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금피크제 판결 Q&A…A to Z

  • 대법 "나이만 기준으로 한 임금피크제는 무효"
  • '임금피크제 폐지·소송' 팔 걷는 노조…기업, 대응책 마련 부심
  • 법원마다 제각각인 임금피크제 판결, 혼란만 가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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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2-06-02 08:25
수정 : 2022-06-02 08: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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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월 26일 서울 중구 서울고용노동청 외벽 모니터의 고령자 계속 고용장려금 광고.[사진=연합뉴스]

“청년 일자리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야말로 우리 사회를 건강하게 만드는 토대이자 저출산 문제를 해결하는 핵심적인 열쇠라고 생각한다. 이제는 우리의 딸과 아들을 위해서 국가의 미래를 위해서 결단을 내릴 때가 왔다. 이를 위해서는 기성세대가 함께 고통을 분담하고 기득권을 조금씩 양보해야 한다”
(‘경제 재도약을 위해 국민 여러분께 드리는 말씀’중 일부)
 
 
지난 2015년 8월 6일 청와대 춘추관에서 박근혜 당시 대통령은 “임금피크제 도입을 강력히 추진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삼성, LG, SK 등 대기업들도 “대거 청년고용에 나서겠다”며 박 전 대통령의 정책에 힘을 실어줬다.
 
이에 대해 당시 한국노총과 민주노총 등은 “임금피크제는 정규직 임금을 깎아 기업에 이익을 줄 뿐 근본적인 대한이 될 수 없다. 정부가 노동시장 개악을 강행하면 총파업에 돌입하겠다”고 맞서면서 노정 갈등이 깊어졌다.
 
당시 임금피크제 소식을 접한 누리꾼들도 “임금피크제, 무슨 소리인지 하나도 모르겠다”, “임금피크제, 좋아 보이지 않아요”, “임금피크제, 취업 자리 좀 많이 만들어 달라” 등과 같은 의견을 내면서 ‘임금피크제’란 단어가 대한민국에서 유명해지게 된 계기를 마련하기도 했다.
 
그로부터 7년이란 시간이 흐른 2022년 ‘임금피크제’가 대한민국에서 다시 화두로 떠올랐다.
 
지난달 26일 대법원 1부(주심 노태악 대법관)가 “합리적인 이유 없이 연령만을 이유로 직원의 임금을 깎는 ‘임금피크제’는 고령자고용법을 위반한 것이므로 무효”라는 판단을 내놨기 때문이다.
 
대법원 판결을 두고 김용준 전국경제인연합회 고용정책팀장은 “임금삭감에 준할 정도로 업무를 적정하게 줄여줬는지 여부에 대한 판단이 노사 간에 어떻게 같을 수 있겠느냐”고 토로했다.
 
노사현장에서 대법원이 제시한 가이드라인만 가지고는 임금피크제에 대해 노사간 합의가 도출되기 어려워 경영상 ‘사법 리스크’가 불거질 수밖에 없다는 취지다.
 
반면 삼성디스플레이 노조는 대법원 판결이 난 당일인 지난달 26일 “임금피크제에 대한 회사의 입장을 설명하는 자리를 마련해 달라”는 내용이 담긴 공문을 사측에 보내기도 했다.
 
임금피크제를 계속 유지할지 등에 대한 회사 측의 공식 설명이 필요하다는 의미다.
 
이를 두고 삼성전자 사무직 노조 관계자는 “지난해부터 회사 측에 임금피크제 폐지를 요구해왔지만, 회사 측은 이런저런 핑계를 대며 난색을 보여왔다. 이번 판결로 이제는 핑겟거리가 사라졌다. 임금피크제는 폐지해야 마땅하다”라고 강조하기도 했다.

그렇다면 ‘임금피크제’란 무엇일까. 그 판결에 따른 파장은 어떨까. 아주로앤피가 자세히 알아봤다.
 
Q) 임금피크제란
A) 임금피크제는 근로자의 정년을 60세로 연장하는 대신 정년 전후부터 연장된 정년기간 동안 지급되는 임금을 서서히 줄여나가는 제도를 말한다. 일정 근속연수에 도달해 임금이 이른바 ‘피크(peak)’에 다다르면 그 이후부터는 일정 비율씩 감소하도록 임금체계를 설계하는 것이다.
 
Q) 왜 ‘임금피크제’를 만들었을까
A) 정년이 가까운 중장년 근로자는 정년을 연장하고 고용보장과 생활안정을 보장받는 대신 임금을 서서히 줄여 기업의 부담을 줄일 수 있어서다. 또 이렇게 줄어든 자금을 신규고용 창출에 활용함으로써 청년실업률을 줄여보자는 것이 목적이다.
 
