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수 칼럼] ​직업윤리와 자존심을 내팽개친 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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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수 연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입력 : 2020-06-02 08:00
수정 : 2020-06-02 09: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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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일 오후에 이번 주 강의준비를 마치고 뉴스를 보다가 문대통령이 청와대 비서관 인사를 했다는 자막이 나오는데 솔직히 누가 어느 자리에 갔는지 관심은 없다. 다만, 이번 총선에서 내가 사는 지역구에 출마한 여성 후보자가 교육비서관이 되었다는 소식이 눈에 띄었다. 하느님이 보우하사 나에게 볼 수 있는 능력을 주셨으니 그 분이 이 지역구에 공천을 신청하려고 하였는지 오래 전부터 자신의 사진을 여기저기 붙여 놓았던 것을 본 기억이 난다. 그래서일까? 작년 이른바 조국사태를 겪으면서 대통령과 여당의 입장을 용감하게 비판한 일부 민주당 의원들의 모습을 보면서 작은 위안이 되었는데, 이 분을 지켜보니 그런 장면을 전혀 보여주지 못했고 비례대표로서 도대체 국민을 섬기기 위해 어떤 진지한 의정활동을 했는지도 잘 모르겠다.

그런데 낙선 후 국회의원 임기가 끝나는 바로 오늘 청와대 비서관으로 달려간 것이다. 청와대는 틈만 나면 국회를 존중하겠다는 말을 하는데, 삼권분립이라는 제도적 기초 위에서 대통령이 전직 국회의장을 비롯하여 현직 국회의원을 총리나 내각에 기용하는 관행을 보면 그 진정성이 의심된다. 만 번 양보해서 헌법기관인 총리나 내각의 구성원이라면 몰라도 전직 국회의원을 비서관으로 쓰는 것은 대통령이 국회 위에 군림하는 모양새가 될 수 있다. 이는 삼권분립과 국회라는 헌법기관의 문제를 넘어서서 그들을 선출한 국민을 무시하는 측면이 있기 때문이다.

청와대비서관이 아무리 막강한 권력을 가지고 있다고 하더라도 문자 그대로 비서이며, 비서관의 직제가 법률적 근거를 가지고 있는 것도 아니다. 그나마 대통령령인 대통령비서실 직제에 비서실장, 정책실장, 수석비서관 등을 설치할 수 있다고만 규정할 뿐 예를 들어 민정수석비서관이 어떤 일을 하며 권한이 무엇인지도 알 수 없다. 권력이 법적으로 견제 받지 않다면 그 결과는 어렵지 않게 상상할 수 있다. 그러니 우 아무개나 조 아무개를 탓할 일도 아니다. 21세기 중반 대명천지에 법치국가 대한민국에서 상상하기 어려운 제도적 허점투성이 법제가 지속되고 있는 것이다. 문대통령은 집권 전에 청와대를 비롯하여 검찰, 국정원과 같은 이른바 권력기관에 대한 개혁을 예고하였지만 정작 자신이 살고 있는 청와대 비서실에 대한 법제화는 여전히 오리무중이다.

그렇다면 이런 의문이 든다. 새 교육비서관이라는 이 분은 국민의 대표기관인 국회의 구성원으로서 헌법기관이라는 국회의원의 직업윤리를 어떻게 생각하고 있었을까? 4년 후에 다시 이 지역구에 입후보 하여 정부의 정책을 견제하고 민의를 받드는 헌법기관으로서 막중한 책임감과 자존심을 가지고 일하겠다고 말할 수 있겠는가? 청와대는 이 분의 국회의원 임기가 종료되는 시점을 기다려 비서관 인사를 했다고 발표하였는데, 개인에 대한 배려는 가상하지만 정작 헌정질서에 대한 존중과 법제도에 대한 고민은 상대적으로 깊어 보이지 않는다.

그런데 우리나라에서 직업윤리와 자존심을 내팽기치는 일이 어디 국회의원뿐이랴. 여성인권운동가로서 평생 입지전적 업적을 남긴 분은 할머니의 절규와 우리 사회에 숱한 갈등을 뒤로 남기고 결국 국회의원이 되었다. 그 분이 자신이 이룩한 일에 대한 진정한 자존심이 있었다면 여성인권운동가의 전설로 남는 길을 택하지 않았을까. 평생 교수와 과학자로서 외길 인생을 멈추고 학문연구와 후학양성에 대한 직업윤리와 학자적 자존심을 포기하면서까지 끝내 권력자로 변신하지 말고 그 연구 분야의 학문적 전설로 남을 수는 없을까? 어떤 이들은 현직 검찰총장이 차기 대권후보가 되어야 한다는 이야기를 한다. 그 분이 원하지도 않겠지만 능력을 폄훼하려는 의도도 더더욱 없다. 하지만 이렇게 복잡하고 변화무쌍한 세계에서 현장과 시장상황에 경험이 부족하고 평생 수사만 했던 사람은 정치적으로 패착할 것이다. 그러니 검찰총장은 제발 검찰의 전설로 남기를 바란다.

평생 외길을 가는 사람이 가지는 직업윤리에 대한 자존심과 사회적 존경이 너무도 절절하게 그립다. 디오게네스가 알렉산더 대왕이 찾아와 소원을 물으니 아무것도 필요 없으니 햇빛을 가리지 말고 비켜 달라고 했다는 전설이 회자된다. 혹자들은 디오게네스가 당시 일광욕을 즐기고 있었다고 전하지만 아마도 햇빛을 구실로 자신의 철학공부에 대한 무한한 학자적 자존심을 그렇게 표현했으리라.
 

[사진 = 김성수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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