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사 1심사건 처리율 하락

“소송지연은 사법불신으로 이어질 수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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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씨는 2018년 5월경 B씨한테서 법인을 넘겨받았지만 잔금 700만원에 대한 정산을 둘러싸고 분쟁이 생겼다. 이에 A씨는 2020. 5. 700만원을 달라고 소송을 제기했다. 소 제기 후 6개월이 지났지만 아직 첫 재판도 열리지 않았다. 첫 재판은 11월 중순이다.

#. C씨는 2019. 11. D 회사를 상대로 800만원의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제기했다. D 회사의 공사현장 인근에 주차를 했다가, 공사현장에서 떨어진 낙하물에 의해 차량이 손상됐다는 이유다. C씨는 소장 제출 후 한참을 기다렸지만 법원으로부터 아무런 소식이 없었다. 이에 2020. 5. 기일지정신청을 했고, 2020. 8. 첫 재판이 열렸다. 소장 접수 후 첫 재판까지 10달이 걸렸다.

지난해 민사 본안사건 1심 처리율이 최근 5년간 최저 수준인 것으로 나타났다.

법원행정처가 최근 발간한 ‘2020 사법연감’에 따르면 지난해 1심에 접수된 민사 본안사건은 94만 9603건이다. 처리된 사건 수는 92만8123건으로 처리율은 97.7%로 나타났다.

이 같은 수치는 전년도인 2018년 97.9%(접수건수 95만9270건, 처리건수 93만9208건)보다 0.2%p 낮고, 2017년 101.2%, 2016년 98.8%, 2015년 101.3% 등 최근 5년간 처리율 가운데 가장 낮은 수준이다.

1심 민사 합의부 사건 처리율은 처음으로 90% 아래로 떨어진 2018년에 비해 다소 상승했다. 지난해 1심 민사 합의부 접수 건수는 총 5만1089건이었는데, 처리건수는 4만7414건으로 92.8%의 처리율을 기록했다. 89.7%를 기록한 2018년과 비교하면 다소 올랐지만, 2017년 98.1%, 2016년 100.5%, 2015년 122.5% 등과 비교하면 여전히 낮은 수치다. 특히 2015년 처리율 122.5%와 비교하면 무려 29.7%p나 차이가 난다.

민사 단독사건 처리율은 최근 5년간 처리율 가운데 가장 낮은 수치를 기록했다. 지난해 1심 민사 단독사건 접수건수는 89만8514건이었지만 처리건수는 88만709건에 머물러 98%의 처리율을 보였다. 2018년 98.3%(접수건수 91만3906건, 처리건수 89만859건), 2017년 101.3%, 2016년 98.7%, 2015년 100.4%에 비해 낮은 수치다.

또한, 사법연감에 따르면 지난해 민사사건의 평균처리기간도 전년보다 늘었다.

지난해 1심 단독 민사본안사건 평균처리기간은 153일로 2018년보다 2주 가량 늘었다. 1심 합의부 평균처리기간은 297일로 같은 수준을 유지했다.

1심 선고가 내려지지 않은 채 2년이 지난 단독 사건은 6298건으로 전년보다 695건이 늘었다.
지방법원의 항소심 처리도 늦어졌다. 평균처리기간 249일로 전년보다 15일 길어졌다. 다만, 고등법원에서 진행된 항소심의 처리는 2018년 243일에서 지난해 237일로 빨라졌다.

상고심 평균처리기간은 2015년 156일에서 2017년 114일로 줄어든 뒤 2018년 135일로 다시 증가한 데 이어 지난해 183일로 급등했다. 1년 이상 2년 이내 처리되지 않은 재판이 1986건으로 전년보다 크게 늘었다.

김중권 중앙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의 논문 ‘재판지연에 대한 국가책임에 관한 소고’에 따르면 “소송의 지연은 사법에 대한 불만 및 불신을 자아낸다”며 “우리의 경우 독일의 경우와는 달리 신속한 재판에 관한 권리가 헌법상으로 명문화되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 권리를 실현하기 위한 구체적인 입법형성을 소홀히 했다. 재판지연에 대한 손실보상법을 통해 입법적 토대를 마련한 독일의 상황은 좋은 본보기가 된다”고 밝혔다.

서초동의 한 변호사는 “민사소송법 제199조는 ‘판결을 소가 제기된 날로부터 5월 이내에 선고한다. 다만, 항소심 및 상고심에서는 기록을 받은 날부터 5월 이내에 선고한다’고 규정하고 있다”며 “훈시규정인 민사소송법에 맞춰 재판이 진행되기는 어렵겠지만 소제기 후 5개월이 지나도록 첫 재판을 기다려야 하는 상황이라면 재판지연 문제가 심각하다고 보는 게 국민 눈높이에 맞는 것 아니냐”고 말했다.
 

[사진=이범종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