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조산책] 변호사 시험, 경쟁과 공생 사이

  • 형제이기 이전에 경쟁자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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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우석 변호사
입력 : 2019-01-27 07:00
수정 : 2022-06-04 16: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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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라는 드라마가 2019년 초를 강타하고 있다. ‘대한민국 교육의 현실’이라는, 약간은 무겁지만 참신한 주제를 가지고 다양한 캐릭터를 설정하고 있다. 이에 더하여 배우들의 명품 연기까지 합쳐지면서 시청률 고공비행 중인 것이다. 화제성은 말할 것도 없다.

‘교육’을 다루기 때문에, ‘경쟁’에 노출되어 개성을 소모해가는 학생들은 이 드라마의 필수적인 요소다. 거기에 경쟁의 한복판으로 아이들을 내모는 부모들의 모습은, 다소 과장되었지만 정말 과장되었을까 반문하고 싶을 정도로 현실적인 대사들을 늘어놓는다. 그곳에는 쌍둥이 형제가 있다. 교육열로 무장하고, 그 자신이 매우 뛰어나서 강압적인 홈스쿨링을 하는 아버지도 있다. 거대한 저택의 한 켠, 웅장한 스터디 룸에 놓인 두 쌍의 책걸상은 쌍둥이들의 것이다. 무서운 아버지는 뒤에 앉아 문제를 내고, 제한시간 안에 문제를 맞힌 동생만이 스터디룸을 나갈 수 있다. 형제는 아버지를 향해, ‘한날한시에 태어난 우리가 왜 서로를 이기려고 해야 하냐’고 반문하지만, 아버지는 단호하다. “너희들은 형제이기 이전에 경쟁자야!”

재미있는 것은, 작중 위 아버지의 직업이 ‘로스쿨 교수’라는 점이다. ‘로스쿨’은 현재 가장 경쟁적인 집단으로 여겨지는 것일까, 다소 씁쓸하지만 대중문화는 직관적이다. 로스쿨은 필자가 다닐 때도 경쟁적이었고, 아마 수년이 지난 지금은 더하지 않을까 감히 예상해본다. 로스쿨에 합격하여 변호사 시험을 준비한다는 것은 사실 이미 경쟁적인 사람이라는 것을 의미한다. 다만, 그곳에는 경쟁적인 사람들만 존재하므로 상대적으로 그런 환경에 적응하지 못하는 학생은 언제나 존재한다. 하지만 경쟁적이기만 해서도 로스쿨에서는 좋은 결과를 얻기 힘들다는 것을 이내 알게 된다. 협업과 공생의 가치는 경쟁 그 이상으로, 3년간의 로스쿨 생활을 관통하는 키워드다.

변호사 시험과 정서적 안정

졸업 후 2년 정도는 직접 알고 있는 후배들의 영향인지 몰라도 변호사 시험에 대해 꾸준히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 친한 후배들에게는 공부 방법에 관하여 조언하기도 하고, 시험 기간 동안 응원의 메시지를 남기기도 하였으며, 일하기 싫은 ‘야근 데이’에는 시험문제를 풀어보기도 했다. 언제부터인지 잘 모르겠지만(아마도 사례형 문제가 너무 어려워 풀리지 않았던 때로 기억한다) 그 관심은 시들해졌다. 변호사 업무에 치이고, 로스쿨 생활이 희미해지다 보니 ‘요즘은 시험이 어렵다더라’, ‘공부를 잘하는 친구들도 시험에 합격하기 어렵다더라’ 하는, 누구나 들어봤을 카더라만 쌓여갔다. 필드에 나오는 신규 변호사들도 결국은 경쟁 상대가 아닌가 하는 생각도 했던 것 같다.

필자가 이 글을 송부하는 시점은 2019년 1월 6일, 제8회 변호사 시험을 불과 이틀 앞둔 저녁이다. 어떤 주제가 좋을까 고민하던 찰나에, 변호사 시험 일자를 보게 된 것이다. 많은 예비 변호사들이 공법을 열심히 준비하고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변호사 시험을 준비하는 것은 당연히 힘들었지만 돌이켜보면 시험을 보는 기간 그 자체가 상당한 도전이었다. 가장 문제가 되는 것은 체력이다. 거의 한 주간을 시험에 올인 해야 하므로, 그동안의 건강은 그 무엇보다 중요하다. 하루 종일 시험을 보고도 긴장을 풀 수 없기 때문에 체력의 소모는 상상을 초월한다. 그래서 휴식 일을 앞두고 상당수의 학생들이 영양제 주사를 맞으러 병원 침대에 다닥다닥 붙어 누워있는 모습은, 변호사 시험장 주변의 독특한 풍경이다.

체력만큼이나 중요한 것이 정서적인 안정이다. 어떤 시험이든 ‘시험이 끝나기 전에 답을 맞혀보지 말라’고 이야기하지만, 변호사 시험은 위 내용을 반드시 지켜야 한다. 끊임없이 다음 과목을 공부해야 하고, 마지막 지식을 점검해야 하고, 그러면서도 수면시간을 확보하며 최적의 컨디션을 만들어야 하는데 작은 균열이 생기면 이 모든 것이 무너져버린다. 스트레스가 리듬을 흔들면 모든 시험을 망치게 되는 것이다. 요컨대, 정서적 안정은 전체 성적을 결정하는 중요 요소로 보기에 부족함이 없다.

경쟁과 공생 사이

게다가, 함께 시험 보는 동기들에 대한 마음도 일종의 딜레마 상황에 놓이게 된다. 내가 시험을 조금 망쳤을 때 저 친구가 시험을 잘 보면 나는 뒤처지는 것이다. 시험 잘 보라고 격려하고 주먹을 불끈 쥐지만, 어제까지 한 열람실에서 밤을 새우던 저 친구는 오늘부터는 경쟁자가 되는 것이 아닌가 서글프다. 서글픈 마음 한줄기가 정서적인 안정을 해친다. 마음을 달리하여 경쟁심을 극대화하면, 내가 오늘 완벽하게 작성하지 못한 답안이 떠오른다. 이런 정도로는 이길 수 없다는 좌절감이 또다시 정서적인 안정을 해친다.

로스쿨 3년, 아마도 함께 준비한 친구들, 스터디원들이 있었기 때문에 고통스러운 시험 기간도 견딜 수 있을 것이다. 내가 써 내려가는 사례형, 기록형 답안지의 일부는 그들과 함께 했기에 작성할 수 있는 것이다. 시스템이야 어떻든 간에, 우리는 함께 변호사가 되기 위해 공부했고 시험에 임한다. 그리고 함께 변호사가 되어서 필드에서는 또 공생할 것이다. 그 와중에 경쟁도 하게 될 것이다.

“너희들은 형제이기 이전에 경쟁자”라는 말을 들었던 쌍둥이는 어떻게 되었을까, 그들은 아버지가 어렵게 얻은 족집게 시험 문제를 친구들과 공유했다. 아버지는 또 한 번 울분에 차서 아들들을 혼냈지만, 아마도 그들은 경쟁 이전에 공생의 가치를 우선한 듯 보인다. 가치에 정답이 어디 있겠느냐마는, 어쨌든 그들은 정서적인 파고로부터는 다소 자유로울 것이다. 제8회 변호사 시험에 임하는 모든 로스쿨 학생들의 건강과 건투를 기원한다. 아는 부분에서 모든 시험이 나올 것이라는, 상투적인 응원도 더한다.
 

[사진=법무법인 갑을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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