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낭기의 관점]세계 격찬 한국 '코로나 방역' 주역은 정부 아닌 민간 사회

  • 바이오 업체들, 정부 손 놓고 있을 때 재빨리 진단 시약 개발 나서
  • 인천 의사는 이동식 검사,문경 약사는 마스크 약국 판매 아이디어
  • 이런 밑바탕에는 자율·창의·혁신·경쟁 존중하는 자유민주 체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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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0-03-18 16:34
수정 : 2020-03-23 1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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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코로나19 대처 방법에 세계가 찬사를 보내고 있다. 방역 모범 사례라고까지 평가한다. 한국이 이런 찬사와 평가를 받게 된 데 기여한 곳은 어디일까? 정부인가 민간 사회인가? 정부가 나름대로 기여를 한 것은 물론이다. 비록 중국인 입국 제한이나 마스크 대책 같은 몇몇 대목에서 정책 판단을 잘못하기는 했지만 말이다. 그러나 더 중요하고 핵심적인 기여를 한 곳은 민간 사회다. 우리 민간 사회는 정부가 코로나19 발생을 강 건너 불구경하듯 하고 있을 때 미래에 닥칠 재앙을 예견하고 준비에 나섰다. 정부가 문제 해결을 못하고 우왕좌왕하고 있을 때는 참신한 아이디어로 정부를 이끌어 나갔다. 민간 부문의 눈부신 활약은 자율과 창의를 존중하고 꽃 피게 하는 우리 사회 체제의 우수성을 보여주는 증거라고 해도 무방하다.

한국의 코로나19 사태 대처 방법 중 세계가 가장 경탄하는 것은 놀라울 정도로 빠른 진단 검사 속도다. 우리의 진단 속도는 세계 최고 수준이다. 미국 라자 크리슈나무르티 하원 의원은 3월 11일 열린 하원 코로나 대응 청문회에서 “지난 10일까지 한국이 인구 100만명당 4000명을 검사할 때 미국은 100만명당 15명을 검사했다”며 “한국은 하루 1만5000명을 검사하는데 우리는 언제쯤 거기에 도달할 수 있나”라고 문제를 제기했다. 미국 CNN 방송은 3월 10일 “미국에선 3월 9일까지 4400명 정도가 진단 검사를 받았는데 한국에선 하루 최대 1만5000명이  검사를 받고 있고 지금까지 그 인원이 20만명 가까이 된다”고 소개했다. 독일의 일간지 프랑크푸르터 룬트샤우는 3월13일  “한국처럼 조기 검사 시스템을 갖춘 나라는 어디에도 없다”고 했다.

바이오 업체들, "곧 한국에 퍼진다" 기민하게 대응

우리가 이렇게 빨리 진단할 수 있게 된 것은 발 빠르게  코로나19 진단 키트 개발에 뛰어든 민간 업체들 덕분이다. 국내 바이오 업체들은 이미 지난 1월 5~17일 사이에 진단 키트 개발에 나섰다. 그 당시 중국에서는 우한을 중심으로 코로나19 감염자가 빠른 속도로 증가하고 있었지만 국내엔 아직 감염자가 나타나기 전이었다. 정부는 우한 소식을 듣고도 위기감을 느끼지 않고 있었다. 당연히 별다른 대책도 세우지 않고 있었다.

그러나 업체들은 달랐다. 그중 하나가 씨젠이다. 씨젠은 코로나19가 곧 한국에도 퍼질 것이라고 예상하고 기민하게 움직였다. 1월 16일 사내 회의에서 코로나19 진단 시약 개발에 나서기로 하고  21일 본격 착수했다. 그리고 2주일 만에 개발에 성공했다. 진단 정확도가 높고 진단 시간도 4시간으로 빠른 시약이었다. 씨젠은 2월 12일 식약처에서 긴급 사용 승인을 받았다. 국내 확진자가 28명밖에 되지 않을 때였다.

씨젠은 1월 12일 미국 국립생물공학정보센터가 공개한 코로나19 유전자 염기서열, 1월 15일 세계보건기구(WHO)가 독일 베를린 샤리테대학병원에서 개발한 코로나19 검사 시약 관련 정보를 입수했다. 여기에다 지난 20년간 각종 유전자 진단 시약을 개발해온 데이터와 노하우, 슈퍼컴퓨터에 가까운 고성능 컴퓨터와 인공지능 알고리즘을 활용했다. 그 결과 진단 시약을 2주 만에 개발할 수 있었다.

진단 시약 개발은 기업으로선 모험이다. 불확실한 미래 상황을 예측하고 섣불리 개발에 나섰다가 정부로부터 사용 승인을 받지 못하는 낭패를 당할 수도 있다. 승인을 받더라도 코로나19 사태가 다 끝난 뒤에 받으면 시판할 수 없어 재고만 떠안고 적자에 허덕일 수도 있다. 씨젠은 이런 위험을 감수하고 개발에 뛰어드는 모험을 한 것이다.

