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국 대법 가게 된 용화여고 스쿨미투...원심 "강제추행 고의 인정"

  • 전국 스쿨미투 도화선 된 '용화여고' 교사 2심 판결문 살펴보니
  • 法 "A씨, 교사로서 올바른 성인식 심어줘야 하나 오히려 지위 이용해 강제추행···고의 넉넉히 인정"
  • 法 "7년 지난 일에 대한 세부적 묘사 완벽하게 일치하지 않는다고 피해자 진술 신빙성 배척할 수 없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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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1-07-26 14:59
수정 : 2021-07-26 15: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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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쿨미투 포스트잇 액션' 트위터 캡처.]


전국 '스쿨미투(학생들의 학교 내 성폭력 고발 운동)'의 도화선이 된 서울 노원구 용화여고 前교사가 결국 대법원 판단을 받게 됐다. 1심과 2심에서 징역 1년 6개월을 선고 받은 A씨(57)가 원심의 형이 너무 무겁다며 상고장을 제출했기 때문이다. 판결문을 살펴보면 A씨는 자신이 학생들을 추행한 기억이 없고, 추행이 있었더라도 '고의'가 없는 신체적 접촉에 불과했다며 무죄를 주장했지만, 법원은 A씨의 주장을 모두 배척했다.  2심 재판부는 "피고인이 교사로서 올바른 성 인식을 심어주고 피해자들을 보호해야 할 의무가 있는 지위임에도 오히려 그 지위를 이용했다"며 A씨의 강제추행 고의가 '넉넉히 인정된다'고 판단했다. 

서울고등법원 제10형사부(이재희 이용호 최다은 부장판사)는 지난 15일 아동·청소년의 성보호에 관한 법률 위반(강제추행)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前용화여고 교사 A씨에게 1심과 같은 징역 1년 6개월 형을 선고했다. 이와 함께 40시간의 성폭력 치료프로그램 이수, 아동·청소년 관련 기관·장애인복지시설에 대해 각각 5년간 취업제한 명령도 유지했다.

A씨는 지난 2011년 3월부터 2012년 9월까지 학교 교실과 생활지도부실 등에서 제자 5명의 신체 일부를 만져 추행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지난 2월 19일 1심에서 징역 1년 6개월을 선고받고 법정 구속됐다. 이 사건은 '미투 운동'이 확산하던 2018년 3월 용화여고 졸업생들이 '용화여고 성폭력 뿌리뽑기 위원회'를 꾸려 교사들의 성폭력 의혹을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폭로하면서 세간에 알려졌다. 이후 용화여고를 도화선으로 교내 성폭력 공론화는 '스쿨미투'로 전국에 번져나갔다.

1심 판결 이후 검찰은 원심의 형이 너무 가벼워서, A씨 측은 형이 너무 무거워서 부당하다고 각각 항소장을 제출해 항소심이 열렸다. 이에 항소심 재판부는 양측 모두의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고 원심을 유지했다.

 
2심 재판부 "피해자 진술 신빙성 인정··· 7년 전 기억 완벽치 않아도 '핵심 사항' 일관"

2심 판결문에 따르면, A씨 측은 피해자들을 추행한 기억이 없고, 추행했을 지라도 추행 의도가 없는 신체적 접촉에 불과하다며 재판부의 '사실오인 및 법리오해'를 이유로 1심과 같은 무죄를 주장했다. 

재판부는 우선 "피해자 진술의 신빙성이 있고, 사실에 비추면 피고인이 추행 행위를 했다고 충분히 인정할 수 있다"며 피해자들을 상대로 한 A씨의 강제추행이 있었다고 봤다.

1심 재판부는 "범죄사실에 부합하는 피해자들의 진술이 수사기관에서부터 법정에 이르기까지 주요부분에서 일관됐고, 당시 상황에 대한 묘사가 구체적이고 분명해 그 내용에 비합리적이거나 경험칙에 반한다고 볼 만한 내용이 없다"고 판시했다. 항소심 재판부 역시 원심의 판단을 받아들여 피고인의 무죄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특히 1심 재판부는 "피해자들이 진술에 있어 추행 전후 경위에 대해 불명확하게 기억하는 부분이 있었을지라도 범행 여부를 파악하는 데 있어 본질적인 부분은 아니다"라고 판단하며 피해자들의 진술에 대한 전체적인 '신빙성'을 인정했다. 항소심 재판부도 "7년 이상 지난 일에 대해 세부적 묘사가 완벽히 일치하지 않더라도, 진술의 신빙성을 배척할 만큼은 아니다"라고 판단하며 원심을 따랐다. 

