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 "성범죄 손해배상 시효는 '병원 진단일'부터 적용"

  • '체육계 미투 1호' 김은희씨 손배소 승소 확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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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1-08-20 11:32
수정 : 2021-08-20 11: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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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법원.사진=아주경제DB]

대법원이 20년 전 성폭행을 당한 피해자의 '손해배상 청구권을 인정했다. 피해자가 과거 성폭력 피해로 인해 성인이 된 후 외상 후 스트레스장애(PTSD)를 진단받았다면 그 진단 시점부터 '손해배상 소멸시효'가 시작된다는 판단에서다.

대법원 3부(주심 노정희 대법관)는 '체육계 미투 1호'로 알려진 전 테니스 선수 김은희 씨가 성폭력 가해자인 테니스 코치 A씨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소송 상고심에서 김씨에게 1억원을 배상하라고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다고 19일 밝혔다.

김씨는 초등학생 때였던 2001년 7월∼2002년 8월 테니스 코치였던 A씨에게 네 차례의 성폭력 피해를 입었다. 성인이 된 김씨는 2016년 5월 한 테니스 대회에서 A씨와 우연히 마주친 뒤 과거 악몽이 떠오르면서 두통과 수면장애, 불안, 분노 등의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PTSD) 증세에 시달렸다.

김씨는 다음달인 6월 병원에서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PTSD) 진단을 받고서 A씨를 고소했다. 기소 이후 형사재판에서 A씨는 징역 10년을 선고받아 확정됐다.

이어 김씨는 2018년 A씨로 인해 PTSD 진단을 받는 등 고통을 받았다며 1억원의 손해배상 민사소송을 청구했다.

사건의 쟁점은 오랜 시간 전 성폭행을 당해 그 피해가 뒤늦게 발생했을 경우, 손해배상 청구에 관한 권리가 언제까지 인정되는지였다.

1심은 무변론으로 진행돼 김씨가 승소했으나 A씨는 손해배상 청구권 소멸시효가 이미 완성됐다며 항소했다. 

민법 766조 1항은 피해자가 불법행위로 입은 손해를 알게 된 날부터 3년 이내에 손해배상 청구권을 행사할 수 있다고 규정한다. 같은 법 2항에는 불법행위를 한 날로부터 10년까지 권리가 존재한다는 내용이 담겨 있다.

해당 소송의 경우 '손해 및 가해자를 안 날'은 불법이 인정되는 1심 판결일(2017년 10월)을 기준으로 하므로 김씨가 손해배상을 청구한 2018년 6월은 소멸시효가 지나지 않아 문제가 없었다.

그러나 '불법 행위를 한 날'의 경우 김씨가 마지막으로 성폭력을 당한 2002년 8월을 기준으로 하면 10년을 넘긴 상태였다.

이에 대해 항소심 재판부는 "손해배상 청구에 있어 장기소멸시효 기산일은 손해 발생이 현실적인 것이 됐을 때를 의미한다"며 "피고의 불법 행위에 따른 원고의 손해는 원고가 처음 진단받은 2016년 6월에 현실화했다고 봐야 한다"고 판단해 김씨의 손을 들어줬다.

대법원도 "성범죄 당시나 일부 증상의 발생일을 일률적으로 손해가 현실화한 시점으로 보면 당시에는 장래의 손해 발생 여부가 불확실해 손해배상을 청구하지 못하고, 장래 손해가 발생한 시점에는 소멸시효가 완성되는 부당한 결과가 초래될 수 있다"며 원심의 판단에 잘못이 없다고 봤다.

대법원 관계자는 "성범죄로 인한 정신적 질환이 발현됐다는 전문가 진단을 받기 전에 성범죄로 인한 손해 발생이 현실화했다고 인정하는 것은 신중히 해야 한다고 판단한 것"이라고 취지를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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