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낭기의 관점]이재용 사면론과 '정의란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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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데일리동방]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은 사면돼야 하는가. 이 부회장 사면 문제는 요즘 우리 사회 쟁점 중 하나다. 지난 6일 열린 김부겸 국무총리 후보자 인사청문회에서도 이 문제가 거론됐다. 김 후보자는 민주당 김윤덕, 정의당 이은주 의원의 질문에 "반도체는 우리의 미래 먹거리 핵심이고, 글로벌 밸류체인(세계적 가치 사슬) 내에서 대한민국 내 경쟁력 있는 삼성그룹에 대해 어떤 형태로든지 배려 조치가 있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여기저기서 나오는 건 안다"고 했다. 김 후보자는 “경제계가 막연히 (이 부회장 사면을) 해달라는 건 아닐 것”이라며 “반도체 산업 현실을 볼 때 사면을 해달라고 요구하면, 잘 정리해 사면권자인 대통령에게 건의는 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자 김윤덕, 이은주 의원은 “이재용 사면은 법 앞의 평등에 어긋나 공정성을 훼손한다”고 반대 의견을 밝혔다. 특히 이은주 의원은 “2010년 이명박 대통령이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을 단독 특별 사면했는데 이번에 이재용 부회장을 사면하면 대를 이은 세습 사면이 된다. 대한민국 헌법은 특권 계급을 부정한다. 세습 사면은 헌법 정신에 위배된다”고 주장했다.

'반도체 살리기' '법 앞의 평등' 찬반 논란

김 후보자 답변과 의원들 질문에서 드러난 ‘이재용 사면론’의 쟁점은 이렇게 요약된다. ‘반도체 살리기’를 위해서 이재용을 사면할 것인가, 아니면 ‘법 앞의 평등’을 지키기 위해 사면을 해서는 안 될 것인가이다. 어찌 보면 단순하다. 그러나 그 이면에는 보다 근본적인 물음이 들어 있다. ‘이재용 사면’이라는 행위가 정당한지를 판단하는 기준은 무엇인가 하는 물음이다. 다시 말하면 ‘정의란 무엇인가’ 하는 물음이다.

10여년 전 <정의란 무엇인가>라는 책이 베스트 셀러가 된 일이 있다. 미국 하버드 대학교 정치학 교수 마이클 샌델이 쓴 책이다. 어려운 철학 책인데도 100만권 이상 팔렸다. 우리 사회가 얼마나 정의에 목 말라 있었으면 정의에 관한 책에 그렇게 열광했겠는가라고 당시 많은 사람들이 얘기했다. 이재용 사면론은 ‘정의란 무엇인가’를 우리 사회에 다시 묻고 있다.

마이클 샌델 교수는 이 책에서 정의가 무엇인지, 즉 어떤 행위의 정당성 여부를 평가하는 기준이 무엇인지를 두 가지로 나눠 설명한다. 결과론과 의무론이다. 결과론은 그 행위가 결과적으로 사회 전체에 이익을 가져오느냐 아니냐를 기준으로 판단한다. 행위가 가져오는 결과를 중시한다는 점에서 결과론이라고 부른다. 사람은 누구나 이익을 추구하고 손해를 피하려 하기 때문에 사회 전체적으로 이익을 극대화할 수 있는 행위가 바람직하다는 게 결과론의 기본 전제다.

의무론은 결과가 어떤지보다 그 행위가 도덕적으로 옳으냐 그르냐를 기준으로 판단한다. 그 행위를 하는 게 도덕적 의무인지 아닌지를 중시한다는 점에서 의무론이라고 하고, 도덕적 원칙을 따를 것을 강조한다는 점에서 원칙론이라고도 한다. 세상에는 경제적 척도로만 따지거나 돈으로 살 수 없는 가치도 많이 있으며 좋은 사회가 되려면 그런 눈에 보이지 않는 가치가 존중돼야 한다는 게 의무론의 기본 전제다.