Q) 임금피크제의 종류는
A) 임금피크제의 종류로는 △정년연장형 △고용연장형 △정년보장형 등으로 나뉜다. 회사마다 어떤 형태의 임금피크제를 도입할지는 사측과 노조의 협의에 따라 달라지게 된다.
 
정년연장형은 근로자의 정년을 일정 시점까지 연장하는 대신 정년의 몇 년 전부터 임금을 삭감하는 방식을 말한다. 현재 대부분의 기업에서 도입해 운영하고 있다.
 
또 고용연장형은 정년이 지난 퇴직자를 퇴직 후 3개월 안으로 계약직 등의 신분으로 재고용하는 형태로 임금을 퇴직 전에 비해 동결하거나 삭감하는 형식이다.
 
끝으로 정년보장형 임금피크제란 정년을 연장하거나 재고용하는 대신 근로시간을 연령 별로 주당 15~30시간으로 단축해 임금액을 조정하는 방식의 임금피크제를 뜻한다.
 
Q) ‘임금피크제’를 도입하면 무엇이 좋은가
A) △정년연장으로 인한 고용안정과 근로자의 생활 안정 △저렴한 인건비로 전문지식을 지닌 고령 인재의 고용으로 경쟁력 강화 △절감된 인건비로 신규인력 채용 △생산인력 부족 문제 해결 △구조조정에 따른 노사갈등 최소화 △노령인구에 대한 사회보장비용 부담 완화 △고용 창출과 실업 문제 해소 등이 장점으로 꼽힌다.
 
Q)‘임금피크제’ 단점은 없을까
A) △정년퇴직자의 감소로 인한 신규고용 축소의 가능성 △신규고용으로 이어지지 않고 임금삭감을 위한 도구로 활용될 소지의 존재 △구조조정이나 정리해고 대체수단으로 변질될 가능성 △임금 삭감에 따른 업무 집중력 저하 등이 문제점으로 지목된다.
 
Q) ‘임금피크제’ 도입률은
A) 임금피크제는 지난 2007년 말 기준 도입률이 4.4%에 불과했으나, 2013년 고령자고용법 개정을 통해 ‘60세 이상 정년’을 법제화하면서 제도 활용에 대한 논의가 활발해졌다.
 
고령자고용법 제19조 제1항은 사업주는 근로자의 정년을 60세 이상으로 정하여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으며, 같은 조 제2항에서는 사업주가 근로자의 정년을 60세 미만으로 정한 경우에는 정년을 60세로 정한 것으로 본다고 규정하고 있다.
 
특히 박근혜 정부 시절 노동 개혁의 일환으로 임금피크제 도입을 강력히 추진했고, 모든 공공기관이 2015년 말 임금피크제 도입을 완료했다.
 
민간기업도 상당수 도입했다. 특히 임금피크제는 대기업일수록, 임금이 높은 기업일수록 더 많이 도입한 상태다. 고용노동부 통계에 따르면 전체 기업의 도입 비율은 지난해 6월 말 기준으로 22%에 불과하지만, 300명 이상 중견기업은 52%(1420곳), 1000명 이상 대기업은 61.8%(330곳)나 도입했다.
 
Q) 대법원이 낸 ‘임금피크제 첫 무효’ 판결, 그 의미는
A) 대법원이 처음으로 임금피크제와 밀접한 관련이 있는 규정인 ‘고령자고용법 제4조의4 제1항’에 대한 해석을 내놓았다는 것에 그 의미를 둘 수 있다.
 
고령자고용법 제4조의4 제1항은 사업주로 하여금 ‘임금, 임금 외의 금품 지급 및 복리후생’에서 합리적인 이유 없이 연령을 갖고 노동자나 노동자가 되려는 사람을 차별해서는 안 된다고 규정하고 있다.
 
대법원은 우선 “(해당 조항은) 연령 차별을 금지하는 강행규정에 해당한다”고 전제했다. 그런 다음 “(해당 조항에서 말하는) 합리적인 이유가 없는 경우란 연령에 따라 근로자를 다르게 처우할 필요성이 인정되지 않거나 달리 처우하는 경우에도 그 방법·정도 등이 적정하지 않은 경우를 말한다”며 고령자고용법이 규정한 연령 차별의 ‘합리적인 이유’가 무엇인지 기준을 설정했다.
 
구체적으로 △임금피크제 도입 목적의 타당성 △대상 근로자들이 입는 불이익의 정도 △임금 삭감에 대한 대상 조치의 도입 여부 및 그 적정성 △임금피크제로 감액된 재원이 임금피크제 도입의 본래 목적을 위해 사용되었는지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판단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를 두고 법조계에서는 “대법원이 모든 임금피크제를 무효로 본 것이 아니라 특정 사건의 여러 사정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유효성을 판단했다”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합리적 이유가 있다면 임금피크제를 운영해도 된다는 해석이 가능하다는 취지다.
 