2심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구체적 사례를 들었다. A씨는 2011년 용화여고 생활지도부실에서 한 피해자를 자신의 왼쪽에 앉히고 추행한 공소사실과 관련해, 생활지도부실 배치도를 근거로 들며 피해자가 자신의 왼쪽에 앉을 수 없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이에 대해 2심 재판부는 "피해자가 당시 앉아있던 자리를 구체적으로 기억하지 못한다고 해서 피해 사실 자체에 대한 진술을 믿기 어렵다고 할 수 없다"고 적시했다. 2011년 당시 피해자가 생활지도부실에 자주 드나들었던 점, A씨가 지목한 자리가 아닌 생활지도부 내 다른 자리에도 피해자가 앉았던 적이 있었다고 진술한 점에 비춰보면 피해자의 진술이 '객관적 사실'과 배치된다고 단정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이외에도 2심 재판부는 "피해자들은 수사기관에서 조사를 받을 부담감, 무고죄나 위증죄로 처벌받을지도 모른다는 위험 등을 감수하고 자신들의 담임 선생님이었던 A씨에게 불리한 허위 진술을 지어낼 만한 별다른 사정을 발견할 수 없다"며 "피해자들은 학창 시절 A씨와 관계가 대체적으로 좋았던 것으로 보이고, 일부 피해자들은 "(A씨가) 잘 가르치고 실력은 있었다"라고 진술하기도 하는 등등 피해사실에도 불구하고 피해자들이 피고인에게 특별히 적대적인 태도를 갖고 있지 않았다"고 보인다고 판시했다. 

 
2심 재판부 "A씨의 강제추행, 교사 지위 이용한 고의성 명백···학생의 '성적 자기결정권' 침해"

A씨의 행위가 법률상 강제추행에 해당하는지 여부에 대해서도 2심은 원심과 마찬가지로 유죄 판단을 유지했다.

2심 재판부는 "피해자들은 성적 가치관과 판단 능력을 쌓아가는 10대 여학생들이고, A씨는 피해자들을 가르치는 교사로서 올바른 성 인식을 심어주고 피해자들을 보호해야 할 의무가 있는 지위에 있었다"며 "그러나 A씨는 오히려 그러한 지위를 이용해 위와 같은 행위(강제추행)를 한 것으로 이는 추행의 고의가 넉넉히 인정된다"고 강조했다.

앞서 원심은 "피고인이 (피해자들과) 접촉했다고 주장하는 신체부위는 (특정 속옷 부위 등)특별한 성적 의도가 없다면 이성 간에 쉽게 접촉하기 어려운 부위"라며 피고인의 피해자들을 향한 신체접촉 행위가 추행에 충분히 해당된다고 판시했다.

이어 원심은 ▲A씨가 특별한 사유 없이 기습적으로 추행 행위를 한 점 ▲피해자들이 A씨의 행위에 당황스럽고 불쾌한 감정을 느꼈다고 진술한 점 ▲당시 피해자들이 어린 나이였고, A씨가 국어 교사 및 담임교사로 피해자들에게 큰 영향력을 미칠 수 있었던 점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A씨의 강제추행 행위를 인정했다. 

2심 재판부는 원심판결을 인정하며 "A씨의 행위들은 피해자들의 성적 자기결정권을 침해할 뿐만 아니라 일반인의 관점에서도 강제추행에 해당된다"며 A씨 측의 단순 신체접촉이라는 주장을 배척했다.

한편 A씨의 양형과 관련해서 2심 재판부는 "A씨가 교사의 지위를 이용해 강제추행을 한 범행 경위나 수법, 추행 정도에 비춰 그 죄책이 매우 무겁다"며 "A씨의 범행으로 피해자들은 상당한 정신적 피해를 입었을 것으로 보인다"면서도 "하지만 A씨가 전과가 없는 초범인 점, 사건 이전까지는 오랜 교직 생활을 하며 나름대로 성실히 학생들은 지도해 온 것으로 보인다"고 판시하며 원심의 판결을 유지했다.

 

[2018년 4월 용화여고 졸업생들의 스쿨 미투가 나올 당시 용화여고 재학생들이 창문에 붙인 '#WITH YOU' '#ME TOO' 등의 문구. ]

 
피해자 측 "성인지 감수성 판결처럼 '스쿨미투'도 대법서 종지부 찍게 되길 기대"

A씨는 2심 판결에 불복해 지난 21일 상고장을 제출한 상태다. 

이에 대해 최경숙 노원구 스쿨미투 지지시민모임 활동가는 "형량도 중요하지만, 피해자는 A씨의 아동·청소년 관련 기관·장애인복지시설 등 취업제한이 5년이라는 부분에 대해 걱정하고 있다. 5년이 지나면 A씨가 교육기관에도 취업할 수 있는 거 아니겠나. A씨는 국어 쪽에서 능력을 인정받던 교사로 문제집, 참고서 등을 만들기도 해 학생들에게도 권력이 있었던 측면이 있다"고 걱정을 표했다.

이어 그는 "1심이 끝났을 때도 A씨가 항소할 거란 생각을 못했었는데 A씨가 양형이 무겁다며 항소를 했다. 그때도 어이가 없었는데, 원심 판결이 다 인정됐고 (A씨의) 주장이 부인된 것이 하나도 없는데 이제는 대법원까지 간다고 하니 더 어이가 없다"며 "대법원에서 특별한 변화는 없을 거라고 생각하지만 혹시 모를 1%가 사람을 불안하게 하다 보니, 일상으로 돌아가려는 준비를 하려던 피해자들은 마음이 또 힘들어진 상태다"라고 밝혔다.

마지막으로 최씨는 "지난 2018년 4월 대법원 판례에서 '성인지 감수성'이 처음 판시됐던 것처럼 '스쿨미투'에 대한 마침표를 대법원 판례를 통해 찍게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기대도 된다.  스쿨미투를 통해 학생들이 용기를 낸 만큼 (대법 판결 이후) 이제는 그 용기를 당국이 가져야 할 때라고 생각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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