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조산책] 변호사의 균형감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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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영민 변호사
입력 : 2022-05-27 11:00
수정 : 2022-06-04 1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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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 서영민 변호사]

필자가 지인들에게 자주 하는 말들 중 하나가 “세상에서 가장 재미있는 일은 남들이 싸우는 모습을 보는 것이고, 가장 재미없는 일은 내가 싸우는 상황에 처하는 것이다.”이다. 사실 남들이 싸우는 모습은 그 자체로서 재미있다. 지저분하고 피 터지게 싸우면 싸울수록, 살짝 걱정은 되지만 흥미는 더욱 배가된다고 하지 않을 수 없다. 반면 내가 싸우는 상황에 처하면 그것이 아무리 작은 것일지라도 불안과 긴장이 엄습해온다. 간혹 만만한 상대와 싸울 때는 반드시 이기리라는 예상에 오히려 신이 날 수도 있지만, 대개의 경우에 그렇다고 하더라도 항복이나 사과를 받기를 원하지 굳이 스스로 손에 피를 묻히는 선택은 꺼리게 마련이다.
 
변호사라는 직업을 아주 간단하게 정의하자면 타인을 대리해서 싸우는 일을 합법적ㆍ전문적으로 하는 직업인데, 다소 이중적이고 복합적인 성격을 가진다. 왜냐하면, 남들이 싸우는 모습을 보면서 동시에 그것이 위임 받은 자기의 일이 되기도 하지만, 그렇다고 하더라도 싸우는 당사자와는 엄연히 다른 입장이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니 변호사들은 남들이 싸우는 모습을 가장 가까운 거리에서 흥미롭게 관전하다가도 결과에 대한 압박, 대리인으로서의 한계, 전문직업인으로서의 책임 따위의 문제들로 인하여 문득 부담을 느끼게 되기도 한다. 여담이지만 그러한 측면에서 보았을 때는 판사가 변호사보다는 더 홀가분한 관전자의 입장이 아닐까 생각할 수도 있는데, 판사는 싸움을 중재하거나 판단하는 책무를 맡고 있으니 이 또한 만만한 일은 아니라고 할 것이다.
 
어쨌든 이와 같은 직업의 특성상 변호사들은 싸움 즉, 제도적으로 인정되는 절차에 따라 전개되는 분쟁을 당사자나 제3자와는 다른 독특한 시각으로 볼 기회를 갖는다. 쉽게 말해서, 변호사는 싸움의 당사자는 아니지만 그에 준하는 이해관계로 인하여 제3자와는 뚜렷이 구별되는 지위를 갖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하더라도 싸움 그 자체를 보는 관점은 당사자보다는 오히려 제3자와 더욱 가까운데, 왜냐하면 당사자의 주관적인 사정을 무조건 지지하기보다는 객관적인 사실관계를 파악하고 관련성 있는 법리를 적용하여 적법ㆍ타당한 주장과 항변을 전개할 것을 요구 받기 때문이다. 이러한 까닭에 변호사들은 의뢰인인 당사자의 입장과 객관화된 타자인 제3자(실무상으로는 판사와 유사한 인격체로 상정되곤 한다)의 입장, 그리고 전문직업인이자 대리인으로서의 입장을 수시로 넘나들면서 위임 받은 사건을 처리하게 된다.
 
이쯤 되면 변호사에게 필요한 덕목이 무엇인지는 누구나 금방 알 수 있다. 바로 균형감각이다. 그런데 이 균형감각은 판사에게 요구되는 균형감각과는 조금 다르다. 판사에게 요구되는 균형감각은 판단자로서 분쟁 당사자들 어느 쪽의 입장에 치우지지 않고 가상의 균형점을 찾는 것이 핵심이지만, 변호사에게 요구되는 균형감각은 당사자인 의뢰인, 객관적인 제3자, 그리고 변호사 본인 각각의 입장을 두루 고려하면서 상황에 따라 비중을 달리하는 것이 핵심이라고 할 수 있다. 의외로 고도의 전문지식과 탁월한 프로의식을 갖춘 유능한 변호사들이 본인의 신념이나 확신에 사로잡혀 열정적으로 사건을 처리하다가 낭패에 빠지곤 하는데, 이러한 균형감각을 망각한 부주의가 원인이 되는 경우가 대다수이다. 경험이 쌓여 노련해 질수록 이를 더 잘 유지할 수 있게 되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매번 다른 상황 가운데 언제나 이를 성공적으로 유지할 수 있으리라 기대하기는 어려운 노릇이다.
 
필자 또한 예외가 아니므로, 균형감각을 유지할 수 있는 독자적인 방법을 종종 사용한다. 그것은 바로 서두에 언급한 바 있는 ‘남들이 싸우는 모습을 보는 재미’를 찾는 것이다. 이는 결코 의뢰인에 대한 책임의 방기가 아니다. 비록 내가 수행하고 있기는 하지만 결국은 남의 싸움이라는 생각이 일반인의 상식을 떠올리게 만들고 당사자의 입장에 과몰입하는 현상을 막아준다. 운이 좋으면 세상에서 가장 재미없다고 느끼던 일이 어느새 상당히 재미있는 일로 확 바꿔져서 인식되기도 한다. 고가의 보수를 받고 의뢰인의 인생을 짊어진 싸움을 치른다는 부담이 때로는 마음을 짓누르기도 하지만, 세상에 쉽기만 한 일이 어디 있겠는가. 변호사의 일도 균형감각만 잘 유지한다면 꽤나 매력적인 일일 뿐만 아니라 나쁘지 않은, 솔직하게 말해서 그보다는 더 나은 성과를 거둘 수 있는 일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