씨젠만이 아니다. 코젠바이오텍은 세계보건기구의 바이러스 정보 공유 저장소인 '지사이드(GISAID)'에 감염자 정보가 뜨자마자 지난 1월 10일 진단 키트 개발에 나섰다. 우리나라에서 첫 확진자가 나온 1월 20일의 열흘 전이다. 그리고 2월 4일 국내 업체 중 가장 먼저 진단 시약 긴급 사용 승인을 받았다. 이 업체의 시약은 24시간 걸리던 기존 진단 시간을 6시간으로 단축했다. 이어 2월 27일에는 SD바이오센서와 솔젠트 등 2개 업체가 승인을 받았다.  이처럼 재빠르게 움직인 업체들 덕분에 지금 우리는 세계 최고 수준의 진단 속도를 자랑하게 된 것이다.

세계가 경탄하는 또 한 가지는 자동차를 타고 코로나19 진단 검사를 하는 ‘드라이브 스루’(이동식 검사)다. 드라이브 스루는 차에 탄 채 유리창문을 내리고 검체를 채취하는 방식이다. 인적 사항과 증상 여부 등을 확인한 뒤 검체를 채취하고 나중에 검사 결과를 알려준다. 차창만 내려서 검체를 채취하기 때문에 10분이면 모든 절차가 끝난다. 기존 선별 진료소는 소독 등 방역 처리를 거치느라 1명 검사에 최대 1시간이 걸린다. 드라이브 스루는 검사 속도만 빠른 게 아니다. 환자가 차 안에서 대기하면 되니 추위에 떨지 않아도 되고, 의료진은 방호복을 매번 갈아입는 불편을 겪지 않아도 된다. 일반 진료소처럼 별도의 소독, 환기 과정을 거쳐야 할 필요도 없다. 의료진이 환자와 직접 접촉하는 시간이 짧아 안전 면에서 유리하다.

인천 의사의 비상한 발상, 문경 약사의 뛰어난 문제의식

드라이브 스루 아이디어는 정부가 낸 게 아니다. 인천의료원 김진용 감염내과 과장의 아이디어다. 김 과장은 언론 인터뷰에서 “신종 감염병에서는 두 가지가 문제인데 하나는 환자를 신속히 검사하는 것이고 또 하나는 검사를 하는 의료진의 안전을 지키는 것”이라며 “ 이 두 가지를 같이 고민하다 드라이브 스루 아이디어를 떠올리게 됐다”고 말했다.

김 과장은 “감염병도 재난 중의 하나이고 재난 대응에는 사회가 같이 동원돼야 한다. 의료진만 있어서는 안 되고 소방, 경찰 인력도 필요하다. 장소도 병원이라는 데 한정되면 안 되고 때로는 경기장일 수도 있다. 이런 차원에서 아이디어를 얻게 됐다”고 했다. 재난 상황에서는 고정 관념을 깨야 하고 그 하나로 ‘질병 진단 장소=병원’이라는 고정 관념을 깨고 보니 드라이브 스루 아이디어를 얻게 됐다는 설명이다. 재난 상황에서 이런 비상한 발상을 가장 먼저 해야 할 곳은 정부다. 그런데 정부가 미처 못한 발상을 한 의사가 한 것이다.

드라이브 스루는 현재 전국 70여 곳에서 시행하고 있다. 세계의 호평도 잇따르고 있다. 미국 캐럴린 멀로니 하원 관리개혁위원장은 코로나 대응 청문회에서 “나는 정말 한국에 가서 드라이브 스루 검사소에서 검사받고 싶다”며 “우리는 왜 이런 게 없는가”라고 했다.미국 CNN 방송은 경기도 고양시내에서 드라이브 스루 방식으로 진단 검사를 하는 장면을 중계 방송하기도 했다. 결국 미국 일부 주들이 드라이브 스루를 도입하기 시작했다. 유럽 국가들도 도입을 서두르고 있다.

‘마스크 사재기’ 방지 대책으로 시행되는 약국을 통한 제한 판매 아이디어는 어떤가. 이 역시 정부가 낸 게 아니다. 경북 문경의 어느 약사가 지난 3월 2일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올린 아이디어다. 이 약사는 마스크 구입을 둘러싼 혼란 원인으로 “일부 개인적 사재기, 배분받지 못할 것이란 불안감, 불균등에 대한 불만”을 들었다. “일부에선 동사무소에서 배부하자고 하지만 동사무소 인력이 매일 소모되는 소비재를 분배하기란 쉽지 않으며, 또 알음알음 아는 사람 위주로 먼저 배분되거나 할 수 있다”고 예상되는 문제점을 지적했다.

