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례로 보는 세상] 주위토지통행권에 관하여

  • 대구지방법원 상주지원 2017가단604 판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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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광진 변호사
입력 : 2020-03-14 09:00
수정 : 2022-06-04 15: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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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들어가며

요즘 주위토지통행권에 관한 소송이 꽤 많은 듯 하다. 주위토지통행권이란, 가령 A토지가 도로에 닿아있지 않는 맹지인 경우 A토지 주위의 B소유의 토지를 반드시 통행로로 이용하여서만 도로로 나갈 수 있거나, 또는 B소유의 토지를 통행로로 이용하지 못하는 경우 도로로 나가기에 과다한 비용이 드는 경우에는, A토지 소유자는 필요한 폭의 도로만큼 B소유의 토지 일부에 통행권이 있음을 주장할 수 있는 권리를 말한다.

우리 민법 제219조는 “① 어느 토지와 공로사이에 그 토지의 용도에 필요한 통로가 없는 경우에 그 토지소유자는 주위의 토지를 통행 또는 통로로 하지 아니하면 공로에 출입할 수 없거나 과다한 비용을 요하는 때에는 그 주위의 토지를 통행할 수 있고 필요한 경우에는 통로를 개설할 수 있다. 그러나 이로 인한 손해가 가장 적은 장소와 방법을 선택하여야 한다. ② 전항의 통행권자는 통행지소유자의 손해를 보상하여야 한다.”라고 하여 주위토지통행에 관한 근거 법률을 규정하여 놓았다.

이러한 주위토지통행권은, “공로와의 사이에 그 용도에 필요한 통로가 없는 토지의 이용이라는 ‘공익목적’을 위하여 피통행지 소유자의 손해를 무릅쓰고 특별히 인정되는 권리”라는 취지에서 만들어진 제도라 할 수 있다.

따라서 주위토지 소유권자의 그 토지에 대한 소유권 내지 독점적 사용권을 제한하는 권리라는 점에서 법에서 정한 엄정한 요건을 구비하는 경우에만 그 권리를 인정하여야 필요성이 있다.

소송 실무에서 주요히 적용되는 요건으로 다음의 2가지를 주목할 필요가 있다.

1) 유일 통행로일 것 : 주위토지통행권은 토지와 공로 사이에 그 토지의 용도에 필요한 통로가 없는 경우에 한하여 인정되는 것이므로, 이미 그 소유 토지의 용도에 필요한 통로가 있는 경우에는 그 통로를 사용하는 것보다 더 편리하다는 이유만으로 다른 장소로 통행할 권리를 인정할 수 없다(대법원 1995. 6. 13. 선고 95다1088 판결, 대법원 2006. 6. 2. 선고 2005다70144 판결 등 참조).

2) 침해의 최소화 : 주위토지통행로의 폭이나 위치 등을 정함에 있어서는 피통행지의 소유자에게 가장 손해가 적게 되는 방법이 고려되어야 할 것이고, 어느 정도를 필요한 범위로 볼 것인가는 구체적인 사안에서 사회통념에 따라 쌍방 토지의 지형적·위치적 형상 및 이용관계, 부근의 지리상황, 상린지 이용자의 이해득실 기타 제반 사정을 기초로 판단하여야 한다(대법원 2006. 6. 2. 선고 2005다70144 판결, 대법원 2002. 5. 31. 선고 2002다9202 판결 등 참조).

아래는 필자가 이웃으로부터 주위토지통행권 주장을 받게 된 피고를 대리하여 진행한 사건이다. 원고의 주장이 위 2가지 요건에 해당되지 않음을 주장하여 승소판결을 받은 주위토지통행권의 리딩케이스 격의 사례이므로 소개하고자 한다.

2. 사실 관계

가. 원고는 00시 00면 00리 815-2 전 2185㎡(이하 ‘815-2 토지’라 한다, 위 토지를 포함하여 아래에서 언급하는 모든 토지는 같은 리에 소재하고 있으므로 토지의 표시는 위와 같은 방식으로 한다)의 소유자이다.

나. 피고는 위 815-2 토지에 위쪽으로 인접한 816 토지 및 816-1 토지의 소유자이고, 816 토지 상에 신축되어 있는 주택에 거주하고 있다.

다. 위 815-2 토지의 아래쪽은 812 토지, 811 토지, 809-1 토지, 809-2 토지(이하 ‘812 등 토지‘라 한다)와 직접 또는 순차로 접하고 있고, 위 각 토지는 모두 원고의 남편 최천식(가명)의 소유이다.

라. 원고는 815-2 토지 및 812 등 토지에서 과수원을 운영하고 있다.

마. 815-2 토지에서 공로로 출입하기 위해서는 위쪽에 있는 816 토지 및 816-1 토지를 통과하거나, 아래쪽에 있는 812 등 토지를 통과해야 한다.

바. 원고의 주장 : (피고 소유의)816 토지 및 816-1 토지에 있는 청구취지 기재 000 부분(이하 ‘이 사건 통행로’라 한다)은 원고가 815-2 토지에서 공로에 출입하기 위한 유일한 통행로이다. 피고가 주장하는 ‘남쪽 통행로’(원고 남편 소유의 812 등 토지의 통행로)는 공로까지의 거리가 이 사건 통행로에 비해 훨씬 멀고 차량이 드나들 수 없다. 따라서 ‘이 사건 통행로’에 대하여 원고의 통행권이 인정되어야 하고, 피고는 원고의 통행에 방해가 되는 장해물 설치 등 일체의 행위를 하여서는 아니 되며, 이를 위반하는 경우 원고에게 1일당 10만 원을 지급하여야 한다.

