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조산책] 관례의 규범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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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정환 변호사
입력 : 2020-09-19 09:00
수정 : 2022-06-04 16: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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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대 국회가 역대 가장 늦게 개원했다. 국회 개원이 늦어지는 것 자체는 새로운 일은 아니고 매 총선 이후 반복됐던 일이다. 그런데 이번 국회 개원 과정에서의 특징은 정당들이 “관례”에 대한 첨예한 주장을 하고 나선 것이다. 잘 알려진 바와 같이 미래통합당에서는 관례를 이유로 법제사법위원장을 요구하였고 그것이 관철되지 않으면 국회부의장 및 다른 상임위원장을 일체 받지 않겠다는 입장을 고수하였다. 실제로 미래통합당은 국회가 개원한 현재까지도 각 상임위원회 별로 지명할 수 있는 간사를 지명하지 않고 있다. 즉, 외관상 여야가 합의하여 국회가 개원한 것으로 보이지만, 실무적으로는 여전히 국회가 정상적으로 작동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그런데 여기서 우리는 “관례”의 규범력에 대하여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우리의 생활에 적용될 모든 규범이 법제화되기는 쉽지 않다. 따라서 성문법 체제에서도 제한적으로 관습법에 어느 정도의 효력을 인정하기도 한다. 민법에서는 명시적으로 관습법이 보충적으로 효력이 있음을 규정하고 있고 헌법의 경우에도 행정수도이전 사건을 통하여 관습 헌법이 있음이 어느 정도 확인이 되었다. 그런데 어떠한 “관습”의 존재만으로 “관습법”이 되는 것은 아니다. 관습법의 가장 중요한 요건은 사회 구성원들이 관습이 규범력이 있다는 “법적 확신”을 가질 것을 요한다. “법제 확신”이 생기는 요건을 일괄적으로 말하기는 어렵지만 일반적으로 민법 또는 헌법에서 인정하는 관습법은 수도로서의 서울, 종중의 권리 등과 같이 수백년에 걸쳐 만들어진 규범인 경우가 많다.

정치 영역에서도 다양한 이유로 국회법 등 관계 법령에 없는 내용이 “관례”라는 이름으로 규범력이 생기기도 한다. 정치 영역에서의 관례와 법률에서 말하는 관습법의 개념은 다소 차이가 있을 수 있고 특히 “법적 확신”이 생기는 방식이나 기간에는 중요한 차이가 있을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적어도 어떠한 원칙을 고수하거나 그 원칙이 지켜지지 않은 것을 비판의 소재로 삼기 위해서는 해당 원칙에 어떠한 형태로든 “규범으로서의 확신”이 있어야 한다는 명제에 반대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그렇다면 현재 문제 되는 “야당이 법제사법위원장을 하여야 한다”라는 관습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의 법적 확신이 있을까? 법제사법위원회가 처음 생긴 제9대 국회 이래로 계속하여 법사위 위원장은 대통령과 같은 정당 소속의 국회의원이 맡았다(각 민주공화당, 민주정의당, 민주자유당, 신한국당 등). 대통령과 다른 정당의 국회의원이 법사위원장을 처음으로 맡은 것은 15대 국회 후반기부터이다. 15대 국회는 1996년 개원했으나 1997년 대통령 선거로 인하여 여당과 야당이 바뀌었으나 1998년 국회 후반기 상임위원회 배분 과정에서 야당이 된 당시 한나라당이 계속하여 법제사법위원장을 맡기로 하면서부터이다. 이후 약 20여년간 “야당 법사위원장” 공식이 유지되다가 제20대 국회에서 다시 이 공식은 깨지게 된다. 당시 여당이었던 새누리당 소속 권성동 의원이 법제사법위원장이 된 것이다. 이에 대하여 일부에서는 당시 새누리당이 제2당으로 추락하였기 때문에 야당은 아니었지만 소수당 보호 차원에서 이루어진 배정이라 기존 관례에 들어맞는다는 주장도 있다. 그런데 그렇게 되면 1998년부터 2002년 사이의 기간이 설명되지 않는다. 당시 한나라당은 야당이었지만 원내 1당이었기 때문에 당시 법사위원장은 “소수당 보호” 차원이 아닌 “야당”으로서 배정받은 것이 명백하기 떄문이다. 만약 “소수당 보호의 원칙”이라는 관례를 인정하고자 하면 그러한 관례가 발생한 것은 17대 국회부터가 되어 17 ~ 20대 국회에 적용된, 즉 불과 4개 총선의 결과에만 적용된 “관례”가 되어 버린다.

