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낭기의 관점]검찰 개혁, 대통령이 다그친다고 될 일 아니다

검찰이 피의자 직접 조사 뒤 조서 작성

조서가 판결 결정적 역할 하는 '조서 재판'

이 제도 그대로 두고선 수사 관행 개선 불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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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대통령은 10월 16일 법무부 차관과 검찰국장을 불러 검찰 개혁 조치가  10월 내로 마무리될 수 있도록 해달라고 지시했다. 법무부가 조국 장관 사임 직전인 10월 14일 발표한 검찰 개혁 방안을 서둘러 시행할 수 있도록 하라는 것이다. 법무부가 발표한 검찰 개혁 방안은 크게 두 가지다. 검찰 조직의 개편과 수사 행태의 개선이다. 조직 개편은 특수부를 축소하고 형사부와 공판부를 확대한다는 것이다. 수사 행태 개선이란 검찰권 행사 방식과 수사 관행의 개선을 말한다.

검찰 개혁의 핵심은 검찰의 정치적 중립성과 수사의 독립성 확보라는 점에서 조직 개편과 행태 개선은 부차적인 과제다. 다만 이 과제 역시 필요한 것이라 하긴 해야 한다. 문제는 조직 개편을 위해 필요한 일과 행태 개선을 위해 필요한 일은 전혀 다른데도 이를 구별하지 않고 서두른다는 점이다. 조직 개편은 관련 법령을 고치면 당장이라도 가능하다. 그러나 검찰권 행사 방식과 수사 관행의 개선은 법령을 고친다고 해결될 일이 아니다. 사법 제도의 기본 골격을 바꿔야 가능한 일이다. 지금의 사법 제도를 그대로 둔 채 대통령이 다그친다고  될 일이 아닌 것이다.

법무부가 검찰권 행사 방식과 수사 관행 개선을 위해 내놓은 방안은 여러 가지다. 대통령 지시에 따라 ‘인권 보호’와 ‘절제된 검찰권 행사’에 초점을 맞춘 것들이다. 그 주요 내용은 다음과 같다. ①공개 소환 금지, ②피의사실 공표 금지, ③심야 조사(오후 9시부터 다음날 오전 6시까지) 금지, ④1회 조사 12시간 초과 금지, ⑤한 번 조사 뒤 8시간 연속 휴식 보장, ⑥전화나 이메일 조사 활용 등으로 소환 조사 최소화, ⑦소환 뒤 불필요한 대기 금지, ⑧지나치게 반복적인 출석 요구 제한, ⑨부당한 별건 수사 제한, ⑩수사 장기화 제한, ⑪사건 관계인에 대한 친절·경청·배려 및 모멸감 주는 언행 금지.

무소불위 검찰 수사 관행 어떻게 만들어졌나

하나같이 꼭 개선돼야 할 내용이다. 그러나 이를 고치려면 먼저 왜 우리나라에선 검찰권 행사가 이런 방식으로 이뤄졌고, 왜 이런 식의 수사 관행이 생겨났는지를 살펴봐야 한다. 정확한 원인을 알아야 정확한 처방을 내릴 수 있기 때문이다. 그 원인은 검찰 또는 경찰이라는 국가기관이 피의자를 직접 조사해 피의자 신문 조서를 작성하고, 이 조서를 법정에 제출하면, 이 조서를 토대로 재판이 이뤄지는 우리나라의 사법 제도다. ‘조서 재판’이라는 말이 나오는 현실이 근본 이유인 것이다.

만약 미국이라면 어땠을까? 검찰이든 경찰이든 수사 기관(국가 기관)이 피의자를 강제로 소환할 수도 없고 조사할 수도 없다. 피의자도 수사 기관의 소환에 응할 의무가 없다. 그러니 피의자 신문 조서라는 게 있을 수도 없다. 경찰이 피의자를 체포했을 때 인적 사항, 체포 경위, 체포 사유를 적은 체포서를 작성하는 게 전부다.  참고인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검찰이 참고인을 검찰청으로 불러서 조사할 수 없다. 예외적으로 대배심에서 참고인에게 소환장을 발부한 경우에만 참고인을 강제 소환할 수 있다. 그것도 검찰청이 아니라 배심원들 앞으로 소환하는 것이다.

그럼 미국은 어떤 방식으로 수사하나? 예전에 ‘형사 콜롬보’라는 TV드라마가 있었다. 콜롬보 형사를 주인공으로 한 범죄 수사 드라마다. 여기서 콜롬보는 살인 사건을 수사할 때 현장 목격자를 알아내 그의 집을 찾아간다. 노크를 해서 주인이 문을 열어주면 “혹시 언제 어디서 이런 사건이 발생했는데 그때 현장에 있었나요” “범행 장면을 목격했나요” “범죄 용의자 인상 착의를 기억하나요”하는 식으로 묻고 답변을 수첩에 적는다. 강제 조사권이 없기 때문에 목격자가 문을 열어주지 않거나 대답을 거부하면 더 이상 묻지 못하고 돌아간다. 이런 식으로 재판에서 증인이 될 수 있는 사람들을 일일이 찾아다니며 묻는다. 검사는 재판이 열리면 그 사람들을 증인으로 부른다.