사. 피고의 주장 : 원고는 815-2 토지에서 남쪽에 있는 (원고 남편 소유의)812 등 토지를 통한 ‘남쪽 통행로’를 통해 공로로 출입할 수 있고, 위 통행로는 차량도 충분히 통행할 수 있으므로, ‘이 사건 통행로’는 원고가 공로에 출입하기 위한 유일한 통행로가 아니다.

3. 판결 요지

앞서 본 증거들에 변론 전체의 취지를 종합하여 보면, 원고가 ‘이 사건 통행로’를 통과하지 않으면 공로에 출입할 수 없다고 볼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이 사건 통행로’가 그 토지소유자인 피고에게 가장 손해가 적은 장소라고 볼 수도 없다. 따라서 원고에게 ‘이 사건 통행로’에 관한 주위토지통행권을 인정할 수 없다.

① 이 사건에서 문제된 맹지는 원고 소유의 815-2 토지이지만, 그에 인접한 원고의 남편 김판식 소유의 812 등 토지 역시 원고가 아무런 제약 없이 815-2 토지와 같이 과수원으로 활용하고 있다.
② 815-2 토지만을 기준으로 보면 ‘이 사건 통행로’를 통과하는 것이 공로와 최단거리이기는 하나, 815-2 토지와 812 등 토지를 묶어서 볼 경우 812 등 토지의 끝부분이 바로 공로로 연결되므로 ‘이 사건 통행로’를 통과하는 것이 공로와 최단거리라고 볼 수 없다.
③ 815-2 토지에서 공로로 출입하기 위한 통행로가 812 등 토지에 개설되어 있고(즉 ‘남쪽통행로’), 그 폭이 다소 협소하기는 하나 사람은 물론 차량의 통행에도 별다른 문제가 없을 것으로 보인다(실제 차량의 통행 흔적이 역력하다). 만약 차량의 통행에 불편함이 있다면 원고는 통행로 주변의 일부 과수를 제거하여 통행로를 넓게 확보하는 등 차량의 통행에 필요한 제반 조치를 취할 수 있으므로, 결국 차량의 통행에 문제가 없을 것으로 보인다.
④ 원고의 주택은 공로로 이어지는 812 등 토지의 끝부분의 인근에 위치하므로, 원고가 자신의 주택에서 815-2 토지로 출입하기 위해서는 ‘이 사건 통행로‘를 통과하는 것보다 812 등 토지(즉 ’남쪽통행로‘)를 통과하는 것이 더 용이하다.
⑤ ’이 사건 통행로‘는 피고의 주택 대지와 일부 겹치므로, 원고가 이를 통행로로 이용하는 경우 피고에게 큰 손해가 예상된다. 반면 원고가 공로에 출입하기 위해 812 등 토지(즉 ’남쪽통행로‘)를 이용하는 경우 ’이 사건 통행로‘를 이용하는 경우와 비교하여 원고에게 큰 손해가 발생한다고 볼 아무런 사정이 보이지 아니한다.

결국 원고의 ’이 사건 통행로‘에 관한 통행권이 인정될 수 없고, 그렇다면 이를 전제로 한 원고의 청구는 이유 없으므로 모두 기각하기로 한다.

4. 판결의 의의

재판부는 현장검증을 통하여 원고가 주장한 (피고 소유의)’이 사건 통행로‘와 피고가 주장한 (원고남편 소유의)’남쪽 통행로‘를 모두 직접 도보로 이동해 보았다. 그 결과, ’남쪽 통행로‘로도 원고가 차량을 이용하여 통행하기에 충분하다고 보았으며 또 남쪽 통행로로 통행하는 것이 더욱 편리하다고 보았다. 그리고 ’이 사건 통행로‘를 이용하는 경우에는 피고의 주택과 겹치게 되어 피고에게 큰 손해가 예상된다고 보았으며, 반면 ’남쪽 통행로‘를 이용하는 경우 원고에게 과다한 비용이나 큰 손해가 발생될 사정이 없다고 보았다.

즉, 원고가 주장한 ’이 사건 통행로‘는 맹지인 815-2 토지에서 공로로 나가기 위한 1) 유일 통행로가 아니었으며, 이미 815-2 토지의 용도에 필요한 ’남쪽 통로‘가 있는 경우였다. 또한, ’이 사건 통행로‘를 이용하게 되면 2) 통행지의 소유자인 피고에게 손해가 막심하다는 것이다.

따라서 어느 모로 보나, 원고에게 ‘이 사건 통행로’에 관한 주위토지통행권을 인정할 수 없었고, 이는 사회통념상 쌍방 토지의 지형적·위치적 형상 및 이용관계, 부근의 지리상황, 상린지 이용자의 이해득실 기타 제반 사정을 고려하여 맹지 소유자인 원고에게 가장 적절한 통행로를 가려준 합리적인 판결로 보인다.

5. 나가며

주위토지통행권은 ‘인접한 토지의 상호이용의 조절에 관한 권리’이다(대법원 2008. 5. 8. 선고 2007다22767 판결 참조). 또, 공로와의 사이에 그 용도에 필요한 통행로가 ‘없는’ 토지(=맹지)의 이용을 위한다는 목적에서 출발하여 주위토지 소유자의 손해를 무릅쓰고서라도 그 토지에 대한 독점적 사용권을 제한하는 공익적 권리이다. 따라서 남을 위하여 사인의 재산권을 일부 제한한다는 점에서 엄정한 요건을 만족하여야 하며 또한 여러 구체적 사정을 종합하여 신중히 적절한 통행로를 판단해야 할 것이다.
 

[사진=남광진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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