즉, 이른바 “야당 법제사법위원장의 원치”이란 길게 보아야 20여년이 채 되지 않은 관례로서 그 적용도 일관적이지 않았던 것이다. 이는 15대에서 20대 국회의 구성 과정에서 당시의 정치적 상황에 따른 협상의 결과로 보는 것이 타당하고 어떠한 “법적 확신”에 따라 특정 규범을 적용한 것으로 보이지는 않는다.

반면 또 다른 쟁점이 되고 있는 “의석 비율에 따른 상임위원장 배분의 원칙”은 경우가 다르다. 상임위원장을 의석수 비율에 따라 배분하기 시작한 것은 민주화 이후 첫 총선인 1988년 총선에 따라 구성된 제13대 국회부터 일관적으로 적용해오던 원칙으로서 법령상 근거는 없더라도 예외 없이 적용된 방식이다. 특히, 국회 원 구성 과정에서 정당들의 이해관계가 첨예하게 대립하는 과정에서도 해당 원칙 자체는 쟁점이 된 적이 없다. 즉, 이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구성원들 사이의 “법적 확신”이 성립하였다고 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 현재 미래통합당의 입장은 “야당 법제사법위원장 원칙”이 깨진 이상 “의석비율에 따른 상임위원장”은 아무런 의미가 없으며, 법이 규정한 상임위원회 간사도 지명하지 않겠다는 해괴한 입장을 펼치고 있는 것이다. 즉, 규범력이 불분명한 “관례”에 가장 높은 권위를 부여하고 실제 어느 정도 구성원들 사이에 합의가 이루어진 원칙은 물론 명문의 규정까지 그 보다 낮은 가치를 부여하고 있는 것이다.

어떻든 이번 원 구성 논란을 통해서 우리 정치에서의 관례와 관습을 점검할 필요가 있어 보인다.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정치와 관련된 모든 원칙을 명무화하기는 어렵고 관례와 관습을 존중하며 정당들의 합의하는 모습이 일견 “선진적인” 정치 문화로 보일 수도 있다. 그러나 이러한 관례와 관습에 대한 존중이 생기기 위해서는 먼저 충분한 규범력 또는 법적 확신이 먼저 확립되어야 한다. 우리의 현재 정치 체제는 1987년 6월 항쟁 이후에 확립된 것으로서 이제 겨우 30여년이 된 젊은 정치 체제이다. 87년 체제의 출범 이후에도 2번의 대통령 소추안이 의결되는 등 “안정적인 정치”와는 거리가 멀었다. 뿐만 아니라 현재 우리의 정치 체제가 정치적 소수자의 목소리를 잘 담았다고 평가하기도 어렵다. 여기에 더하여 국민들이 정치에 대하여 가지는 신뢰의 정도를 생각하면 정치인들이 만들어 온 관례에 대하여 일반 대중이 많은 신뢰를 한다고 하기 어렵다.

따라서 그 동안 우리의 정치 체제가 만들어온 관례와 관습은 일반 대중의 입장에서 권위를 가지기도 어려울뿐더러 다양한 목소리가 반영된 정의로운 결과를 반영하고 있다고 하기도 어렵다. 우리의 정치가 지향해야하는 것은 더욱 합리적인 의사 결정 방식과 사회적 대화의 방식을 찾아나가는 것이지정체가 불분명한 “관례”에 얽매여서는 안될 것이다.
 

[사진=전정환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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