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례로 보는 세상] '동전 크기의 멍' 상해일까?

  • 상해의 개념에 대하여
  • 대구지방법원 상주지원 2014. 9. 18. 선고 2014고합21 판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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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광진 변호사
입력 : 2018-06-24 09:00
수정 : 2022-06-04 15: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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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들어가며

형법상 상해의 개념은 일상생활 속 상처와 다르다. 대법원 판례는 형법상 상해의 개념에 대하여 “신체의 완전성을 해하는 행위”라고 하거나 “생리적 기능에 훼손을 입는 경우”라는 입장을 취하고 있다. 전자를 신체의 완전성침해설, 후자를 생리적기능훼손설이라 한다.

예를 들어 폭행으로 상대방을 ‘기절’시켰다면, 외부적으로 어떠한 상처가 발생되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생리적 기능에 훼손을 입은 경우로 보아 상해가 성립한다는 것이다(대법원 1996. 12. 10. 선고 96도2529 판결). 즉 기절은 형법으로 보면 상해에 해당한다.

강간 사건을 종종 만난다. 강간을 시도하다가 피해자의 팔을 강하게 움켜지다 보면 팔에 멍이 생길 수 있다. 가벼운 멍, 찰과상 내지 타박상을 형법상 상해로 볼 경우, 비록 강간이 기수에 이르지 못하여 (성기의 삽입이 이루어지지 아니하여)미수에 그치더라도, ‘강간상해(치상)죄’가 성립하게 된다. 이런 경우 형법 제301조에 따라 무기 또는 5년 이상의 징역형에 처하게 된다. 나아가, 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에 의하면, 주거침입을 하거나, 2명 이상이 합동하거나, 장애인이나 13세 미만 미성년자를 상대로 하여, 강간상해(치상)를 하게 되면, 무기 또는 10년 이상의 징역형에 처하게 되어 있다.

즉, 강간상해(치상)의 경우 법정형이 높게 정해져 있으므로 비교적 경미한 상처의 경우 상해의 성립여부가 중요한 의미를 가지는 경우가 많다. 아래 사례는 비교적 경미한 찰과상의 경우, 상해에 대하여 무죄를 선고한 사건이다.

2. 사실관계

A는 00시 00동에 있는 00편의점 앞 도로에서 청소년인 피해자 B(여, 16세)를 발견하고, 강간할 것을 마음먹은 뒤 B를 뒤따르다가 그의 집 앞 골목에 이르렀다. A는 B의 어깨를 잡아 바닥에 넘어뜨리고 소리를 지르지 못하도록 자신의 손가락을 B의 입에 집어넣어 반항하지 못하게 한 뒤, 치마 속으로 손을 넣어 속옷 위로 음부를 만지다가 팬티를 벗기고 강간하려 하였다. 하지만 때마침 B의 비명소리를 들은 그의 모친이 나타나자 도망가는 바람에 미수에 그쳤다. 이처럼 A는 B를 강간하려다 미수에 그쳤고, 이로 인하여 B에게 치료일수를 알 수 없는 무릎부위 찰과상 등을 입게 하였다. 이후 피고인은 피해자와 합의하였다.

아동ㆍ청소년의 성보호에 관한 법률에 의하면, 폭행 또는 협박으로 아동·청소년을 강간한 사람은 무기징역 또는 5년 이상의 유기징역에 처하고(제7조 제1항), 그 미수범 역시 처벌하게 되어 있다(제7조 제6항). 그 자가 다른 사람을 상해하거나 상해에 이르게 한 때에는 무기징역 또는 7년 이상의 징역에 처하도록 되어 있다(제9조).

결국 위 사례 A의 경우 징역 7년 이상의 징역에 처하게 되어 있어, 피해자와 합의를 하였다고 하더라도 재판부의 작량감경만으로는 집행유예 형이 불가하다. 이 사건 변호인은 “피고인의 폭행으로 인하여 피해자가 입은 상처는 극히 경미하여 일상생활을 하는 데 아무런 지장이 없고, 자연적으로 치유될 수 있는 정도에 불과하므로, 상해에 해당한다고 볼 수 없다”고 주장하였다.

재판부는 어떻게 판단하였을까.

