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승국 칼럼] ​친일을 참회한 자 그 얼마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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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승국 변호사(법무법인 로고스 대표)
입력 : 2020-09-05 08:00
수정 : 2020-09-05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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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한일합방(韓日合邦) 때에 절개를 지킨 애국자의 자손들이 곤궁(困窮)하게 살고 있는데 친일파의 자손이 지금까지도 잘 사는 것을 보고 있습니다. 나는 일제 강점기에 그들에게 아부한 사람들이 잘 살았고, 그 자손들이 좋은 교육을 받아 지금까지도 영화를 누리고 있는 사실을 잘 알고 있습니다. 나 자신이 바로 그 한 사람입니다. 나는 일제 때에 그들에게 붙어서 민족의식을 상실한 것을 해방 직후에는 부끄럽게 생각했었으나 그 뒤 얼마 안가서 나의 일제행각(日帝行脚)에 대한 정당한 변명을 마련했습니다. 그것은 시세는 어쩔 수 없는 것이라는 것이었지요. (중간 줄임) 나는 이것을 깊이 참회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새사람이 되기를 결심도 합니다. 그러나 이 결의가 과연 얼마나 오래갈는지 도무지 자신이 없습니다. 나는 심한 건망증 환자이기 때문입니다. 내가 또다시 그 더러운 처세철학을 소생시켜 추(醜)한 사람이 되지 않도록 동료들은 나를 꾸짖어 주시고 제자들은 나를 손가락질 해 주기를 바랍니다.

이항녕(1915~2008) 전 홍익대 총장이 1980. 1. 26. 조선일보에 기고한 <나를 손가락질 해다오>라는 참회록의 일부이다. 이총장은 일제 강점기에 고등문관시험 행정과에 합격하여 경상남도 하동군수로 재직하였다. 그리하여 광복 후에도 미군정은 이러한 경력을 감안하여 1945년 그를 경남도청 사회과장으로 발령냈다. 그런데 그는 한 달 만에 사표를 제출했다. 자신이 일제의 행정관리로 일제의 식민행정에 일조한 것이 부끄러워, 도저히 그 직을 감당할 수 없었던 것이다. 그리고는 이항녕은 부산 범어사 밑 청룡초등학교로 들어가 교사로서 몸을 낮추고, 자신의 친일 과오를 참회하는 수필을 발표하기도 하였다. 그리고 홍익대 총장으로 교육자로서의 삶을 마치면서는 지난날 자신의 삶을 돌아보면서 다시 한 번 자신을 손가락질 해달라며 참회록을 쓴 것이다. 이항녕은 그 후에도 1991년 바르게살기운동 하동군협의회 초청강연을 할 때에, 하동군민 앞에서 다시 한번 자신의 친일 행적을 사죄하였다. 일제 시대 친일한 사람으로서 광복 후 과연 자신의 잘못을 참회한 사람이 얼마나 될까? 현석호 충청남도 광공부장이 광복이 되자 한 달 만에 미군정에 사표를 제출하였고, 일제 시대 대검찰청 차장을 역임한 엄상섭 등 검사 8명이 미 군정 하의 질서 유지를 위해 그대로 검사직을 수행하다가 정부 수립 후 사표를 제출한 것 등 몇몇 사례를 제외하고는 자신의 친일을 공개적으로 참회한 경우를 별로 들어보지 못했다.

