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사면초가 속 아슬아슬한 외줄 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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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9-10-07 19:02
수정 : 2019-10-08 12: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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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에 충성하지 않기'의 고단함 절감할 것

요즘 윤석열 검찰총장은 ‘사람에게 충성하지 않는다’는 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절감하고 있지 않을까 한다. 살아 있는 권력에 맞서 수사한다는 것이 이렇게 위험하고 힘들 줄은 미처 몰랐을 것이다. 윤 총장은 박근혜 정부 때 국정원 댓글 사건을 수사하면서 상관인 서울중앙지검장과 부딪쳐 본 일이 있다. 그러나 지금 상황은 그때와는 비교가 되지 않는다. 대통령과 맞서 있는 형국이 아닌가.

윤 총장은 정권이 검찰 개혁을 외치면 응답하는 모양새를 취하면서 어떻게든 수사의 끈을 놓치지 않으려 하고 있다. 그 모습이 마치 외줄 타기를 하는 것같다. 외줄에서 떨어지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쓰는 것같다. 윤 총장이 외줄을 끝까지 건너가 목적지에 도달할 것인가, 도중에 떨어지고 말 것인가. 이것이 조국 수사 정국의 키 포인트이다.

조국 장관 수사에 대한 정권과 지지세력의 압박은 처음 수사 착수 때부터 있어 왔다. 그러나 9월 23일 조국 장관 집 압수수색 이후 강도가 갈수록 강해지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은 미국 방문에서 귀국한 직후인 9월 27일 청와대 대변인을 통해 처음으로 ‘검찰 개혁’을 강조했다. “검찰 개혁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며 “인권 존중하는 절제된 검찰권 행사가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했다.검찰의 조 장관 집 압수수색 등이 ‘인권 존중’ ‘절제’를 넘어 과잉이라는 경고의 뜻이었다.

처음엔 대통령 '검찰 개혁' 무겁게 인식하지 않은 듯

이때만 해도 검찰은 문 대통령의 경고 메시지를 무겁게 인식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대검은 문 대통령의 입장 표명이 있은 지 1시간 30분 뒤 입장을 내놨다. “헌법 정신에 입각해 인권을 존중하는 바탕 위에서 법 절차에 따라 수사하겠다”고 했다. 일단 대통령의 경고를 받아들이는 자세를 취했다. 그러나 수사에 기가 죽지는 않겠다는 뜻도 내보였다. ‘대검 관계자’ 이름으로 발표한 형식도 그랬고, ‘법 절차에 따라 수사하고 있다’는 내용도 그랬다. ‘수사는 법대로 하고 있으니 걱정 마시라’라는 뜻으로 읽힐 수 있었다.

9월28일 서울 서초동 검찰청사 앞에서 대규모 검찰 규탄 시위가 열렸다. 참가자들은 검찰 개혁을 외치며 조국 수사를  비난했다. 검찰은 다음 날인 29일 또 입장을 내놨다. 이번에는 형식부터 좀 격을 높였다. ‘검찰 개혁에 관한 검찰총장의 입장’이라고 해서 윤 총장이 직접 입장을 내는 형식을 취했다. 그러나 내용은 아직까지 원론적인 수준이었다. “검찰 개혁을 위한 국민의 뜻과 국회의 결정을 충실히 받들고 그 실현을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고 했다. ‘국민 뜻을 따르겠다’고 몸을 낮췄지만 의례적인 말로 보일 수도 있었다.

청와대는 이런 검찰이 ‘아직도 말귀를 제대로 알아듣지 못한다’고 판단한 모양이다. 정신이 번쩌 들 정도로 해줄 필요가 있다고 느낀 모양이다. 마침내 9월30일 문 대통령이 조국 장관의 업무 보고를 받는 자리에서 작심한 듯 직접 육성으로 검찰총장에게 개혁을 지시했다. “검찰은 검찰 개혁을 요구하는 국민 목소리를 겸허히 받아들이고 반성해야 한다”며 “검찰총장에게 지시한다. 검찰권 행사 방식, 수사 관행, 조직 문화 등의 개혁 방안을 조속히 마련하라”고 했다. ‘반성하라’는 표현에 문 대통령의 강경한 의중이 엿보인다.

청와대, '말귀 못 알아 듣나' 대통령이 직접 지시

조국 장관도 검찰 개혁안을 쏟아냈다.특수부 축소, 형사부와 공판부 강화, 피의사실 공표 금지 방안, 대검 감찰본부장과 사무국장 인사안을 대통령에게 보고했다. 이에 문 대통령은 “모두 검찰 개혁을 위해 필요한 방안”이라며 그대로 수용했다. 조 장관은 이날’ 제2기 법무·검찰 개혁 위원회’도 발족시켰다. 민주당도 당내에 ‘검찰 개혁 특별위원회’를 구성했다. 검찰 개혁을 명분으로 검찰을 전방위로 압박하고 나선 모양새다.

