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낭기의 관점]남에게 피해끼칠 자유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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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9-07-11 20:52
수정 : 2019-08-28 18: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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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내 난동 한국인에게 실형·배상금 2억 선고한 미국
'해를 끼치면 반드시 상응하는 책임져야 ' 원칙 철저


지난 7월 3일 미국 하와이 호놀눌루 법원은 비행기에서 술에 위해 난동을 부려 비행기 회항을 유발한 40대 한국인 남성에게 징역 6개월의 실형을 선고했다. 또한 항공사에 손해배상금 17만 2000달러 (약 2억원)를 지급하라고 명령했다.

이 남성은 지난 2월 하와이에서 인천공항으로 가는 하와이 항공 여객기에서 소란을 피웠다. 옆자리에 앉은 아이를 괴롭히고, 이를 제지하는 승무원에게 고함을 지르고 달려들었다. 이 남성은 비행기 탑승 전에 위스키를 한 병 마셔 취한 상태였다. 승무원들은 기내에 탑승한 군인들 도움으로 그를 제압했다. 소동이 벌어지자 항공기는 이륙 4시간만에 하와이 공항으로 회항했고, 남성은 하와이 공항에서 FBI에 체포됐다.

호놀눌루 법원이 승무원 업무방해 혐의를 적용해 징역 6개월 실형을 선고한 것부터가 놀라운 일이다. 우리나라에서는 기내 난동을 벌여도 훈방되는 일이 잦다. 재판에 넘겨지더라도 집행유예나 벌금형이 고작이다. 더욱 놀라운 것은 2억원 손해 배상금 지급 판결이다. 2억원이라는 액수도 액수지만, 손배 배상금의 명목이 눈길을 끈다. 호놀룰루 법원은 2억원의 명목으로 항공사가 여객기를 회항하는 바람에 든 비용과 승객들에게 다음 비행기를 기다리는 동안 편의를 제공하는 데 든 비용을 꼽았다.

당연한 듯 보이지만 여기에는 우리가 새삼스럽게 봐야 할 대목이 들어 있다. 승객 난동으로 항공사가 입은 피해를 고스란히 물어내게 했다는 점이다. 자신의 행위로 남에게 해를 끼쳤으면 그에 상응하는 책임을 져야 한다는 원칙이 담겨 있다.

비슷한 일이 한국에서도 발생했었다. 2017년 3월 인천발 홍콩행 항공편에 탑승한 중국 국적 남성이 자기 좌석이 아닌 다른 좌석에 앉아 이 좌석을 배정받은 승객과 실랑이를 벌였다. 승무원들이 제지하자 욕설을 내뱉고 주변 승객에게 소란을 피웠다. 승무원들은 어쩔 수 없이 이 승객을 비행기에서 내리게 했다. 이 바람에 항공기 출발이 3시간쯤 지연됐다. 하지만 공항경찰대에 넘겨진 이 승객은 훈방됐고, 아무 일도 없었던 듯 다른 항공사 편으로 출국했다.

한국은 여객기 이륙 3시간 지연시킨 중국인을 훈방

비행기 출발이 3시간 지연된 것은 항공기가 이륙 4시간만에 회항한 일에 비할 정도는 아니다. 그러나 다른 승객들 입장에선 별일 아닌 것처럼 넘길 일도 아니다. 승객 중에는 비지니스로든 뭐로든 한시가 급한 사람들도 많았을 것이다. 이런 승객에게 천재지변이 아닌 승객 소동으로 3시간 지연된 것은 큰 낭패일 수 있다. 많은 승객들이 겪었을 정신적 스트레스로만 따져도 무시할 일이 아니다.

그럼에도 소란을 피운 승객을 아무런 책임도 묻지 않고 그냥 풀어준 것이다. 이 사례는 남에게 해를 끼치면 그에 상응하는 책임을 물어야 한다는 관념에서 미국과 한국 사이에 얼마나 큰 차이가 있는지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남에게 피해를 끼치는 일을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의식은 기내 난동에서뿐이 아니다. 지난 7월 4일 한국도로공사 톨게이트 요금 수납원 200여명이 출근길 경부고속도로 서울 톨게이트 부산 방향 진입로 12개 중 6개를 점거하고 농성을 벌였다. 수납원 600여 명이 도로공사에 직접 고용을 요구하며 시위를 벌이던 중 일어난 일이다.