이들은 단지 일제 식민지 관리로서 식민행정에 참여한 것이기에 친일을 했다고 하더라도 소극적인 친일이라 할 것이다. 소극적인 친일을 한 사람도 자신의 친일행적을 참회한다면 적극적으로 친일을 한 사람이야말로 진실로 국민 앞에 석고대죄 하면서 참회의 모습을 보였어야 하지 않을까? 단지 있다면 최남선과 최린 정도? 최남선과 최린은 1949년 반민 특위에 체포되어 재판을 받으면서 다른 친일파가 변명으로 일관할 때에 자신의 친일 행적을 솔직히 인정하였다. 최린은 3.1 운동 때 민족대표 33인의 한 사람이었던 자신이 친일 행위를 한 것을 참회하며, 자신을 광화문 네거리에서 소에 사지를 묶고 형을 집행하여 민족의 본보기로 삼으라는 말도 하였다. 과문(寡聞)인지 모르겠으나, 그 외에 적극적으로 친일 행위를 한 사람들 중에 공개적으로 자신의 친일 행적을 참회하였다는 것을 들어본 기억이 나지 않는다. 일부 친일파 후손들이 선조들을 대신하여 친일 행적을 사죄했다는 것은 들어본 적이 있지만...

광복한 지 75년이 되었건만 아직도 친일 논쟁이 사라지지 않는다. 지난 광복절 기념사에서 김원웅 광복회 회장은 아직도 끝나지 않은 친일 청산에 목소리를 높였다. 김원웅 회장의 기념사에 박수를 보내는 이들도 있지만, ‘아직도 친일청산이냐? 지겹다. 그만해라’하는 목소리도 크다. 그런데 물어보자. 광복한 지 75년이 되었지만 과연 친일청산을 제대로 한 적이 있기는 있는 건가? 반민족 행위 처벌법에 의해 반민특위가 만들어졌지만, 자신의 정권 안위를 위해 친일파와 손잡은 이승만 대통령에 의해 와해되었고, 그 후 다시는 반민특위와 같은 친일청산 절차가 진행되지 않고 오늘에 이르지 않았는가? 혹자는 말한다. “그 당시 어쩔 수 없는 상황에서 친일한 것인데, 이 모두를 친일청산이라는 미명 아래 단죄한다면 이 나라가 어떻게 유지되겠는가? 이제 친일청산이라는 과거의 족쇄에서 벗어나 민족 번영이라는 밝은 미래로 나아가야 한다.” 일견 수긍이 갈만한 말이다. 암울했던 그 시절 대부분의 사람들은 언제 끝날지 모르는 식민통치 하에서 그저 묵묵히 일제가 행하는 대로 따를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나 또한 이러한 사람들에게까지 친일단죄의 칼날을 들이대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이러한 수동적인 친일에서 나아가 적극적으로 친일행위에 나선 사람들에게는 어떻게 하서든지 역사의 단죄가 있어야 하지 않을까? 역사의 단죄라고 하여 예전 반민특위처럼 이들을 처벌의 마당에까지 끌어내자는 것은 아니다. 최소한 이들의 친일행적만이라도 명명백백하게 온 천하에 밝혀, 다시는 이러한 작태가 일어나지 않도록 역사의 거울은 되게 하여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들로서는 그러한 적극적인 친일 행적을 민족 앞에서 사죄하고 참회해야 할 것이다. 그들이 이 세상 사람이 아니라면 그들의 후손이라도 선조들의 잘못에 대해 용서를 구해야 할 것이고... 이항녕 총장처럼 소극적인 친일행위를 한 사람들도 자발적으로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고 참회를 하였는데, 그보다 훨씬 더한 적극적인 친일을 한 사람들이 좋은 게 좋다면서 그냥 넘어가서야 되겠냐는 말이다. 친일청산에 얼굴 찌푸리는 사람들의 말처럼 언제까지나 친일청산이라는 과거에 발목을 잡혀있을 수는 없다. 그렇지만 지금처럼 무조건 덮고만 있으면 이 문제는 앞으로도 계속 논쟁거리로 남을 것이다. 그러므로 밝은 미래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최소한 적극적인 친일행적의 고백과 참회라는 통과의례는 있어야 할 것이다. 그것만이 조국 독립을 위해 이 땅에 피를 뿌린 독립투사들에게 최소한의 면을 세우는 것이요, 수치스러운 낯을 최소한이라도 씻어 우리 후손들에게 조금이라도 낯을 들 수 있는 길이라고 생각한다.
 

[사진=양승국 대표변호사, 법무법인 로고스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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