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승국 칼럼] ​화쟁(和諍)이 필요할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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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조국 장관 문제로 나라 전체가 시끄럽다. 지금 나라 안팎으로 우리가 힘을 모아 대처해야 할 많은 사안들이 있는데, 언론은 온통 조국 장관 문제에 신경이 쏠려 확인되지도 않은 시시콜콜한 조국 장관 가정사 문제까지 끄집어내어 엄청난 기사를 쏟아내고 있다. 게다가 최근에는 서초동에서 ‘조국 수호’를 외치며 조국 장관을 지지하는 수많은 사람들이 모여 조국 장관이 검찰 개혁 임무를 완수할 수 있도록 조국 장관을 지켜야 한다고 외치고, 이에 질세라 광화문에서도 많은 사람들이 모여 ‘조국 사퇴’를 외치고 있다. 그런데 이렇게 국론 분열의 위기를 맞았으면, 정치권이 사퇴의 심각성을 깨닫고 국민들에게 갈등을 해소하는 길을 보여주어야 하는데, 오히려 이를 조장하는 듯하다. 국정감사 기간 중에도 온통 조국 장관 문제를 들먹이고 있으니...

조국 수호를 외치는 진보 집단과 조국 사퇴를 요구하는 보수 집단 중 어느 한쪽이 맞고 어느 한쪽이 틀리다고 할 수 있을까? 탐욕에 눈이 어두운 극우나 독선에 사로잡힌 극좌를 제외하고는 다 나름대로 나라와 국민을 사랑하는 마음에서 자기 주장을 펼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다만 그 관점이 다르다는 것일 뿐. 원효대사는 화쟁(和諍)을 얘기하면서 장님 코끼리 만지기를 예화로 든다. 어떤 이는 다리를 만지면서 코끼리가 굵은 기둥이라고 하고, 어떤 이는 코끼리의 옆구리를 만지면서 벽과 같다고 한다. 이에 대해 원효는 개시개비(皆是皆非)라고 한다. 부분적이라도 모두 코끼리를 가리키고 있으므로 모두 옳은 것이지만, 이것만으로는 코끼리 전체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 아니므로 모두 틀리다는 것이다. 원효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이렇게 모두 옳은 면과 그른 면이 있기 때문에 어느 한 주장만이 옳다며 다른 주장을 배척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다들 겸허하게 다른 이들의 주장을 경청하며 코끼리의 모습을 완성해나가야 한다는 것이다. 원효가 강조하는 화쟁(和諍)이라는 말이 평화로운 다툼이라는 뜻이 아니던가? 역사적으로 보더라도 어느 한쪽만이 절대적으로 정의인 경우는 없었다. 자신만이 절대 정의임을 내세워 정치를 농단(壟斷)하였을 때 과연 그 사회가 행복하였던가? 그래서 칼 포퍼는 세상을 천국으로 만들려는 순간 세상은 지옥이 된다고 한다. 지금 우리 사회에 필요한 것이 화쟁의 정신이다.

그런데 집권자들이나 서로 파당을 이루고 죽이네 사네 하며 싸웠지, 원래 우리 민족은 원효의 화쟁의 정신을 실천하였다고 하겠다. 유교, 불교, 기독교 등 다양한 종교가 들어왔지만, 다른 나라들처럼 종교 갈등으로 피터지게 싸우지는 않았지 않는가? 그 외에도 민초들은 화쟁하면서 공존할 줄 알았다. 이어령 교수의 말처럼 ‘어긋나다’와 ‘비슷하다’와 같이 서로 합치될 수 없는 말이 합쳐져 ‘엇비슷하다’라는 말이 나온 것도 우리 민족 특유의 포용 정신이 말에도 배어나온 것이다. 논어 자로(子路)편에‘군자화이부동 소인동이불화(君子和而不同 小人同而不和)’라는 말이 있다. ‘군자는 다양성을 인정하고 서로의 화합, 어울림을 추구하되 획일적인 같음을 요구하지 않지만, 소인은 획일적으로 자기와 같을 것만을 요구하지, 서로 차이가 나는 것에 대해 이를 인정하지 않고 이와 어울리려고 하지 않는다.’ 내 생각대로 풀이해본 것이다. 지금 우리 사회는 다른 이의 주장에는 귀 기울이지 않고 자기 목소리만 높이는 소인이 활개 치고 있지만, 우리 사회에 이런 갈등을 조정하고 화합시킬 수 있는 군자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니 말도 맞고 네 말도 맞다며 다양한 목소리를 포용하며 건국 초기의 조선을 안정적으로 이끌었던 황희 정승과 같은 분이 이 시대에도 필요하다는 말이다. 정치인들에게 묻는다. 당신은 소인으로 남을 것인가, 군자가 될 것인가?
 

[사진=양승국 변호사, 법무법인 로고스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