조국 장관 수사가 한창 진행중인 와중에 특수부 축소, 수사 관행 개선 등등 검찰 개혁을 강조하면 조국 장관 수사는 아무래도 위축될 수밖에 없다. 당장 특수부 검사들은 조국 장관 수사를 살살하라는 신호로 받아들이고 수사에 소극적으로 임할 수 있다. 특수부가 축소된다니 이번 수사가 끝나면 자기들 갈 자리가 없어질 것을 걱정할 수도 있다. 수사 관행 개선을 강조하니 조국 장관 수사 과정에서 조그만 문제라도 생기면 모든 책임을 뒤집어쓸까봐 몸조심만 하려 할 수도 있다.

문 대통령도 ‘검찰 개혁’ 강조가 조 장관 수사를 살살하라는 뜻으로 비출 것을 우려한 때문인지 조 장관의 검찰 개혁안 보고에 토를 달긴 했다. “당장 추진할 경우 현재 진행중인 수사를 위축시키려 한다는 오해가 있을 수 있으니 시행 시기는 조 장관 수사 이후로 하라”고 지시한 것이다.

그러나 검찰은 이 말을 ‘립 서비스’에 불과한 것으로 받아들일 것이다 .’반성하라’ ‘국민 목소리를 겸허히 받아들여라’고 실컷 질타해 놓고서 ‘그렇다고 지금 당장 시행하라는 말은 아니고~’라고 해봐야 이미 엎질러진 물이다. 검사들이 그 말 속에 담긴 경고의 뜻을 모를 리가 없다.

 '대통령 말씀 따라'  몸 낮추며 개혁안 발표

실제로 대통령 육성 지시의 효과는 바로 나타났다. 검찰은 하루 뒤인 10월1일 자체 개혁안을 발표했다. 제목부터 ‘대통령 지시에 따른 검찰 개혁 방안’이다. 대통령 지시를 충실히 받들겠다는 뜻을 분명히 했다. 내용은 더하다. ”대통령 말씀에 따라 검찰권 행사의 방식, 수사 관행, 조직 문화 등에 관해 국민과 검찰 구성원 의견을 수렴하고 이를 토대로 인권 보장을 최우선으로 하는 개혁 방안을 마련하겠다”고 했다. 대통령 지시 내용을 그대로 반복한 것이다.

개혁안 내용도 문 대통령이 조국 장관 보고를 받고 “모두 검찰 개혁에 필요한 방안”이라고 했던 내용 그대였다. 특수부를 서울중앙지검 등 3곳 빼고 모두 없애고, 외부 파견 검사를 전원 복귀시켜 형사부와 공판부에 배치하겠다는 등의 내용이다.

윤 총장의 이런 대응은 종전과는 달리  대통령 앞에서 자세를 한결 낮춘 것으로 볼 수 있다. 대통령 개혁 지시를 적극 존중하고 실천하겠다는 자세를 명백히 함으로써 대통령 심기를 건드리지 않으려는 의도로 보인다. ‘조국 장관 수사가 검찰 개혁에 대한 저항’이라고 비난해온 정권 지지세력의 공세를 피하기 위한 의도도 있을 것이다. 동시에 개혁에 앞장설 테니 조 장관 수사에는 간섭하지 말라는 메시지를 청와대와 지지세력에 전하려는 뜻도 있을 것이다.

한마디로 정권의 개혁 요구에 응할 것은 응해 공세의 예봉을 피하면서 어떻게든 조 장관 수사의 숨통은 트여가려는 안간힘이자 전략으로 볼 수 있다. 이것이 바로 조 장관 수사를 흔들어 대는 정권과 지지세력 앞에서 외줄을 타는 모습이다. 윤석열 총장의 이런 모습은 10월 3일 조 장관 아내 정경심씨를 당초 공개 소환하기로 했던 방침을 바꿔 비공개 소환하는 것에서 절정을 보였다.

