지만 사건에 휘말리기 싫어서 무시하고 지나갔다. 경찰의 참고인 출석 요청 또한 거부하고 싶다’며 경찰의 요청을 따르지 않으면 불이익이 있을지 물어봤다.

이 글은 각종 인터넷 커뮤니티를 통해 확산되면서 격렬한 논쟁을 일으켰다. 당장 해당 게시판에는 “겁나 이기적이네요 나중에 고대로 당해요”라는 비난의 댓글과 “뭐가 이기적입니까. 걍 지나가는 게 상책이죠” 등의 옹호 글이 팽팽하게 대립했다.

이처럼 위험에 처한 사람을 보고도 도움을 주지 않는 경우 이를 처벌하도록 하는 법이 있다. 우리나라 형법에는 존재하지 않는 ‘착한 사마리아인법’이다.

위와 같은 사례에 대해 법률사무소 희승 전희정 변호사는 “방관자 효과를 줄이기 위해서 착한 사마리아인법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방관자 효과는 자신이 나서지 않아도 남들이 도울 것이라 생각하며 방관하는 태도로, 한 사회의 공동체성을 무너뜨리는 기제로 작용하기도 한다.
 
착한 사마리아인법, 사회의 도덕성과 연대성을 높일까?

위의 게시글에서 많은 네티즌들은 ‘뭐가 이기적이지? 구조는 의무사항도 아니고 강제사항도 아니다’라는 입장을 지지한다. 실제로 우리나라 형법은 신의성실이나 사회상규 차원에서 구조의무를 이행하지 않은 경우를 처벌할 규정을 두고 있지 않다. 따라서 익명의 글쓴이가 글의 내용처럼 실제 피해자 구조를 하지 않고, 범죄 현장을 방임했더라도 법적 처벌을 받지 않는다.

하지만 자신에게 불이익이 없는 상황에도 타인의 절박한 위기 상황을 모른 척하는 행동은 사회의 공동체성을 저하할 수 있다.

2016년 8월에는 자신들이 탑승한 택시기사가 의식을 잃고 교통사고를 냈는데도 다른 택시를 타고 자리를 떠났던 승객들의 이야기가 여론의 뭇매를 맞았다. 길에 있던 다른 사람들이 신고해 택시기사는 병원에 이송됐지만, 그는 결국 사망했다. 여론은 승객들의 비도덕성을 규탄하며 공분했다.

2011년에는 혹한의 추위 가운데 노숙자를 철도 밖으로 방치한 역무원에 대해 무죄가 선고되는 판례가 나오기도 했다. 2010년 1월 서울역에서 일하던 철도공사 과장 박모씨와 김모씨는 서울역 대합실에 쓰러져 있던 노숙자 장모씨를 역 바깥으로 내몰았다. 당시 장씨는 갈비뼈 골절상을 입었지만 역무원들은 이를 모르고 있는 상황이었고, 장씨는 결국 죽었다.

당시 법원은 이 사건에 대해 형사책임을 물을 수 없다고 했다. “우리 형법은 프랑스 등 다른 나라에서 볼 수 있는 착한 사마리아인법을 기본 형식으로 취하고 있지 않다”라는 것이 판결의 이유였다. 그러면서 법원은 이에 대해 “사회 구성원 모두가 고민해야 한다”면서 “피고인들도 망인의 죽음 앞에 도덕적 비난은 면치 못할 것”이라고 명시했다.

‘착한 사마리아인법’의 필요성과 관련해 김승희 변호사는 “(현재 구조에 대한 책임은) 도덕적인 의무로서 권유되는 상황”이라면서 “그런 부분을 법적인 의무로 올려서 이를 불이행하면 처벌받을 수 있다는 '개념의 전환'이 필요하지 않을까 싶다”고 강조했다.

이어 김 변호사는 착한 사마리아인법은 “꼭 누군가를 처벌하겠다보다는 어떤 상황에서 누군가 구조를 요청하면 이에 응해야 한다는 것을 정립하기 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비록 형법에는 없지만

지난해 9월 이정문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착한 사마리아인법’의 내용이 담긴 형법 일부개정안을 발의했다. 이 의원은 “우리 사회에서 이웃이 각종 위험이나 범죄에 직면했음에도 이를 외면하여 피해자가 사망에 이르는 사건 등이 발생하고 있다”고 개정안의 취지를 밝혔다. 이 법안은 아직 국회에 계류 중이다.

이처럼 현행 형법 내에는 착한 사마리아인법이 존재하지 않지만, 착한 사마리아인법의 취지를 포함하고 있는 다른 법안이 존재하기도 한다.

현재 응급의료법 제5조의2는 ‘선의의 응급의료에 대한 면책’ 내용을 담고 있다. 이 법규는 생명이 위급한 응급환자에게 법에서 정하고 있는 응급의료 또는 응급처치를 제공하여 발생한 재산상 손해와 사상에 대해 고의나 중과실이 없으면 그 행위자의 민형사상 책임을 면책하는 내용이다.

한편 2010년 국회입법조사처가 발간한 자료에 따르면, 프랑스는 형법 제223조의6에 따라 자신의 위험을 초래할 우려 없이 구조를 요청하는 위험에 처한 타인을 구조하지 않을 경우 5년의 구금형 및 7만5000유로의 벌금에 처하게 한다. 독일은 형법 제323조의c를 통해 고의적으로 타인의 위험을 구조하지 않은 자에게 1년 이하의 자유형 또는 벌금에 처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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