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경의 법률이야기] 자녀의 성(姓) 결정에 평등은 존재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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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사사건을 많이 진행하는 변호사로서 성·본 변경의 상담이 의외로 많다는 사실에 새삼 놀란 경험이 있다.

성·본 변경을 원하는 사례는 다양하다. 대표적으로 △이혼 후 모가 부의 성을 따르는 자녀를 양육하다가 재혼하게 돼 재혼한 남편과 모의 자녀가 성이 달라서 자녀의 생활에 불편이 있는 경우 △이혼 후 모가 자녀를 혼자서 양육하는데, 자녀 생활의 편리를 위해 자녀의 성을 모의 성과 일치시키고자 하는 경우 △입양 후 양부의 성과 자녀의 성을 일치시키고자 하는 경우 등이 있다.

이외에도 혼인신고를 하지 않고도 재혼한 남편의 성으로 성을 바꿀 수 있냐고 문의를 하는 경우, 성인이 된 자녀가 아버지와 사이가 좋지 않아 아버지의 성을 따르기 싫다고 성·본 변경을 원하는 경우, 혼인신고 시 협의를 하지 않았지만 자가 모의 성과 본을 따르는 것으로 출생신고를 할 수 있냐고 문의를 하는 경우 등도 간혹 있다.

자녀의 복리를 위해 2008년 도입된 성과 본 변경제도가 까다로워지고 있다.

대법원의 기본입장은 “범죄를 기도 또는 은폐하거나, 법령에 따른 각종 제한을 회피하려는 불순한 의도나 목적이 개입돼 있는 등, 성·본 변경권의 남용으로 볼 수 없는 한 당사자의 의사와 자녀의 복리를 고려해 원칙적으로 성·본 변경을 허가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2016년 친아버지 B(54)씨가 “딸의 성·본 변경 허가를 취소해달라”며 낸 특별항고사건(2014으4)에서 A씨가 어머니의 성·본을 따를 수 있도록 허가한 원심을 깨고 사건을 광주가정법원으로 돌려보냈다. 대법원의 기본입장을 바꾼 판결이었다.

이 결정에서 대법원은 성·본 변경 시 발생할 수 있는 사회관계에서의 혼란과 당사자가 입을 수 있는 불이익 등을 반드시 심리하라고 했다. 이때까지는 일선 법원은 당사자의 의사를 최우선 요소로 판단해 성·본 변경을 비교적 쉽게 허가해왔던 경향이 있었다.

이 사건에서 재판부는 결정문에서 “성·본 변경을 허가할지 여부를 판단할 때는 당사자의 의사뿐만 아니라 성·본 변경으로 인한 불이익도 함께 고려해 허가 여부를 신중하게 판단해야 한다”면서 “당사자의 의사에만 주목해 청구를 인용하는 것은 잘못”이라고 밝혔다.

실제로 성·본 변경제도가 도입된 2008년에는 인용률이 89.6%에 이르렀던 것이 2016년에는 76.1%로 내려갔다.

어떠한 경우 자녀의 성과 본의 허가가 인용될 가능성이 클까.

실제로 자녀의 나이가 어릴수록, 특히 초·중·고등학교의 취학을 앞두고 있는 연령일 경우 법원의 변경 결정이 내려질 가능성이 높다.

재혼가정의 경우에는 이 밖에도 재혼 시기와 유지 기간, 새아버지의 연령이나 이혼 경력, 새아버지와 친어머니 사이에서 낳은 자녀의 존재 여부, 새아버지가 전 부인과의 사이에서 낳은 자녀의 존재 여부 등도 고려 대상이다.

재혼한 후, 자녀를 새아버지의 성으로 바꾸려면, △이혼 이후 친부의 양육비 제공, 면접교섭 여부 △새아버지의 양육 기간 및 경제적인 능력 △재혼까지 그리고 재혼 이후의 기간 △당사자인 자녀의 동의여부 등을 구체적으로 기술해야 한다.

반면 자녀의 나이가 어리더라도 기존의 성을 중심으로 교우 관계가 확고하게 정립돼 있거나 곧 성년을 앞두고 있는 고등학생일 경우에는 법원은 결정에 좀 더 신중을 기한다.

법원은 또 대상 자녀가 중학생 이상의 연령일 경우, 직접 심문 기일에 참가하도록 해 성 변경에 대한 의견을 청취한 뒤 결정에 반영하고 있다.

그리고 친어머니가 이혼 후 재혼하지 않은 상태에서 단순히 전 남편에 대한 복수심이나 증오 등으로 자녀의 성과 본을 자신의 성·본으로 바꾸려고 하는 경우는 변경 결정이 내려질 가능성이 거의 없다.

이미 성년이 된 사람이 현재 자신의 성에 대한 불편함과 불만 등으로 바꾸려고 하는 경우 등에 대해서도 법원은 신중하게 심사하고 있다.

법원이 신중하게 성과 본 변경제도에 접근하는 것에는 기본적으로 찬동하지만 부성주의를 원칙으로 하면서 모성주의를 예외적으로 허용하는 우리나라의 현재의 성·본 변경제도는 결코 평등하지 않다.

아버지가 외국인인 경우나 아버지를 알 수 없는 경우 등을 제외하면 자녀가 어머니의 성과 본을 따르는 것으로 할 수 있는 경우는 2가지 정도다. 부모가 혼인신고 시 모의 성과 본을 따르기로 협의를 했을 때와 부의 성과 본을 따른 자녀의 성과 본을 자의 복리를 위해 변경하는 경우다.

첫째 부모가 혼인신고 시 모의 성과 본을 따르기로 협의한 경우와 관련해 혼인신고 시 아이의 성과 본을 누구의 성으로 할지에 대해 심각하게 고민하고 대화하는 부부가 있을까.

실질적으로 여성들이 혼인 직후 미래 태어날 자녀를 자신의 성으로 하겠다고 주장하기란 쉽지 않다. 장밋빛 미래만을 꿈꾸는 혼인신고 시 부부사이가 불화가 생기거나, 부가 제대로 된 아버지의 역할을 제대로 하지 않을 경우를 미리 생각하기는 쉽지 않기 때문에 이러한 예는 거의 없을 것이다.

둘째로 자의 복리를 위해 성을 변경하는 경우인데 이것이 현재 까다로워지고 있다.

실제로 부가 면접교섭권을 전혀 행사하지 않고 있는 경우에도 양육비를 지급하고 있다면 성과 본 변경이 인용되는 경우가 거의 없다. 양육비까지 지급하지 않는 경우에도 3년 이상 장기가 아니라면 덮어두고 반대하는 친부의 의견을 자를 양육하고 있는 모의 의견보다 우위에 두고 있다. 이혼 시 자녀의 양육권과 친권을 모가 갖는 것이 많은 현실에서 이는 전혀 평등하지 않다.

적어도 혼인신고시가 아닌 자녀의 출생신고 시 자녀의 성과 본을 협의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더 현실적이고 합리적으로 판단된다.

협의가 불가능한 경우에는 부의 성을 원칙으로 해 출생신고를 하는 것이 아니라, 현실적으로 양육하는 부모의 성을 선택해 출생신고를 할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이다.

자녀의 복리를 위해 나라가 개입, 성·본 변경을 제한해야 하는 경우도 물론 있을 수 있다. 그러나 기본적으로 누구의 성·본을 따를지는 ‘식구(食口)’들의 의사가 전혀 교류 없이 지내고 있는 친부의 의사보다는 우선해야 하지 않을까.

[임희정 변호사(법무법인 명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