이재용 사면 논란에서 사면을 찬성하는 쪽은 결과론에 서 있다. 이재용 사면이 삼성 반도체를 살려 사회 전체에 경제적 이익을 가져올 것이라는 긍정적 결과를 중시하기 때문이다. 사면을 반대하는 쪽은 의무론에 서 있다. 이재용 사면이 공정이라는 가치를 지켜야 하는 우리 모두의 도덕적 의무에 어긋난다는 점을 중시하기 때문이다.

결과론이든 의무론이든 구체적인 사안에 적용하려면 따져봐야 할 요인들이 있다. 우선 결과론을 보자. 어떤 행위의 정당성 여부를 결과의 측면에서 판단하려면 그 행위를 통해 달성하려는 결과가 사회 전체를 위해 반드시 필요한지를 먼저 따져봐야 한다. 만약 필요하다면 그 결과를 만들어내려면 그 행위를 하는 것 외에 다른 방법이 없는지를 따져봐야 한다.

"반도체 살려 국가 경제 돕는 게 정의"

이재용 사면론의 경우 이재용 사면 행위를 통해 달성하고자 하는 결과는 삼성 반도체 살리기다. 그럼 따져봐야 할 것은  삼성 반도체 살리기가 우리 사회 전체를 위해 꼭 필요한 일인가이다.

반도체 산업이 한국 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수출에서 반도체가 갖는 비중을 보면 알 수 있다. 반도체가 우리 수출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2011년 9%에서 2017년 17.1%를 기록했다. 2018년에는 20.9%로 처음으로 20%를 넘겼다. 2019년에는 미·중 무역분쟁 여파 등으로 반도체 단가가 떨어져 수출 비중이 17.3%로 줄었으나 2020년 하반기 이후 반도체 업황이 회복해 수출 비중이 다시 커질 것으로 예상된다.

반도체 살리기가 수출로 먹고 사는 한국 경제를 살리는 데 중요한 요인임은 부정할 수 없다. 또한 반도체 산업에서 가장 경쟁력 있는 국내 기업이 삼성전자임은 공지의 사실이다. 따라서 삼성 반도체 살리기가 우리 사회 전체를 위해 필요하다는 점은 인정할 수 있다.

그렇다면 이재용이 있어야 삼성 반도체를 살릴 수 있느냐 하는 점을 따져봐야 한다. 이재용 부회장은 2019년 4월 10년 안에 시스템 반도체 분야 글로벌 1위가 되겠다는 목표를 담은 ‘반도체 비전 2030’을 발표하고 이 분야에 133조원를 투자하겠다고 밝혔다. 삼성은 현재 메모리 반도체에서는 세계 1위를 유지하고 있지만 반도체 시장의 70%를 차지하는 시스템 반도체 분야에서는 후발 주자이다. 대만의 세계 1위 반도체 기업 TSMC에 한참 밀리고 있다. 시스템 반도체는 컴퓨터와 스마트폰의 데이터 처리, 메모리 반도체는 데이터 저장 장치에 쓰인다. 시스템 반도체에 장기적이고 대규모적인 투자가 계획대로 진행되지 않으면 안 될 절실한 상황이다.

그런데 이런 장기적이고 대규모의 투자 프로젝트를 기업 총수가 없는 상황에서 진행하기란 쉽지 않을 것이라는 의견이 있다. 손해를 감수하고 장기간 대규모의 전략적 투자를 해야 하는  만큼 총수의 의지와 과감한 결단이 없으면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삼성전자에 전문 경영인들이 있지만, 이들은 현상 유지를 위한 투자는 할 수 있으나 대규모 투자는 오너 경영자의 결단이 없으면 어렵다는 것이다. 오너의 지배력이 절대적인 한국 기업 풍토에서 일리 있는 지적일 것이다. 이런 점에서 본다면 삼성 반도체를 살리려면 오너인 이재용 부회장이 반드시 있어야 하고 따라서 이재용 사면이 불가피하다는 결론에 이를 수 있다.

