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용진의 異義있습니다] 공수처 ‘내사 1호 사건’에 TV조선이 얽혀든 내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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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1-06-08 08:41
수정 : 2021-06-08 13: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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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수처는 1호 사건도 참 많다. 조희연 서울시교육감의 해직교사 특채를 1호 사건이라고 대서특필되더니, 며칠 뒤에는 김학의 출국금지를 주도한 이규원 검사를 ‘검사 1호 사건’이라고 의미부여한 기사가 보도된 데 이어, 이번에는 마침내 ‘내사 1호’가 나왔다고 온통 호들갑들이다.

어찌보면 공수처야 제 할 일을 하나하나 하고 있을 뿐인데, 언론들끼리 주거니 받거니 하면서 괜히 의미를 부여하며 소란을 피우는 모양새는 아닌가 싶다.

백번양보해서 호들갑스럽게 이름표를 붙이는 것까지는 그렇다치더라도 ‘내사 1호’라는 명명법은 또 뭐란 말인가? 내사라는 것이 '내부적으로 사실관계를 조용히 살펴보고 있다'는 것인데, 그런 사안에 굳이 번호를 붙이려는 시도가 기가 찬다.

마치 행정서류 정리를 위해 붙여지는 '번호'를 사건의 중요도를 평가한 '서열' 정도로 인식하고 있는 분위기다. 검찰수사에도 ‘내사번호’라는 것이 있기는 하지만 정말 ‘내사’ 중인지 아닌지도 정확지 않은 마당에 기어코 ‘1호’라고 의미를 부여하려는 의도가 무엇인지 의심스럽다.

아무튼 굳이 ‘내사 1호’라고 하니 1호라고 치고, ‘내사 1호’ 사건이 소동의 중심이 된 것은 기자들이 얽혀 있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특정언론에서는 ‘공수처가 (기자를) 불법사찰 했다’고 흥분하고 있기도 하다.

지금까지 드러난 것을 살펴보면 이성윤 서울고검장(당시 서울중앙지검장)의 출석조사 과정에서 관련정보가 특정언론사에 유출됐는데, 그 과정을 공수처가 들여다보는 과정에서 특정언론사 기자들이 등장하게 된 모양이다. 당시 이 검사장이 과천정부종합청사 앞에서 타고 온 차량에서 내려 공수처 차량으로 바꿔타는 장면이 CCTV에 찍혔는데, 해당영상의 존재와 보유여부를 누군가가 정확하게 특정사에 제공했다는 것이 문제의 핵심인 듯하다.
 

출근하는 김진욱 공수처장 [과천=연합뉴스] 
 

이때 특정언론사는 바로 TV조선인데, 이미 지난주에 ‘공수처가 기자의 취재과정을 수사하는 등 언론자유를 침해하고 있다’는 취지의 보도까지 내보냈다. 사찰을 당했다는 주장도 있었던 모양이다. 뒤이어 중앙일보 등 타 언론사들에서 거들어 주는 보도를 내놓기 시작했다.

TV조선의 기자가 CCTV를 확보하는 과정에서 “범죄를 당했는데 필요하다”며 건물관리인에게 거짓말을 한 사실이 드러났지만 “그럴 수도 있지” 하는 반응이다.

공수처에서는 황당하다는 반응이다. 검찰에서 CCTV를 유출한 것으로 보고 검찰의 누가 CCTV를 받아갔는지를 확인했던 것뿐이라는 거다. “CCTV와 관련해 기자를 내사한 적 없다”고 적극 반박했지만 기사에는 별로 반영되지 않았다.

‘공수처 내사1호’는 이런 과정을 거치며 파문을 키워나갔다. 보기에 따라 별일도 아닌 것을 ‘사찰 운운’ 하며 소동을 키우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런데 같은 기자의 입장에서도 솔직히 뭐 별일이라고 그 난리를 부리는지 모르겠고, 그게 뭐라고 편을 들어주는 기사를 써 갈기는지도 모르겠다. 필자 역시 소싯적부터 취재현장을 뒤지고 다녔던 만큼 이해할 수 있는 부분도 있다. 보기에 ‘그럴 수도 있는 일’이라고 생각되기도 한다. 거짓말을 한 것도 이해가 되고, 사찰을 당한다고 호들갑을 떠는 것도 다 속마음이 보인다.

마찬가지로 공수처가 조사에 나선 것 역시 이해가 되는 일이다. 아니 지극히 당연한 일이다. 어느 공공기관이 내부 정보가 빠져나가는데 가만히 있겠는가? 그것이야말로 직무유기 아닌가 말이다. 그걸 해라 말아라 할 권한이 기자에겐 없고, 그걸 비난할 이유나 근거도 없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기자가 벼슬은 아니다'라는 점이다. 취재를 위해 다양한 수단을 동원할 수 있고 그걸 무작정 비난할 수는 없지만, 그와 별개로 법적 잘못을 했다면 책임을 져야 하고 피해를 끼쳤다면 배상해야 한다. 그건 당연하다. 취재 중에 일어난 일이라고 면책특권이 생기는게 아니라는 말이다. 

진실을 밝히기 위해 처벌이나 비난의 위험을 감수하기 때문에 기자라는 직업이 의미 있는 것이다. 진실을 위해 나 자신을 희생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지금 행태들은 기자라는 신분과 취재라는 명분을 내세워 제멋대로 세상을 휘젓고 다니는 걸 모두 용인해 달라는 것처럼 보인다. 

취재 중이었다는 것을 내세워 '책임면제 각서'라도 요구하는 것은 억지다. 그런 특권은 누구에게도 없다. 요즘 유행하는 말을 빌리자면 ‘공정과 정의’에 부합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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