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조산책] ​평준화 반대는 비평준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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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정환 변호사
입력 : 2019-10-05 09:00
수정 : 2022-06-04 16: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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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정치의 영원한 숙제는 교육과 부동산이라는 말이 있다. 그만큼 국민적 관심도가 매우 높은 영역이다. 특히 교육 문제의 경우 국민의 숫자만큼 다른 교육 이념이 있다고 할 수 있을 정도로 다양한 의견이 존재하기 때문에 국민적 합의가 어려운 영역이기도 하다.

최근에는 자율형사립학교(이하 “자사고”)가 교육계의 뜨거운 감자가 되었다. 우선 올 4월에는 헌법재판소에서 자사고·일반고 중복지원금지 정책에 대하여 위헌 결정을 한 바 있는데 일각에서는 이를 “정부의 자사고 죽이기에 대한 헌재의 제동”이라고 평가하기도 하였다. 이후 6월 경에는 전북교육청의 상산고 자사고 지정 취소를 시작으로 해서 전국적으로 교육청에 의한 지정취소 움직임이 있었다. 이러한 일련의 자사고 지정취소에 대하여 교육부는 상산고를 제외한 나머지 학교들에 대해서는 동의를 하였고 해당 학교들은 행정소송을 불사하겠다는 만큼 향후 몇 년간 이 논란은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교육 문제는 정치적으로 매우 예민한 문제이기 때문에 자사고에 대한 다양한 논쟁이 있는 것은 어쩌면 매우 당연한 일이다. 필자는 교육 전문가가 아니기 때문에 자사고의 교육적 성과 또는 부작용에 대하여 전문적인 평가를 내리기는 어렵다. 그러나 필자는 우리 사회가 자사고 논란을 어떻게 바라보는지에 대하여 주목하고자 한다.

자사고 또는 특목고 논란이 있을 때 마다 언론 등에서 빠지지 않는 도식이 있다. 바로 “평준화 vs. 수월성 교육” 또는 “평준화 vs. 다양성 교육”이라는 도식이다. 과거에는 평준화에 대비되는 단어로 “수월성”이라는 단어가 더 빈번하게 사용되었으나 최근에는 “다양성”이라는 새로운 담론으로 대체된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앞서 언급한 헌법재판소 결정의 경우에도 이러한 인식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가령 해당 결정문에는 다음과 같은 문구가 나온다. “나라와 민족의 명운이 걸린 이런 중차대한 시기에 우리가 세계사를 선도하기 위해서는 주요 선진국의 경우와 같이 고등학교에서도 자기주도학습, 창조적 문제해결, 소통기반 협력 등의 역량을 키워주는 교육혁명이 필요하다. 그런데 이 사건 동시선발 조항은 고교 평준화에 매몰되어 ‘사학의 자율성과 교육의 수월성’ 보장을 통한 4차 산업혁명을 거부하거나 외면하고 있다.”

그런데 이러한 헌법재판소의 결정문을 읽다 보면 다음과 같은 의문이 든다. 그렇다면 자사고가 아닌 일반고에서는 “자기주도 학습, 창조적 문제해결, 소통기반 협력”과 같은 교육 혁명이 이루어질 수는 없는 것인가? 4차 산업 혁명에 대응하는 책무는 오롯이 자사고에게 부여된 것일까? 헌법재판소가 언급한 교육 혁신은 학교의 형태를 불문하고 교실 안에서 얼마든지 이루어질 수 있는 것이고 반드시 특정한 형태의 학교를 전제로 하고 있는 개념은 아니다. 뿐만 아니라 이는 전통적으로 강조되어온 “수월성” 교육의 강화로 인하여 달성되는 목표도 아니다. 오히려 평범한 학교를 나온 평범한 학생도 자신의 재능과 꿈을 실현할 수 있을 때 우리는 진정으로 4차 산업 혁명을 잘 대비하고 있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즉, 교육 평준화를 지향한다는 말은 헌법재판소의 입장과는 달리 교육의 혁신을 부정하는 것이 아니다. 한국교육개발원에서 매년 실시하는 교육여론조사에서 평준화 정책에 대한 지지도는 일관되게 과반을 넘는다. 그러나 혁신적 교육과 다양한 교육 과정에 대한 욕구 역시 일관되게 확인되고 있다. 즉, 우리 국민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은 교육 혁신은 일부 학교에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모든 학교에서 골고루 이루어지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오히려 비평준화가 교육의 수월성 재고와 다양성 확보에 기여하고 있는지에 대한 검토가 필요하다. 자사고의 설립근거가 된 초중등교육법 시행령 제91조의3의 경우 자사고의 요건으로 국가지원금을 받지 않을 것과 일정한 법인전입금 요건만을 두고 있다. 즉, 자사고는 태생적으로 사립학교 재단의 추가적 재정 투자를 조건으로 재단의 자율성을 확대하는 정책이지 교육의 혁신성을 지향하는 정책은 아니다.

물론 실제로는 지역 교육청에서 자사고의 교육 이념과 실태를 조사하여 이를 평가에 반영하는 것은 사실이지만(이번 자사고 지정 취소 사태 역시 이러한 평가의 일환에 불과하다) 교육 지향성이 분명한 특수목적고에 비하면 자사고의 경우 적어도 법체계상으로는 교육 혁신에 어떠한 기여를 할지가 불분명한 것은 사실이다. 실제로 상당수의 자사고는 특정한 교육 방향이나 이념으로 구분되어지기 보다는 단순히 지역 내 명문 고등학교로 인식되는 경우가 많고 이번에 화재가 된 상산고의 역시 이러한 대표적인 경우에 해당한다(그런데 이러한 “명문고” 지위는 우수한 학생을 선발함으로서 자연히 발생한 결과라는 점 역시 기억할 필요가 있다).

마지막으로 분명히 할 부분이 있다. 교육정책은 학생 등 이해당사자가 많기 때문에 아무리 좋은 정책이더라도 매우 신중하고 단계적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정부(실제 교육 정책의 집행은 교육부와 지방 교육청 등으로 분산되어 있으나 편의상 본 글에서는 “정부”로 통칭한다)의 최근 정책들은 학생들의 신뢰보호 측면이나 절차적 정당성 측면에서 다소 무리가 있었던 것은 사실이다. 이번 헌법재판소 결정이나 교육부의 상산고 지정취소 부동의 결정은 이러한 맥락에서 충분히 수긍이 가는 부분이 있다. 그러나 이러한 각론적인 결과를 통하여 “낡은 평준화 이념에 대한 제동”이라고 해석하는 것은 분명 과잉 해석이다.

복잡한 쟁점의 논쟁을 하다보면 가끔 기본적인 것을 잊게 되는 경우가 있다. “평준화”의 사전적 반대말은 “서열화”이다. “수월성 교육”의 사전적 반대말은 “열등한 교육”이다. “교육 다양성”의 사전적 반대말은 “획일적 교육”이다. 국민 누구도 “서열화”된 “열등한 획일적” 교육을 희망하는 사람은 없다. 교육 분야에서 유의미한 진전이 있기 위해서는 우선 평준화와 교육 혁신 사이에 양자택일하기를 강요하는 사회적 담론부터 사라져야 할 것이다.
 

[사진=전정환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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