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절과 이혼...시대 따라 판결도 달라

과거, 시부모 소홀히 한다고 이혼 당해

최근, 부부 간 일방적 희생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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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명절에 시댁 다녀오고 이혼하기로 결심했어요. 시댁, 남편 모두 말로 사람 상처 주는 걸 너무 많이 해요. 농담이란 식으로 사람 상처주고 저희 친정, 저 모두 모욕하고...”

“명절 이혼 때문에 문의 드립니다. 지난 설날에 아내와 심하게 다투고, 서로 언쟁이 심해지면서 결국 이혼까지 하게 된 상황입니다. 더 이상 함께 살고 싶지 않습니다.”

변호사에게 이혼 상담 요청한 글을 옮긴 것이다.

설 연휴는 가족·친지와의 만남으로 즐거운 시간이기도 하지만 차례 준비 등으로 고통의 시간이기도 하다. ‘명절 후유증’도 상당하다. 심한 경우 싸움이나 이혼으로 이어진다.

통계로도 확인할 수 있다. 매년 명절 연휴 발생하는 가족 간 폭력 범죄는 2014년 7700여건 수준에서 지난해 1만 5000여건으로 2배 가까이 늘었다. 경찰에 따르면 명절 연휴 기간 가정폭력 신고 접수 건수도 하루 평균 1000건 정도로 평상시의 680여건에 비해 40% 이상 많다. 통계청의 ‘최근 5년간 이혼 통계’ 자료에 따르면 설 직후인 2~3월의 이혼 건수가 직전 달보다 많은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시대 흐름에 따라 이혼사유에 대한 법원의 판단도 변해 왔다.

1994년 7월 A씨는 아내 B씨가 맞벌이를 이유로 시부모를 소홀히 대한다며 이혼 청구 소송을 제기했다.

당시 재판부는 “맏며느리인 B씨가 결혼 이후 시부모의 생신이나 명절에 시댁을 제대로 찾지 않는 등 전통적인 윤리의식이 부족했다”면서 “전통적인 며느리의 역할을 소홀히 해 가정불화가 야기된 점이 인정된다”고 판단해 A씨의 손을 들어줬다.

1990년대만 해도 가부장적 관념이 지배하고 있음을 엿볼 수 있다. 하지만 2000년대에 들어서면서 부부 사이에 ‘일방적인 희생’은 없다는 점이 강조되기 시작했다.

2003년 5월 내려진 한 판결문을 살펴보면 “시댁 식구들에게 극도로 인색하고 남편에게 포악한 처신을 일삼는다”며 “C씨가 아내 D씨를 상대로 낸 이혼 청구 소송에서 원고 청구를 기각했다.

재판부는 “C씨는 D씨에게 시댁에 대한 일방적 양보와 희생을 강요했으며 불만을 폭력으로 해소하는 등 배우자로서 신의를 저버린 만큼 불화의 주된 책임은 원고에게 있다”고 기각 사유를 밝혔다.

시간이 더 지나면서 법원의 판단은 부부관계의 평등을 보다 강조하는 방향으로 이뤄지고 있다.

이혼전문변호사인 김동성 대표(41·WF법률사무소)는 “명절에 임박해 일종의 명절특수처럼 고부갈등을 원인으로 한 이혼 소송을 문의하는 경우가 늘어나고 있다”며 “소송을 진행하다보면, 과거 며느리에게 일방적인 희생을 강요하는 시댁의 모습을 보고 지내온 부모님 세대가 본인의 자녀와 며느리에게 과도한 희생을 강요하는 모습이 심심찮게 보인다”고 말했다.

김동성 변호사는 “부부관계는 어느 일방이 타방을 위해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신뢰관계 속에서 협조하며 살아가는 관계”라며 “혼인을 통해 새로운 가족공동체를 형성했다면, 부부는 부모로부터 독립하여 본인만의 가정을 꾸리고, 부모님도 자녀와 며느리에게 과도한 희생을 강요하지 않는 게 원만한 혼인생활의 필수조건이다”고 설명했다.
 

설 명절 준비에 북적이는 재래시장 (공주=연합뉴스) 김주형 기자 = 설 명절을 4일 앞둔 21일 오후 충남 공주시 산성시장이 제수용품을 준비하는 시민들로 크게 북적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