다음은 의무론을 보자. 의무론에서 따져봐야 할 요인들은 ‘그 원칙이나 의무가 정말로 우리가 따라야 할 도덕적 의무 또는 원칙이 맞는가’이다. 그 다음에 따져봐야 할 것은 ‘그 원칙이나 의무는 어떤 경우에든 예외없이 적용되고 지켜져야 하는가, 아니면 필요에 따라 예외를 인정할 수 있는가’이다. 이재용 사면론의 경우 문제가 되는 원칙 또는 우리가 지켜야 할 의무는 ‘법 앞의 평등’이다.

법 앞의 평등이 우리 모두가 지키고 따라야 할 의무이자 원칙임을 부정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우리 헌법 제11조도 법 앞의 평등을 명문으로 규정하고 있다. “모든 국민은 법 앞에 평등하고” “사회적 특수계급의 제도는 인정되지 아니하며, 어떠한 형태로도 이를 창설할 수 없다”고 돼 있다.

"돈보다 중요한 공정 가치 지키는 게 정의"

누구든 죄를 지으면 재판을 받고 형이 확정되면 형기를 채우는 게 원칙이다. 부자든 아니든, 권력자든 아니든, 지위가 높든 낮든 누구에게나 평등하게 적용되는 원칙이다. 이게 법 앞의 평등이다. 헌법 제10조는 “모든 국민은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갖는다”라고 규정하고 있다. 모든 사람의 존엄과 가치는 동등하다는 뜻이다. 법 앞의 평등은 이 인간 평등 사상을 법에 적용한 것이다. 법 앞의 평등을 지키지 않는다는 것은 사람에 따라 존엄과 가치를 차별 대우한다는 것을 뜻한다.

그런데 사면은 형 집행을 면제해 준다는 점에서 법 앞의 평등 원칙의 예외를 인정하는 제도다. 헌법에 사면제도가 있는 이상 이재용 부회장에게 사면을 통해 법 앞의 평등 원칙을 예외로 해 줄 수는 있다. 그러나 사면은 법 앞의 평등 원칙을 깨뜨리는 것이기 때문에 꼭 필요한 경우에 예외적으로 이뤄져야 한다는 한계를 갖고 있다. 사면권이 남발되면 형사사법 제도가 유명무실해질 수밖에 없다.

그동안 역대 정부는 크게 두 가지 기준으로 사면권을 행사했다. 민생 사범과 정치 사범이다. 민생 사범의 경우 형 확정으로 인한 법적 족쇄로 생계 유지에 어려움을 겪는 사람들에게 그 족쇄를 풀어주는 인도적 차원에서 사면을 실시했다. 트럭 운전으로 생계를 유지하는 사람에게 운전 면허 취소를 사면해주는 식이다. 정치 사범의 경우에는 ‘국민 통합’을 명분으로 했다.

민생 사범 사면은 사면 제도의 본래 목적에 부합하는 측면이 커서 큰 반대에 부딪치지는 않았다. 그러나 정치 사범 사면은 달랐다. 말이 국민 통합이지, 정치적 고려에 따른 것이어서 일정한 기준도 없고 ‘정권 맘대로’라는 비판을 받아왔다. ‘힘 있는 사람만 특별 대우를 받는다’는 점에서 법치주의를 훼손하고 국민의 법 감정에 어긋난다는 비판도 있었다. 이재용 부회장은 민생 사범은 아니다. 그래서 사면에 따른 비판이 이재용 부회장 경우에도 해당될 수 있다. 이 점은 이 부회장에게 ‘법 앞의 평등’ 원칙의 예외를 인정하는 것을 수긍하기 어렵게 하는 요인이다.

우리는 이재용 사면론에서 무엇을 더 우선할 것인가. ‘경제적 이익’인가, ‘비경제적 가치’인가. 사람마다 의견이 다를 것이다. 결과론을 따르는 사람은 경제적 이익을 중시할 것이고, 의무론을 따르는 사람은 비경제적 가치를 중시할 것이다. 이재용 사면론은 지금 이 시점에서 우리가 따라야 할 정의의 원칙이 무엇인가에 관한 성찰과 고민거리를 던져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