3. 판결 요지

법원이 적법하게 채택하여 조사한 증거들에 의하여 인정되는 다음과 같은 각 사정, 즉 피해자 000은 이 사건 범행 후 발생한 무릎부위 등 상처에 대하여 병원에서 별다른 치료를 받지 아니한 점, 위 피해자가 법원에 제출한 진술서에 의하면, 피해자 스스로 위 상처가 발생한지 일주일 정도가 지난 시점에 거의 치유되었고 일상생활을 하는 데 아무런 지장이 없었다고 진술하고 있는 점 등에 비추어 보면, 피해자가 피고인의 강간미수 범행으로 입은 상처는 극히 경미한 것으로서 굳이 치료할 필요가 없어 자연적으로 치유되며 일상생활을 하는 데 아무런 지장이 없는 정도라고 보이고, 달리 그로 인하여 피해자의 건강상태가 불량하게 변경되었다거나 생활기능에 장애가 초래되었다는 점을 인정할 증거가 없으므로, 이를 강간치상죄에 있어서의 상해에 해당한다고 볼 수 없다.

따라서 이 사건 공소사실 중 상해 부분은 무죄.

4. 판결의 의의

대법원은 “강간치상죄에 있어서의 상해는 피해자 신체의 건강상태가 불량하게 변경되고 생활기능에 장애가 초래되는 것을 말하는 것으로서, 피해자가 입은 상처가 극히 경미하여 굳이 치료할 필요가 없고 치료를 받지 않더라도 일상생활을 하는 데 아무런 지장이 없으며 시일이 경과함에 따라 자연적으로 치유될 수 있는 정도라면, 그로 인하여 피해자의 신체의 건강상태가 불량하게 변경되었다거나 생활기능에 장애가 초래된 것으로 보기 어려워 강간치상죄에 있어서의 상해에 해당한다고 할 수 없다”라고 일관되게 설시하고 있다(대법원 2003. 7. 11. 선고 2003도2313 판결, 대법원 2004. 3. 11. 선고 2004도483 판결 등 참조).

이에 따르면, “① 피해자가 입은 상처가 극히 경미하여 굳이 치료할 필요가 없고 ② 치료를 받지 않더라도 일상생활을 하는 데 아무런 지장이 없으며 ③ 시일이 경과함에 따라 자연적으로 치유될 수 있는 정도”라는 3가지 요건을 충족하는 경우, 상해에 해당되지 않는다고 볼 수 있다.

위 사례에서 피해자는 만16세의 젊은 나이인 점, 상처부위가 무릎이고 그 정도가 치료일수를 알 수 없는 찰과상에 불과한 점, 실제 진단서 발급 외에 별다른 치료를 받지 않았으며, 일주일 정도가 지난 시점에 거의 치유되었고 일상생활을 하는 데 아무런 지장이 없었다고 보여지는 점 등이 인정되어 상해 부분은 무죄가 선고되었던 것이다.

굳이 치료할 필요도 없고 일상생활에 지장이 없을 정도의 경미한 상처의 경우까지 상해를 인정한다면, 피고인의 책임에 비추어 다소 무거운 형벌이 내려질 수 있으므로, 그러한 의미에서 위 판결은 결론에 있어 합리적이고 상식적이었다고 생각된다.

이와 같이 형사 사건에서 상해의 개념은 매우 중요한 의미를 지니는데, 아래의 여러 사례를 통해 형법상 상해의 개념을 좀 더 구체적으로 이해해보자.

(사례1) 갑은 친구의 원룸 집에서 을녀가 밥을 먹지 않는다는 이유로 을녀를 강제로 눕혀 옷을 벗긴 뒤 1회용 면도기로 을녀의 음모를 위에서 아래로 가로 약 5㎝, 세로 약 3㎝ 정도 깎았다.
-> 상해 불성립.
이유 : 음모의 전체적인 외관에 변형만이 생겼다면, 이로 인해 피해자에게 수치심을 야기하기는 하겠지만, 신체의 생리적 기능에 장애를 초래했다고 볼 수는 없어 강제추행치상죄는 무죄, 강제추행죄만 성립(대법원 2000. 3. 23. 선고 99도3099 판결).