미국은 피의자 소환 조사 아예 없어···법정 증언이 최고

이에 맞서 범죄 혐의로 기소된 피고인은 변호인을 선임해서 자기의 결백을 주장할 수 있는 증거를 수집해 법정에 제출하고 필요한 증인을 법정으로 부른다. 검사는 자기가 확보한 증인과 증거를 통해 피고인의 범죄를 입증하려 하고, 피고인의 변호인은 피고인에게 유리한 증인과 증거를 대며 반박한다. 검사와 피고인이 대등한 입장에서 서로 공격도 하고 방어도 한다. 재판장은 이 과정에 일절 관여하지 않고 법 절차대로 진행되는지만 감독한다. 마치 운동 경기에서 심판이 심판 보는 것과 똑같다.

이처럼 피의자 조사라는 게 없으니 피의자를 언제 소환하느니, 공개 소환이니  비공개 소환이니 따질 일이 없다. 심야 조사 금지니, 하루 몇 시간 이상 조사 금지니, 반복적 소환 금지니 할 일도 없다. 피의자 조사와 관련해 우리나라에서 생기는 여러가지 문제들이 생길 여지가 없는 것이다. 이는 참고인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이뿐만이 아니다. 미국은 불구속 수사와 재판 원칙이 철저하다. 범죄 혐의자는 영장 없이도 체포될 수 있다. 대신 체포 뒤 48시간 내 판사 심사를 거쳐 보석으로 석방된다. 판사는 경찰이 작성해 제출한 체포서를 보고 구속 여부를 심사한다. 여기서 석방되지 못한 피의자는 다시 10일 이내에 판사 심사를 거친다. 이 단계에선 피의자가 자기에게 유리한 증인이나 증거를 대고 경찰측 증인에게 반대 신문도 할 수 있다. 이런 절차를 거쳐 또 대부분 보석으로 석방된다. 구속하는 경우는 피의자가 도주할 우려가 있거나 피해자 또는 사회에 해를 끼칠 우려가 있을 때뿐이다.

불구속 재판 원칙이 철저하기 때문에 검찰이 구속 영장 청구나 발부에 연연할 이유가 없다. 구속 영장 청구를 하느니 마느니, 언제 하느니, 법원이 발부하느니 마느니 하는 게 관심사가 될 수가 없다. 검찰이 영장 청구를 남발한다느니, 법원이 정치적 이유로 기각한다느니 하는 시비가 생길 일도 없다. 불구속 재판 원칙은 피고인이 자기에게 유리한 증인이나 증거를 확보할 수 있도록 해주기 위해서다. 검사와 대등한 입장에서 싸울 수 있도록 해주기 위한 것이다. 이른바 ‘방어권 보장’이라는 것이다.

미국 검찰이 피의자 조사를 하지 않는다고 해서 수사를 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검찰은 압수 수색, 계좌 추적, 통신 감청, 유전자와 지문 감식, 전문가 증언, 대배심을 통한 참고인 진술 확보 등 법에 보장된 여러가지 방법을 통해 증거를 수집한다. 이 증거는 나중에 법정에 제출된다. 수사 초점이  피의자 신문이 아니라  증거 수집이다. 

한국은 피고인 법정 진술보다 검찰 조서 더 중시

우리는 검찰이 피의자를 조사하고 신문 조서를 작성하는 제도가 있어서 재판에서도 검찰이 차지하는 역할이 매우 크다. 검사가 작성한 피의자 신문 조서가 유·무죄를 가리는 데 중요한 자료가 된다. 판사들이 법정에서 피고인과 증인들이 하는 진술보다 검찰이 작성한 피의자 신문 조서에 너무 의존해 재판한다고 해서 ‘조서 재판’이라는 말이 나온 지 오래다. 2006년 9월 당시 이용훈 대법원장이 판사들에게 “검찰 수사 기록을 던져 버려라”고 했을 정도다. 조서 중심 재판은 줄어들고 있지만 아직도 재판에서 검찰 조서가 차지하는 비중은 큰 게 현실이다. 검찰이 작성한 피의자 신문 조서가 그렇게 큰 영향을 미치니 검찰이 피의자 소환 조사에 모든 것을 걸다시피 하지  않을 수 없다. 이런 문제는 앞으로 공수처가 생겨도 똑같다. 공수처가 작성한 피의자 신문 조서가 여전히 재판의 중심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럼 우리도 미국식으로 사법 제도를 바꾸면 되지 않는가? 맞다. 그렇게 고치면 검찰이든 경찰이든 피의자를 조사할 일이 없고 ‘인권 수사’니 ‘절제된 검찰권 행사’니 하는 말이 나올 일도 없을 것이다. 그러나 사법제도를 하루아침에 미국식으로 바꾸기는 어렵다. 여러가지 이유가 있지만 중요한 이유 중 하나는 미국과 우리의 범죄에 대한 근본적 인식 차이다. 미국은 영국의 영향을 받아 범죄를 가해자와 피해자 간의 사적 문제로 보는 전통이 강했다. 마치 채권 채무를 두고 원고와 피고가 민사소송을 벌이듯, 범죄도 가해자와 피해자가 알아서 해결할 문제라는 식이었다. 물론 지금은 이런 인식이 크게 바뀌어서 검찰과 경찰이 수사하고 검찰이 기소하는 제도가 생겼다. 하지만 근본적으론 옛날의 전통이 남아 있어 검찰이나 경찰이 피의자를 직접 조사하는 제도가 없는 것이다.

