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동 학대에 악용된 자녀징계권... 62년 만에 사라질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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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연합뉴스]
 

민법 제915조는 친권자는 그 자(자녀)를 보호 또는 교양하기 위하여 필요한 징계를 할 수 있고 법원의 허가를 얻어 감화 또는 교정기관에 위탁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지난 1958년 민법이 제정된 후부터 62년간 유지되고 있는 조항이다.

그러나 이 조항은 이르면 내년 초부터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질 전망이다. 부모의 ‘자녀 징계권’ 조항을 삭제한 민법 개정안이 곧 국회 본회의를 통과할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명백한 범죄임에도 불구하고 훈육의 한 방식으로 치부되어 온 부모의 아동학대가 근절될 수 있는 길이 열린 것이다. 이 법이 국회의 문턱을 넘을 경우 더 이상 자녀를 향한 부모의 '사랑의 회초리'는 법적으로 허용되지 않는다.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지난 5년간 132명의 아동이 부모의 학대로 세상을 떠난 것으로 드러났다.

이를 두고 일각에서 “민법 제915조가 한 원인이 될 수 있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민법상 징계권 조항이 부모의 자녀에 대한 체벌을 법으로 허용하는 이른바 ‘체벌권’으로 잘못 해석되어 왔기 때문이다.

실제로 자녀를 폭행하거나 아동복지법 위반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부모들이 민법상 징계권을 근거로 무죄를 주장하는 경우가 많다. “현행법상 자녀를 폭행하거나 학대를 한 부모는 처벌 대상이긴 하지만 민법상 징계권을 근거로 실질적으로 죄가 되지는 않는다”며 위법성 조각사유를 주장하는 것이다. 위법성 조각사유란 어떤 사람이 한 행위가 형법에 규정된 범죄 조건에 해당하더라도 특별히 그 행위를 위법으로 인정하지 않는 사유를 말한다. 정당방위가 대표적이다.

이에 대해 대법원은 지난 2002년 “부모는 자녀를 보호하고 교양할 의무가 있고 필요할 경우 징계를 할 수 있다“며 ”민법상 징계권은 건전한 인격 육성을 위해 필요 범위 안에서 상당 방법으로 행사해야 한다"고 밝힌 바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민법 제915조는 징계 범위가 어디까지 포함되는지 명시하지 않아 모호하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았다. 아동에게 신체적·정신적 고통을 가하면 형법 및 아동복지법 등 관련 법령에 따라 처벌을 받게 된다. 그러나 부모가 자녀의 훈육 목적으로 한 체벌의 경우 민법에 규정된 징계권에 대한 해석에 따라 아동학대로 인정받지 못하고, 형량이 깎이거나 무죄가 선고되는 경우가 있다. 민법 제915조가 부모의 면죄부가 되는 셈이다.

현재 59개 해외 국가에서 자녀 체벌을 법으로 금지하고 있다.

먼저 스웨덴은 지난 1979년 세계 최초로 ‘어린이와 부모법’을 제정해 아동체벌을 법으로 금지했다. 독일도 지난 2000년 민법 개정을 통해 자녀 체벌 금지 조항을 신설한 바 있다. 뉴질랜드의 경우 형법으로 '자녀의 교육목적으로 손으로 자녀를 때리는 정도는 범죄가 아니다'라고 규정하고 있었다. 하지만 이 규정이 “부모가 자녀를 학대하는 데 악용되고 있다”는 비판을 받으면서 부모의 친자녀에 대한 체벌을 원칙적으로 금지하는 내용으로 지난 2007년 개정되었다. 일본역시 부모의 체벌을 금지하는 것을 골자로 한 아동학대방지법을 지난 4월 1일부터 시행하고 있다.

한국에서도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고자 법무부 산하 '포용적 가족문화를 위한 법제개선위원회'는 민법 제915조 징계권 조항을 삭제하도록 하는 내용을 지난 4월 법무부에 권고한 바 있다. 법무부는 이 권고를 받아들여 지난 8월 민법 일부개정법률안을 입법예고하고 지난달 13일 국무회의를 통과해 이 법안을 국회로 넘긴 것이다. ‘포용적 가족문화를 위한 법제개선위원회’는 법무부가 작년 4월 가족문화와 아동 권리 관련 과제를 논의하기 위해 출생·가족·양육 분야 및 법제 분야 전문가 10인을 위촉해 구성한 단체다.

개정안에 따르면 민법 제915조 징계권 조항을 전부 삭제한다. 그 결과 자녀에 대한 '필요한 징계' 부분이 삭제되어 법적으로 자녀에 대한 체벌이 금지된다는 점을 명확히 한 것이다. 또한 명맥만 유지하고 있던 '감화 또는 교정기관에 위탁' 부분도 민법에서 퇴출된다.

이에 대해 공혜정 대한아동학대방지협회 대표는 “이번에 개정된 민법 개정안은 선언적인 의미가 크지만 이를 토대로 부모의 자녀 체벌과 아동학대에 대한 인식 변화가 이뤄질 것으로 기대된다”고 말했다.

신나리 충북대 아동복지학과 교수도 “지금까지 부모들이 아이들을 통제하는 가장 쉬운 방법으로 체벌을 선택해왔고 이를 훈육의 일환이라고 여기는 잘못된 생각이 퍼져 있었다. 앞으로는 체벌 없이 아이들의 자기통제 능력을 기를 수 있다는 다양한 훈육 방법에 대한 고민이 시작되어야 한다”고 밝혔다.

한편 이번 민법 개정안이 국회의 문턱을 넘게 된다면 대한민국은 전 세계에서는 육십 번째 로, 아시아에서는 몽골과 네팔, 일본에 이어 네 번째로 자녀 체벌을 금지하는 국가가 될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