이들은 오전 7시40분쯤부터 9시30분쯤까지 자리에 앉거나 두러누워 서로 팔짱을 끼는 방식으로 진입로를 막았다. 이 바람에 고속도로 차량 소통이 큰 지장을 받았다. 한참 출근할 시간에 2시간이나 전체 진입로 중 절반을 막았으니 그 시간 출근하는 시민들은 얼마나 속이 타들어가고 화가 났을까.

우리 사회에서 걸핏하면 도심 대로를 틀어 막고 점거 농성 시위를 벌이는 일은 곳곳에서 다반사로 벌어진다. 고속도로를 경운기나 트럭 수십대로 가로막고 시위를 벌이는 일도 아무렇지도 않게 일어난다. 그때마다 교통이 몇 시간씩 마비되다시피하고 애꿎은 시민들이 피해를 입는다. 인도에 불법 천막을 치고 통행을 가로막는 일은 이제 문제로 여기지도 않는다.

무슨 일이든 따지고 보면 그만한 이유가 있기 마련이다. 톨게이트 점거 농성 요금 수납원들의 경우 도로공사 측의 자회사 전환 배치에 반대하며 도로공사의 직접 고용을 주장해왔다. 자회사에 배치되면 고용 불안정성이 높아진다는 등의 이유에서였다. 고용 불안의 걱정이 그들을 점거 농성 시위로 몰고 간 것이다. 하와이 항공기 회항 사건을 일으킨 남성은 하와이 공항에서 미국에 입국하려다 서류 미비로 입국을 거부당했다. 그 뒤 이틀간 구금돼 있다가 한국으로 되돌아오는 길이었다. 홧김에 공항 면세점에서 위스키 한 병을 사서 병째로 마셨다고 한다.

◆'피해 끼치는 행위'에 무신경하면 모두가 피해자 돼

사정을 듣고 보면 왜 그런 일이 벌어졌는지 설명이 된다. 그러나 설명과 정당화는 다르다. 어떤 일의 이유에 대한 설명이 가능하다고 해서 그 일이 정당화되는 것은 아니다. 우리는 사회적으로 비난받을 만한 일이 벌어지면 그 원인을 분석하고 설명하게 된다. 이는 구조적 모순을 고치기 위한 것이란 점에서 중요하다. 그러나 설명은 설명에서 끝나야지 정당화로 이어지면 안 된다. 그 일이 수백, 수천 명에게 피해를 주는 일이라면 더욱 그렇다. 설명과 정당화를 혼동하면 이 세상에 비난받을 일은 하나도 없을지 모른다. 모든 일에는 그럴 만한 사정이 있을 텐데 누구를 탓할 수 있겠는가. 자칫 사회 탓만 있고 자기 탓은 없게 될 수도 있다.

영국의 정치철학자 존 스튜어트 밀(John Stuart Mill)은 개인의 자유를 누구보다도 신봉한 사람이다. 자기가 어떤 행동을 할지에 대해선 그 자신이 주권자라고 했다. 다른 사람은 일절 관여할 수 없다는 뜻이다. 그가 쓴 ‘자유론’이라는 책은 자유에 관한 성경으로 불릴 절도다. 그런 밀조차 자유를 주장할 수 없는 단 한 가지 예외 상황을 들었다. 바로 ‘남에게 피해를 주는 경우’이다. 남에게 피해를 주는 행동은 그 누구도 할 자유가 없다고 단언했다. 술 마시고 비행기 탈 자유는 있지만 남에게 행패 부릴 자유는 없다는 말이다. 시위할 자유는 있지만 도로를 가로막을 자유는 없다는 것이다.

너무나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이 당연한 일이 얼마나 지켜지는지, 이걸 지키지 않을 때는 얼마나 확실한 책임을 물리는지는 사회나 국가마다 다르다. 개인이든 집단이든 자유의 한계를 지키고, 그 한계를 넘으면 반드시 상응하는 책임을 묻는 사회라야 모두가 진정한 자유를 누릴 수 있다.  항공기 난동을 일으켜 수백명에게 피해를 입힌 승객에게 실형 선고와 함께 2억원 손해 배상 책임을 물리는 사회가 바로 이런 사회다. 남에게 피해 끼치는 행위에 무신경하고 관대하면 모두가 피해자가 된다.
 

김낭기 고문[남궁진웅 기자, timeid@aju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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