(사례2) 갑은 을녀를 강간하려다 미수에 그쳤는데, 그 과정에서 경부 및 전흉부 피하출혈, 통증으로 약 7일 간의 가료를 요하는 상처가 발생했다는 상해진단서를 발부받았고, 그 상처의 내용은 경부와 전흉부에 동전 크기의 멍이 들어있는 정도였다.
-> 상해 불성립.
이유 : 그 상처가 굳이 치료를 받지 않더라도 일상생활을 하는데 아무런 지장이 없고 시일이 경과함에 따라 자연적으로 치유될 수 있는 정도라면, 그로 인하여 신체의 완전성이 손상되었다고 보기 어려워 강간치상죄의 상해에 해당하지 않는다(대법원 1994. 11. 4. 선고 94도1311 판결).

(사례3) 갑 등은 을녀를 강간하였는데, 을녀는 이로 인하여 불안, 불면, 악몽, 자책감, 우울감정, 대인관계회피, 일상생활에 대한 무관심, 흥미상실 등의 증세를 보여 2일간 치료약을 복용하였고 6개월간의 정신과적 치료를 받았다.
-> 상해 성립
이유 : 상해는 반드시 외부적인 상처가 있어야 하는 것은 아니고, 생리적 기능이라 함은 육체적 기능 뿐만 아니라 정신적 기능도 포함된다 할 것인데, 위와 같은 증세는 의학적으로 외상 후 스트레스장애에 해당하고 이는 곧 신체의 완전성 훼손, 생리적 기능에 장래의 초래에 해당한다(대법원 1999. 1. 26. 선고 98도3732 판결).

(사례4) 피해자가 강제추행 과정에서 가해자로부터 왼쪽 젖가슴을 꽉 움켜잡힘으로 인하여 왼쪽 젖가슴에 약 10일 간의 치료를 요하는 좌상을 입고, 심한 압통과 약간의 종창이 있어 그 치료를 위하여 병원에서 주사를 맞고 3일간 투약을 하였다.
-> 상해 성립.
이유 : 신체의 건강상태가 불량하게 변경되고 생활기능에 장애가 초래되었다 할 것이어서 상해의 개념에 해당한다(대법원 2000. 2. 11. 선고 99도4794 판결).

(사례5) 미성년자에 대한 추행행위로 인하여 그 피해자의 외음부에 염증이 생긴 경우 -> 상해 성립(대법원 1996. 11. 22. 선고 96도1395 판결)

(사례6) 강간 도중 흥분하여 피해자의 왼쪽 어깨를 입으로 빨아서 생긴 동전크기 정도의 반상출혈상 -> 상해 불성립(대법원 1986. 7. 8. 선고 85도2042 판결)

(사례7) 피해자가 약 1주간의 치료를 요하는 좌측 팔 부분의 동전크기의 멍이 든 경우 -> 상해 불성립(대법원 1996. 12. 23. 선고 96도2673 판결)

동전크기 정도의 멍(찰과상, 타박상 등)이라면 상해가 인정되지 않겠지만, 염증의 발생이나 투약, 주사치료를 받은 경우에는 상해가 인정될 수 있다. 그리고 외상 후 스트레스장애나 수면 장애 등의 경우에도 정신적 생리기능 장애의 측면에서 상해가 인정될 수 있다.

5. 나가며

그런데, 아래 사례를 보자.

(사례8) 피고인이 강간하려고 피해자의 반항을 억압하는 과정에서 주먹으로 피해자의 얼굴과 머리를 몇 차례 때려 피해자가 코피를 흘리고(흘린 코피가 이불에 손바닥 만큼의 넓이로 묻었음) 콧등이 부었다면, 비록 병원에서 치료를 받지 않더라도 일상생활에 지장이 없고 또 자연적으로 치료될 수 있는 것이라 하더라도 강간치상죄에 있어서의 상해에 해당한다(대법원 1991. 10. 22. 선고 91도1832 판결).

즉 피해자가 치료를 받지 않았고 상처가 자연적으로 치유된 경우였음에도 상해를 인정하였다. 결국 대법원은 규범적인 요소까지 종합하여 상해 여부를 판단하고 있는 것이다. 손바닥 만큼의 코피를 흘리고 콧등이 부었다면, 건전한 상식에 비추어봤을 때 상해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사진=남광진 변호사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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