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조산책] 위험의 외주화, 그리고 안전의 대가

  • 태안 화력 발전소의 비극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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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정규 변호사(서울지방변호사회 이사)
입력 : 2018-12-31 06:00
수정 : 2022-06-04 16: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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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전기세를 올리면 되잖아."

전기요금은 공기업인 한국전력이 징수하는 것으로, 엄밀히 말하면 세금이 아니다. 하지만 시민들은 본래 고정적으로 지불하는 금액을 세금이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수신료, 가스비, 수도요금 등을 모두 세금이라고 생각한다.

어느 날 고단한 저녁 데이트 수행을 하다가 이런 이야기를 들었다. 데이트는 본래 음식이 맛이 있는지, 추위는 지나치지 않은지, 귀갓길 산책은 적당한 분위기인지 등 여러 과정을 신경쓰는 작업이라 주의를 산만하게 한다.

"뭐?"

"저 뉴스 말야."

한국에서 방송은 무상으로 상영 가능하다. 길거리나 식당이나 건물의 복도에서 TV를 틀어주는 일도 늘 있다. 마침 뉴스가 나오는 시간이었다. 태안의 한 화력발전소에서 컨베이어 벨트를 정비하던 한 청년이 죽었다. 막내 동생보다 어린 나이다.

장비도 없이 캄캄한 시설에 들어가 수리를 하다 끔찍한 사고로 목숨을 잃었다. 그가 뜯지 못한 택배 상자에는 '반지의 제왕'에서 나오는 반지가 들어있었다. 어린 시절 돈이 없어 갖지 못했던 물건이라고 했다. 위험의 외주화, 원청의 살인, 정부의 책임. 뉴스를 수놓는 단어들이다.

"비용 절감 때문이라며? 그럼 돈이 부족하다는 얘기고, 전기세를 올려야 되는 거 아냐?"

IMF 구제금융을 받던 외환위기의 시절, 전기 민영화에 대한 신화가 한국을 휩쓴 적이 있다. 지금은 경제를 되살린 주역이라며 현재의 후배들을 질타하고 다니는 경제관료들이 주도해 전력과 수도의 독점체제를 해체하고 민영화로 경쟁체제를 만들어야 한다고 설파했다. 지금 시점에서는 이들의 말이 완전히 맞다고 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그러나 당시 외환위기 국면을 지나치고 있던 한국에서 그들의 말은 금과옥조였다. 이후의 정권에서는 수도민영화가 이슈였지만 이 당시에는 전기가 중점이라 한전 민영화가 국정의 화두가 되었다. 21세기 현대문명은 석유가 아니라 전기가 지배한다. 아직 21세기가 아니던 세기말, 전력 총파업의 공포가 나라를 뒤흔들었다.

결국 정부와 한전 노조의 타협으로 송전과 배전은 본사에, 발전은 자회사로 분리하는 전력구조개편이 이루어졌다. 발전의 일부가 민영발전인 것도 이 시기의 결정이 유래다. 한국서부발전은 이때 탄생한 한국전력 자회사로 서부 일대의 화력 발전소를 주로 이용해 전력을 수도권에 공급하는 역할을 한다. 이곳의 수입원은 본사인 한전에서 받는 발전의 대가이고 한전은 이를 전기료로 치른다.
일반인들이 ‘세금’처럼 여기는 공과금인 전기료다.

이명박 정부 때부터 공공개혁의 중심 화두는 공공기관 방만경영을 타파한다는 것이었다. 이는어떤 의미에서는 공공개혁의 핵심이기도 하다. 어떤 공공기관도 이른바 8대 방만경영에서 자유롭기 어렵다. 하지만 방만의 반대말은 긴축이고 긴축의 요체는 절감이다. 비용, 투자, 그리고 인력의 감축이 '공공개혁'의 핵심이다.

그런데 공공기관은 정년을 보장하며, 인력 수요를 대체할 로봇의 시대는 오지 않았다. 대체 어떻게 인력을 줄일 수 있을까?

신규 인력 채용을 줄이고 인력 수요를 외주화 할 수 밖에 없다. 또한 공공기관의 인력 감축은 실제로 이러한 방향으로 진행되었다. 현재 대부분의 공공기관은 위험하거나 어렵거나 비용을 감축해야 하는 부문을 외주화하고 있다. 이미 공공기관에서 벌어진 이른바 ‘위험의 외주화’ 문제를 해결하고자 한다면 반대로 할 수 밖에 없다. 외주화된 인력을 내부 인력으로 돌린다. 노화된 현재 인력으로 감당이 안되니 신규 인력을 채용한다. 설비를 교체하고 안전 비용을 증가시킨다. 모두 비용으로 환산되는 사안이다. 한국서부발전의 증가된 비용은 ‘전기료’로 부담해야 한다. 예컨대 우리는 전기료 10만원을 더 부담할 각오가 되어 있을까?

뾰족한 답은 밤새 생각해도 나오지 않았다. 그러나 우리 사회가 한 걸음 나가기 위해서라면 이 비용을 치러야 할지도 모른다. 고인의 명복을 빈다.
 

[사진=강정규 변호사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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