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승국 칼럼] 공정하다는 착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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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양승국 변호사, 법무법인 로고스 제공]

<정의란 무엇인가>의 저자 마이클 샌델이 새로 낸 책 <공정하다는 착각(The Tyranny of Merit)>을 읽어보았다. 책은 미국판 입시부정 이야기로 시작한다. 2019년 3월 연방 검찰이 발표한 바에 의하면, 33명의 부유한 학부모들이 명문대에 자녀를 집어넣기 위하여 교묘히 설계된 입시부정을 저질렀다는 것이다. 우리나라도 이른바 ‘조국 사태’라 불리우는 입시부정으로 한창 시끄러웠는데, 미국에서도 그와 비슷한 입시부정으로 시끄러웠던 것이다. 그리고 미국에서도 평등을 주장해오던 진보주의자들이 이런 부정을 저질렀다고 한다.

그동안 미국이라고 하면 굳이 대학을 가지 않아도 자기만 열심히 노력하면 성공할 수 있는 나라, 누구에게나 기회가 열려있어 누구나 재능이 이끄는 만큼 높이 올라갈 수 있는 나라로 인식되어 왔지 않은가? 그런 미국도 지금은 대학이라는 간판, 그것도 명문대학이라는 간판이 없으면 성공하기 힘든 나라가 되었나보다. 미국이나 한국이나 비단 입시부정까지 가지는 않는다고 하더라도 입시 스펙을 쌓고 다듬기 위해서, 또 학력을 높이기 위한 사교육비 등으로 고액의 돈이 들어간다. 또한 고급 입시정보나 기회는 모든 이에게 동등하게 열려있는 것이 아니다. 그리하여 미국 아이비리그 대학생 2/3 이상이 소득 상위 20% 이상 가정 출신이며, 프린스턴과 예일대학에는 미국의 소득 하위 60% 출신 학생보다 상위 1% 출신 학생이 더 많다고 한다. 그리고 상위 1% 출신이라면 아이비리그 대학에 진학할 가능성이 하위 20% 출신보다 77배나 크다고 한다. 우리나라 또한 어렵게 고학을 하며 명문대를 다니는 학생들은 점점 드물어지고, 캠퍼스에는 여유있는 집안의 학생들이 넘쳐난다.

즉, 누구에게나 기회는 열려있다고 하지만, 기실 그것은 공정하다는 착각이다. 기회는 누구에게나 공정하다고 하는데, 이미 하위계층의 아이와 상위계층의 아이는 그 출발선상이 다른 것이며, 운동장은 기울어져 있는 것이다. 그리고 보다 높은 곳으로 계층 이동을 할 수 있는 사다리는 밟고 올라가는 사다리의 간격이 점점 넓어져, 다음 칸으로 발을 올려놓으려면 용을 써도 힘들다. 심지어 요즘은 그 사다리마저 치워졌다는 얘기도 한다. 그러니 마이클 샌델은 누구에게나 기회는 공정하다는 것은 착각이라고 하는 것이다. 마이클 샌델은 공정하다는 착각은 단지 계층 이동의 사다리가 예전 같지 않다는 것만으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고 한다. 누구나 능력만 있으면 성공할 수 있다는 착각은 그렇게 성공한 사람에게는 교만이라는 독이 된다고 한다. 즉 자신의 능력으로 성공하였다며 자신이 누리는 것은 당연하다고 생각하고, 그러지 못한 사람들에게는 그건 자기 자신의 책임일 뿐이라며 사회의 뒤처진 계층에 대한 책임 의식이 없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낙오된 사람들에게도 이는 자기 자신의 능력 부족 때문이라며 스스로 열등감에 빠지게 한다고 한다. 그렇게 계층 이동의 사다리가 치워지면 계층은 그대로 굳어지고 새로운 신분사회가 되는 것 아닌가?

그렇지만 이는 그대로 사회의 불안요소가 된다. 경쟁에 낙오한 사람은 열등감에 빠질 뿐만 아니라, 속으로는 분노가 끓는다. 그리고 그 분노는 엉뚱하게도 이민자, 이주노동자, 다른 종교를 믿는 사람 등에게도 향한다. 또한 쉽게 천박한 민족주의나 극우 선동정치, 포퓰리즘 등에 빠져든다. 미국의 트럼프 대통령이 그런 백인 하위계층의 불만을 이용하여 대통령이 된 것이고, 영국의 브렉시트도 그런 하위 백인 계층이 이끌어 낸 것이다. 그리고 앞으로도 계속 능력주의하에 낙오된 사람들, 사다리를 오를 수 없다는 좌절감에 빠진 사람들을 보듬지 않는 한 이는 더욱 심해질 것이다.

이를 어찌해야 할 것인가? 모두가 꼭대기에 설 수는 없다. 누군가는 뒤쳐질 수밖에 없다. 그렇기에 이런 세상에서 뒤쳐진 사람들에게 자신의 능력이 없어서 그랬다며 열등감에 빠지게 해서는 안 된다. 각자의 자리는 각자의 자리에서 소중한 자리이며 소중하게 빛날 자리이다. 그러므로 꼭 대학에 가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어느 위치에서 어느 일을 하더라도 자신의 일에 긍지를 가질 수 있게 해야 한다. 그동안 우리나라가 그렇게 이리저리 대학입시에 손을 대었어도 성공하지 못한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대학에 들어가지 못하면 실패자로 낙인찍히는 한, 아무리 대학입시를 뜯어고쳐도 입시 부조리는 해결할 수 없다. <공정하다는 착각>의 영어 제목은 <The Tyranny of Merit>이다. 능력의 폭압, 독재라고 할 수 있겠다. 자신의 능력으로 이 자리에 있다는 교만함, 능력이 떨어진 사람은 그 자리에 있어도 싸다는 교만함이 <The Tyranny of Merit>라는 것이다. 이를 해결하지 않고서는 지금 번영하고 있는 자본주의는 큰 위기를 맞을 수밖에 없다. 공정하다는 착각을 예리하게 파헤친 마이클 샌델도 원론적 얘기만 할 뿐, 구체적이고 실현 가능성이 있는 해결책까지는 나아가지 못하고 있다. 앞으로의 세상에 우리가 풀어야 할 숙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