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승국 칼럼] 우린 너무 한쪽으로 치우치고 있지 않은가?

항상성과 경향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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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창우 박사가 쓴 <바디 바이블>을 읽었다. <바디 바이블>은 정형외과 의사이자 광림교회 장로인 이박사가 오랜 기간 의사로서 우리 몸을 대하고 이를 하나님 말씀과 연결하여 묵상하면서 쓴 책이다. 책을 읽으면서 ‘항상성’과 ‘경향성’이란 단어가 내 눈에 띈다. 생명체의 균형과 조화의 상태를 항상성(호메오스타시스)이라고 한다. 이는 단순히 중간을 유지하는 것이 아니라 균형(밸런스)을 유지하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이쪽도 저쪽도 아닌 상태가 아니라 이쪽과 저쪽을 모두 가지고 자기 안에서 통제할 수 있는 상태, 그래서 어느 한쪽으로 기울어지지 않고 양쪽 모두를 만족시켜 줄 수 있는 상태를 말한다고 한다. 이에 반해 경향성은 그러한 균형(밸런스)이 깨진 상태이다. 이박사는 경향성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밸런스를 쉽게 잃어버리게 됩니다. 밸런스를 깨뜨리는 것이 ‘경향성’입니다. 우리는 걸음을 걸어도 한쪽으로 치우치는 경향성을 가집니다.
   생각을 해도 생각하던 경향대로 편향된 생각을 하게 되고, 습관, 고정관념, 다른 사람의 이목, 유행이나 사조의 경향성을 따라 행동하게 됩니다.
   마치 자동차의 휠 밸런스가 기울어서 자동차의 방향이 한쪽으로 쏠리는 것처럼, 우리의 인생도 이데올로기나 잘못된 개념, 유행을 따라 한쪽으로 쏠리게 되면 밸런스를 잃어버리게 되는 것입니다
."

이박사는 환자들로부터 몸의 밸런스가 깨지는 경향성을 관찰하면서 이를 우리의 생각이나 사상의 밸런스가 깨지는 경향성으로까지 생각의 지평을 넓히고 있다. 이박사의 글을 읽으면서 요즘 우리 사회가 밸런스가 무너지면서 심각한 경향성에 빠져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원래 많은 사람들이 모여 사회를 이루면서 살아가다보면 사람마다 생각이 다르고 다양한 목소리가 나오는 것은 당연하다. 그렇기에 민주주의 사회에서는 그런 다양한 목소리를 존중하며 토론하고 서로 머리를 맞대고 합리적인 대안을 찾아나가는 것이다.

그런데 요즈음 우리 사회에서는 상대를 존중하지 않고 무조건 자기만이 옳다며 목소리를 크게 내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 그리하여 중간에서 합리적인 대안을 찾으려는 사람들을 회색분자로 취급하며 나와 생각이 같지 않으면 무조건 틀린 것이라며 흑백논리로 일관한다. 그리고 자기들의 논리를 강화하려고 확인되지 않은 사실에 근거하거나 오히려 교묘하게 가짜뉴스를 만들어 퍼뜨리기까지 한다. 사회가 건강하려면 양쪽을 다 아우르며 그 안에서 보다 나은 대안을 찾는 사람들이 중심을 잡고 밸런스를 유지해야 하는데, 양 극단으로 치우치는 사람들이 목소리를 크게 내다보니 이런 합리적인 사람들이 설 자리가 점점 좁아진다. 이럴 때 정치가들이 나서서 사회의 항상성을 유지할 수 있도록 정치력을 발휘해야 하는데, 오히려 정치인들이 이들에게 영합하여 오히려 갈등을 조장하고 있다.

이 나라를 어찌할 것인가? 지금 미중 간의 갈등으로 우린 자칫 고래 싸움에 새우등 터질 위험에 있고, 일본이 생트집을 잡으며 무역 보복을 하고 있는데, 우린 언제까지 ‘니 탓, 네 탓’이나 하고 있을 것인가? 혹자는 지금 상황이 나라가 망해가던 조선 말 상황과 같다는데, 이를 단순히 기우라며 일소에 붙일 것인가? 이박사는 <바디 바이블>에서 근육에 대한 묵상을 펼치면서 우리 몸의 구조는 땅을 볼 때 근육이 뭉치게 되어 있고, 하늘을 바라볼 때 근육이 펴지고, 풀리고 바로 세워지게 되어 있다고 한다. 그러면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이 위에 계신 하나님을 바라볼 수 있는 영적인 근육이라고 한다.

이 글을 보면서 ‘생각의 근육’이라는 말이 생각난다. 지금 우리는 생각의 근육이 너무 한쪽으로 뭉쳐있다. 인체로 한다면 하나의 기관이라 할 수 있는 집단들이 항상성을 유지할 생각은 않고 서로 다른 집단들 죽이기에 골몰하고 자기 이익만 챙기겠다고 한다면 결국 기관들이 모인 인체가 쓰러지듯이, 그 집단들이 모인 나라는 쓰러지고 말 것이 아닌가? 이제 우리는 경향성으로 똘똘 뭉친 근육을 부드럽게 풀어주어 다시 균형을 찾아야 한다. 그러기 위해선 자기나 자기가 속해 있는 집단의 눈앞의 이해관계에만 골몰할 것이 아니라, 눈을 위로 들어 좀 더 넓은 시야에서 유연한 마음으로 세상을 바라봐야 할 것이다. 눈을 들어 하늘 보라!
 

[사진=양승국 변호사(법무법인 로고스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