그러면서 약국에서 쓰고 있는 의약품 안전사용 서비스(DUR) 시스템을 이용할 것을 제안했다. DUR 시스템은 한 약국에서 약을 조제 받으면 다른 약국에서 이를 확인해 중복 투약을 방지하기 위한 목적으로 운영되는 것이다. 이 약사는 “DUR 시스템을 이용해 주민등록번호 별로 마스크 구매 개수를 등록, 다른 약국에서 더 이상 사재기할 수 없도록 한다면 못 살 거라 불안해 할 필요도 없고, 국가는 어디서 얼마나 판매됐는지, 또 공급된 물량이 사적으로 빼돌려지진 않았는지 충분히 통제 가능할 것”이라고 했다.

김상조 청와대 정책실장은 3월 4일 국회 ‘코로나19 대응 당정청 회의’에서 “국민 한분 한분이 얼마큼의 마스크를 샀는지 체크할 수 있는 DUR 시스템이 갖춰진 약국을 통한 공적 판매를 크게 늘릴 계획”이라고 말했다. 정부는 곧 이 시스템을 활용했다. 이 덕분에 마스크 사재기는 불가능해졌다.

문경 약사는 마스크 사재기가 벌어지는 원인으로 ‘나만 사지 못할 것이란 불안감, 아는 사람에게만 구입 기회가 주어질지 모른다는 불균등 우려’를 들고 이를 해소해 줘야 사재기를 막을 수 있다는 문제의식에서 출발했다. 그리고 그 대안을 DUR 시스템에서 찾았다. DUR 시스템은 정부 보건당국이라면 당연히 알고 있을 내용이다. 그런데 보건당국 누구도 이런 아이디어를 생각하지 못했다. 진짜 원인이 무엇인지에 대한  문제의식에서부터 뒤졌으니 대안 마련에서도 뒤진 것은 당연하다.

이렇듯 정부는 질병으로부터 국민 안전을 지키는 능력에서 민간 사회보다  못했다. 위기 징후를 내다보고 선제적 대책을 준비하는 데선 기업보다 못했고, 국민 불편 해소 방안을 마련하는 데서는 의사와 약사 같은 개인보다 못했다. 정부는 여러가지 정보를 수집할 수 있고, 많은 전문가를 활용할 수 있고, 강제력을 동원할 수 있고, 관료 제도라는 막강한 조직력을 갖고 있다. 그런 정부도 못한 일을 몇몇 기업과 개인이 해냈다는 것은 결코 가벼이 볼 일이 아니다.

[사진= 장윤정 기자]


나라 발전에 민간 사회 역할 얼마나 큰지 새삼 실감 

우리 민간 사회는 어떻게 해서 정부보다 뛰어난 능력을 발휘하게 됐을까. 하나는 혁신적 기업가 정신이다. 국내 바이오 업체들이 진단 시약 개발에 나선 데는 국민을 감염병 위험에서 지키려는 공익적 의도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게 전부가 아닌 것은 물론이고 본질도 아닐 것이다. 더 중요한 것은 기업으로서의 혁신과 이윤 추구였을 것이다. 혁신을 하고 이윤을 추구하려면 남보다 앞서 미래를 내다보고, 모험이 필요하면 과감히 결단할 수 있어야 한다. 그래야 시장 경쟁에서 우위를 차지하고 이윤을 창출할 수 있다. 예측, 모험, 경쟁을 마다하지 않는 이런 정신이 바로 혁신적 기업가 정신이다. 혁신적 기업가 정신은 자본주의의 핵심적 가치이기도 하다.

또 하나는 개인의 자율과 창의를 존중하는 우리 사회 체제다. 인천의료원 과장이나 문경 약사가 참신한 아이디어를 떠올릴 수 있었던 것은 우리 사회가 누구나 자율과 창의를 발휘하고 그것을 자유롭게 표현할 수 있는 자유민주사회이기 때문이다. 자유민주사회는 각자의 개체성을 존중한다. 누구든 다른 사람이나 공익에 피해를 주지 않는 한 자신의 개성, 가치, 성격, 기질에 따라 살아갈 수 있다. 개체성을 마음껏 발휘할 수 있어야 자율과 창의가 넘쳐나는 사회가 된다. 개체성의 존중은 의사가 우한 폐렴 발생 가능성을 경고했다고 쥐도 새도 모르게 어디론가 끌려가는 중국 같은 사회에선 생각할 수 없는 일이다.

이번 일을 보면서 한 나라가 제대로 굴러가는 데 민간 사회가 얼마나 큰 역할을 할 수 있는지 새삼 실감한다. 기업이든 개인이든 자율과 창의, 혁신과 경쟁의 가치를 마음껏 발휘하고 살현해 가는 게 얼마나 중요한지 실감한다. 현 정부와 집권당 사람들은 정부가 코로나19 대응을 잘했다고 자화자찬하기 바쁘다. 그러나 정말로 칭찬받아야 할 주역은 민간 부문이고 그 밑바탕은 자율과 창의, 혁신과 경쟁을 존중하는 우리의 자유민주 사회 체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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