대통령 심기 건드리지 않으면서 수사 숨통 이어가려 안간힘

‘황제 소환’ ‘인권 존중 검찰 개혁의 제1호 수혜자가 정경심’이라는 비판이 쏟아졌다. 그러자 윤 총장은 10월 4일 모든 피의자의 공개 소환 자체를 금지하기로 하고 이를 전국 검찰청에 지시했다. 현행 수사 사건 공보 준칙에 전·현직 장차관 등 공적 인물은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공개 소환할 수 있게 돼 있다. 그런데 공직자든 아니든 공개 소환을 모두 없애겠다고 한 것이다. 이제 정씨 조사에 이어 조국 장관을 소환하게 될 때도 비공개로 하게 된다. 조 장관도 ‘검찰 개혁’의 수혜자가 되는 것이다. 검찰은 심야 조사 금지 방침도 밝혔다. 밤 9시까지만 조사하겠다고 했다. 

윤 총장의 공개 소환 전면 폐지와 심야 조사 금지 역시 외줄을 건너가기 위한  안간힘으로 보인다. 정경심씨와 조 장관을 봐주려는 것이라는  비난을 받더라도 정권의 ‘인권 존중’ ‘수사 관행 개선’ 요구를 받아들여 정권의 압박을 피하거나 최소한 약화시키려는 것이다. 그렇게 해서라도 조국 장관 수사를 최대한 이어나가려는 의도일 것이다.

검찰은 지금까지 조 장관 5촌 조카를 구속하고 조 장관 동생에게 웅동학원 교사 채용과 관련해 돈을 전달한 2명을 구속했다. 정경심씨는 10월3일에 이어 5일 두번째 소환조사했다. 검찰은 정씨에게 당초 4일에 출석하라고 했으나 정씨는 아파 나올 수 없다고 했다. 정씨는 5일 두번째 조사 때 검찰에 머무른 15시간 중 실제 조사 시간은 2시간 40분에 불과하고 쉬는 시간을 제외한 11시간을 자신의 조서를 열람하는 데 보냈다고 한다. 첫번째 조사 때도 아프다며 조사 중단을 요청해 8시간만에 귀가했다. 일반 피의자가 이런 대우를 받는 것은 불가능하다. '황제 조사'라는 비판이 나올 정도다.

검찰은 조 장관 동생에 대해서 구속영장을 청구했다. 조 장관 동생의 영장실질심사는 8일로 예정돼 있다. 그런데 그는 하루 전인 7일 영장실질심사 일정 연기를 법원에 요청했다. 그는 ‘최근 넘어져 허리디스크가 악화했고 8일 수술받기로 했는데 수술 후 1∼2주간 외출할 수 없다’는 이유를 댄 것으로 언론에 보도됐다. 그러나 검찰은 8일 오전 조씨가 입원한 병원에 의사 출신 검사를 포함한 수사진을 보내 건강상태를 점검한 뒤 조씨의 구인영장을 집행했다. 연합뉴스 보도에 따르면 검찰 관계자는 "소견서를 받아보고 주치의를 면담한 결과 영장실질심사에 전혀 문제가 없다고 판단했다. 본인도 영장실질심사를 받는 데 동의했다"고 말했다. 구인 영장 집행은 윤석열 총장이 검찰 개혁이라는 명분은 수용하면서 수사는 법대로 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으로 해석된다. 어떻게 해서든 외줄을 끝까지 건너가겠다는 의지 말이다. 

정씨 구속·조국 소환이 외줄 타기의 끝··· 성공할까 실패할까

윤석열 총장은 정권의 압박과 공세 속에서 외줄 타기를 하면서 여기까지 왔다. 검찰은 정씨를 한 두번 더 불러 조사한 뒤 구속영장 청구 여부를 결정할 것으로 보인다. 정씨 조사가 마무리된 뒤에는 조 장관이 소환될 가능성이 크다.  윤 총장은 정씨 구속과 조 장관 소환 조사라는 외줄 타기의 끝을 향해 가고 있다.

정권과 지지세력의 외줄 흔들기는 계속될 것이다. 더욱 심해질지 모른다. 정씨가 구속 사유에 해당하는데도 정권 압박에 못 이겨 불구속한다든지, 조 장관을 조사해 기소 여부를 결정해야 하는데도 못한다든지 하면 윤 총장은 가까스로 버텨온 외줄 타기에서 실패하는 게 된다. 외줄에서 떨어지는 게 된다. 외줄에서 떨어지면 온몸에 상처를 입는다. 성공하면 관중의 박수갈채를 받는다. 윤 총장의 앞날은 어느 쪽일까.

5일 오후 서울 서초구 대검찰청 인근에서 '조국 구속·문재인 퇴진요구 결사항전 맞불집회'가 열릴 가운데 행사시작 3시간 전 부터 시민들이 모여 구호를 외치고 있다.[유대길 기자, dbeorlf123@aju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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