반면 우리는 범죄를 개인 간 문제가 아니라 공동체 질서 유지의 문제로 본다. 공동체 질서 유지의 책무는 국가에 있다. 그래서 국가 기관인 검찰이나 경찰이 개입해 범죄자를 직접 조사하는 절차를 당연하게 받아들인다. 대부분의 국민들은 범죄가 발생하면 즉각 수사 기관이 나서서 범인을 잡아 처벌하라고 요구한다. 수사 기관이 미적대면 호된 비판과 질책을 쏟아낸다.

범죄에 대한 인식 차이 외에도 구속제도, 보석제도, 배심제도, 재판제도, 법률 문화와 관행 등 여러 면에서 미국과 우리는 차이가 많다. 이런 제도와 관행을 모두 미국식으로 고치는 것은 쉽지 않다. 다만 재판에서 검찰의 피의자 신문 조서가 차지하는 영향력을 줄이는 방법은 생각할 수 있다. 우리 형사소송법에 검찰이 작성한 피의자 신문 조서는 경찰이 작성한 조서에 비해 재판에서의 증거 효력에 큰 차이가 있다. 경찰 조서는 피의자가 설사 100% 자의로 자백한 내용이라고 하더라도 재판에서 “내가 그렇게 자백한 것은 맞지만 사실은 범죄를 저지르지 않았다”고 주장하면 유죄의 증거로 쓸 수 없다. 그러나 검찰 조서는 피의자가 고문을 받아서 진술한 경우 등이 아닌 이상 한번 자백했으면 법정에서 부인해도 유죄의 증거로 쓸 수 있다. 실제로 법정에서 혐의를 부인했는데도 검찰 조사 때 인정했다는 이유로  유죄 판결을 내리는 경우가 많다. 

검찰 자체 다짐만으론 관행 개선 어려워   

김영삼 정부 시절 구성된 사법개혁추진위원회에서 검찰 조서의 증거 효력을 지금보다 훨씬 제한하는 법 개정 방안이 논의됐다. 그러나 법을 그렇게 고치면 검찰 수사의 의미가 없어지고 범죄의 진실을 밝히는 데도 도움이 되지 않으며, 법정 증언에만 의존해 재판이 장기화할 우려가 있다는 등의 반대에 부딪쳐 성사되지 않았다.  이 문제는 지금도 사법 제도 개혁의 큰 과제로 남아 있다. 현재 국회에 신속처리법안(패스트 트랙)으로 제출돼 있는 형사소송법 개정안에 검찰이 작성한 피의자 신문 조서의 증거 효력을 경찰이 작성한 조서처럼 제한하는 내용이 들어 있다. 독일은 우리처럼 수사 기관이 피의자 신문 조서를 작성하지만, 예외적인 경우를 제외하고는 법정에서 증거로 쓸 수 없게 돼 있다. 피고인이나 증인이 법정에서 직접 진술한 내용만 증거로 인정한다.

검찰 조서가 재판의 중심이 되는 사법 제도의 개선 없이는 검찰권 행사 방식과 수사 관행의 개선에는 근본적 한계가 있다. 검찰이 스스로  ‘인권’ 과 ‘절제’를 지키는 데 의지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는 검찰에 큰 칼을 주고는 ‘사람이 다치지 않도록 조심해서 쓰라’고 하는 것과 같다. 지금처럼 검찰 개혁의 목소리가 크고 여론의 관심이 집중돼 있을 때는 잠시 조심해서 쓸 수 있을 것이다. 심야 조사도 하지 않고 공개 소환이나 반복적 소환도 자제하는 게 그런 것이다. 

그러나 이 상황이 지나면 다시 본래 모습으로 돌아갈 게 뻔하다. 지난 수십년간 ‘인권 보호 수사’ 지침이 수도 없이 만들어지고 시행됐지만  그때뿐이었다. ‘반짝 효과’에 그치고 말았다. 사법 제도라는 뿌리는 그대로 둔 채 겉으로 드러난 가지만 고치려 했기 때문이다. 정말로 인권을 존중하고 절제된 검찰권 행사를 바란다면 검찰의 선의에만 기대서는 안 된다. 검찰이 작성한 피의자 신문 조서가 재판의 중심이 되는 사법제도를 고쳐 나가야 한다. ‘조서 재판’ 이라는 말이 사라지도록 해야 한다.
 

김낭기 고문[남궁진웅 기자, timeid@aju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