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수 칼럼] ​이 사람들아 너무 속 보이지 않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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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사람들아. 정신 차리게. 요즘 당신들이 하는 일 보면서 스스로 너무 속보인다고 생각하지 않는가? 부끄럽지 않는가? 백성들은 코로나에 고통 받고 전세집 못 구해서 저렇게 아우성 치고 있는데, 윤검사 하나 쫒아내자고 저렇게 무리한 일들을 백성들 면전에서 벌여야 하겠는가? 당신들이 윤검사를 몰아내고자 하는 의도는 잘 알고 있네. 원전수사니, 선거수사니 이게 모두 권력의 핵심부를 향하고 있고 자칫 잘못하다가 다음 선거는 물론 지금 권좌에 있는 사람들마저도 곤란한 지경에 이를 수 있으니 노심초사 하는 것 아니겠나.

그런데 당신들이 내 세우는 검찰개혁이라는 구호는 이미 퇴색되어 버렸네. 정권 초기부터 칼 잡은 윤검사를 통제하고 전 정권 적폐수사를 시끄럽게 할 때 야단도 치고 검찰권력 개편에 속도를 냈으면 개혁의 진정성을 누가 의심하겠는가? 그 때는 가만히 구경하고 박수치다가 윤검사 칼이 현재의 권력을 겨누는 시점부터 윤검사가 정치한다고 몰아붙이고 이제는 누가 보기에도 민망스럽게 노골적으로 그를 몰아내려고 이 소란을 피우고 있으니 백성들이 이를 어떻게 보겠는가? 내가 생각하기에 윤검사는 변한 게 없소. 예전이나 지금이나 투박한 검찰주의자에 다름 아니고 범죄가 있으면 수사해서 벌주는 것 밖에는 모르는 어찌 보면 위험한 인물이니 공수처와 검경수사권 조정을 통해서 제도적 개혁으로 검찰의 힘을 분산시키는 것 아니오. 이제 국회에서 관련 입법이 마무리 되었으니 그를 검찰개혁이라는 명분으로 찍어 내려는 것도 명분이 약하지 않소. 요즘 그의 입에서 공화제 검찰, 헌법정신, 법치주의, 권력형 범죄 엄단이니 하는 말이 나오지만 너무도 원론적인 이야기일 뿐 아니오. 하지만 그 말이 새삼스럽게 들리는 이유는 역설적으로 작금의 현실이 국민 전체가 아닌 특정 정치세력을 위한 검찰, 헌법정신과 수호에 대한 당신들의 의지 부족, 법치주의 붕괴에 대한 백성들의 우려 때문 아 니오.

그리고 한 번 생각해 보세요. 몇일 전에 있었던 법무부 감찰위원회와 서울행정법원의 집행정지신청 인용결정을 보면 당신들이 도모하는 일들이 얼마나 조급하고 논리와 이치에 맞지 않는다는 사실을 잘 보여주지 않소. 감찰위원들이나 행정법원 판사가 어디 막 된 사람들이오. 그 사람들은 우리나라에서 교육 잘 받고 나름 그 위치에서 합리적으로 사리를 판단하는 능력을 가진 전문가와 판사들이오. 행정법원 결정에 대해서 서로 생각이 다른 사람들은 잘했네, 잘못했네, 그런 평가들을 하지만 나도 찬찬히 결정문을 살펴보니 판사가 집행정지 요건에 대해 하나하나 사실관계와 법리를 따지고 합리적인 결정을 내렸다는 생각을 합니다. 매번 내가 학생들과 강의 시간에 다루는 주제이기도 해서 아마 대한민국에서 정상적인 법학교육을 받은 법조인이라면 거의 대부분 행정법원의 판사와 비슷한 생각을 하지 싶소.

새로 임명된 법무차관을 보니 다른 것은 모르겠으나 강남 지역에 2주택을 가지고 있다는데, 백성들이 요구한 공직자 요건도 아니고 당신들이 스스로 설정한 잣대를 포기하면서까지 그렇게 급하게 서두를 필요가 어디 있겠소. 누가 보아도 낯 간지럽고 속 보이는 짓들 아니오. 그러니 당신들. 이제 더 이상 소란피우지 말고 윤검사에 대한 징계를 포함해서 무리한 시도를 단념하세요. 차라리 그리고 나서 야당에게 공수처장 선임을 요구하세요. 야당이 그래도 거부하면 나쁜 사람들이라는 것을 천하에 알리는 일 아니겠소.

윤검사를 중징계 하고 그를 해임하면 문제가 해결될 것 같습니까? 君舟民水라 하지 않았소. 중요한 것은 임금이 백성의 마음을 얻는 것이오. 임금이 배 위에서 자꾸 허둥거리면 배가 뒤집어지고 물에 빠지는 것 아니오. 그래도 백성들이 평소에 신뢰하고 마음을 준 임금이라면 구해줄 것이오. 오히려 윤검사가 소임을 다 할 수 있도록 내벼려 두시오. 그 과정에서 윤검사가 무리하게 권력을 남용한다면 이 역시 백성들이 용서치 않을 것이오. 그 때가서는 당신들이 공수처로 윤검사를 압박해도 국민들이 이해할거요. 그러나 결과적으로 권력자의 잘못이 밝혀진다면 백성들에게 사과하고 용서를 구하시오. 백성들은 관용을 베풀고 다시 당신들에게 기회를 줄 테니 백성들을 믿으시오.

“살려고 바둥거리면 곧 죽을 것이고 죽기를 각오하면 살 수 있다” 누구의 말이오. 토요토미 히데요시가 사망하고 왜군이 본국으로 철수하려 하자 이순신은 죽기를 각오하고 왜군에게 마지막 복수를 하기 위해 노량으로 출정합니다. 그 때 명나라 제독 陳璘이 이를 말립니다. “장군과 같은 훌륭한 장수가 죽으면 조선의 운명은 어떻게 되겠소. 더욱이 왜군이 다시 쳐들어오지 않는다는 보장도 없지 않습니까? 제발 왜군의 퇴로를 열어주고 장군은 옥체를 보전 하소서” 아마도 이순신은 전쟁이 끝나면 선조가 자신을 그냥 놔두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도 했을 거요. 하지만 무엇보다도 7년간의 전쟁과 자신이 바다를 지키는 바람에 왜군을 육지로 내 몰았고 결과적으로 진주성에서 처참하게 살육된 백성들을 생각하며 왜국이 다시는 조선을 넘보지 못하게 하리라는 일념으로 퇴각하는 왜군에게 무리한 토벌을 감행한 것이오.

그래서 이순신은 정말 죽었는가? 그 사람은 영원히 살아서 우리 가슴 속에 있습니다. 공직자는 자신을 던져서 백성을 구하고 죽어도 죽지 않고 세세에 영원히 후대들의 뇌리와 가슴에서 사는 거요. 사가들은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江戶幕府가 250여년을 쇄국정책으로 일관해서 조선에 피해가 없었다는 주장을 하지만 아마도 일본은 북쪽 바다에서 이순신과 조선군에게 희생된 왜인들을 생각하면 끔찍했을 거요. 그러니 이 사람들아. 이제라도 이순신을 생각하며 죽는 게 죽는 것이 아니고 사는 게 사는 것이 아니라는 교훈을 되새기며 속 보이는 짓 그만하고 정신들 차리시오.

 

[사진=김성수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