대법원 관계자는 “현재 다른 기업에서 시행 중인 정년보장형 임금피크제나 하급심에 진행 중인 사건 관련 개별 기업들이 시행하는 임금피크제 효력의 인정 여부는 이번 재판부가 제시한 판단기준에 따라 개별 사안별로 달리 판단될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고 전했다.
 
합리적 근거에 대한 판례가 더 쌓여야만 보다 명확한 기준이 세워질 것으로 보인다는 의미다.
 

26일 서울 시내 거리의 중년 남성.[사진=연합뉴스]

Q) 대법원이 낸 ‘임금피크제 첫 무효’ 판결, 기업에 미칠 영향은
A) 기업들은 대법원 판결이 빌미가 돼 ‘줄소송’에 휘말리지 않을까 전전긍긍하고 있는 모양새다.
 
실제 대법원 판단이 나온 직후 일부 기업 관련 부서는 대응 보고서를 마련하고 경영진에 보고한 것으로 파악됐다.
 
사측은 노조가 새로운 협상 도구로 임금피크제를 꺼낼 가능성도 염두에 두는 모습이다.
 
특히 조선·철강·자동차 등 현장 기술직 근로자가 많은 업종이 가장 영향을 받을 것으로 전망된다. 일반 사무직의 경우 대체로 정년 전에 나가는 경우가 많지만, 현장 근로자들은 정년까지 근무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현대중공업은 지난 2012년 만58세 정년을 60세까지 연장하기로 노사가 합의하면서 임금피크제를 도입한 바 있다. 생산직의 경우 59세부터 임금피크제를 적용, 그 전해보다 임금이 10% 삭감되는 구조다.
 
현대·기아차도 2015년 만 60세로 정년을 늘리고 59세에는 동결, 60세에는 10% 삭감하는 내용의 임금피크제를 시행한 바 있다.
 
포스코도 2011년 정년을 56세에서 58세로 연장하고, 59세부터 60세까지 재채용을 보장하는 조건으로 도입했다. 만 57세 기준으로 임금을 동결하고 만 59세에는 10%를 삭감한다.
 
현대차의 경우 현장직 근로자 약 4만6000명 중 2000여명이, 기아는 2만8000여명 중 약 10%에 해당하는 2800여명이 임금피크제 적용을 받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조선·철강업계도 약 10%의 현장직 근로자가 임금피크제를 적용받는 것으로 추산된다.
 
이에 더하여 최근 퇴직자들까지 소송을 제기할 수 있어, 이번 대법 판결이 ‘줄소송’으로 이어진다면 그 규모가 예상보다 커질 가능성도 있다.
 
근로기준법 제49조에서 임금채권의 소멸시효를 3년으로 규정하고 있다. 그 결과 3년 이상 지난 임금에 대해서는 청구가 받아들여지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하지만 전략에 따라 시효가 길게 인정될 수도 있다.
 
불법행위로 인한 손해배상청구 시효는 10년으로 임금채권 시효에 비해 훨씬 길다(민법 제766조 제2항).
 
만약 법원이 무효인 임금피크제를 적용한 것을 '불법행위'로 판단한다면 10년간 임금 삭감분에 대해 청구가 받아들여질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이에 대해 한국중견기업연합회는 “시행 6년을 맞는 임금피크제의 근간이 흔들리면서 정부의 적극적인 권고에 따라 제도를 도입한 기업 현장의 혼란과 임금 소송 남발로 인한 노사 간 갈등이 격화될 우려가 커졌다. 기업의 추가적인 임금 부담과 생산성 저하를 야기하지 않도록 명확한 기준을 세워야 할 것”이라고 논평을 낸 바 있다.
 

[제2기 경제사회노동위원회(경노사위) 공공기관위원회가 출범한 지난해 6월25일 서울 종로구 경노사위 사무실 앞에서 공공운수노조 주최로 열린 기자회견에서 참가자들이 공공기관의 일방적 임금체계 개편 중단과 임금피크제 지침 폐기를 촉구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Q) 대법원이 낸 ‘임금피크제 첫 무효’ 판결, 노조에 미칠 영향은
A) 이번 대법원 판결을 계기로 각급 노조들은 추가 소송·교섭을 준비하고 있는 모습이다.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법률원은 최근 각 노조에 “임금피크제 도입을 위해 교섭을 진행 중인 사업장은 이번 대법원 판결 취지를 충분히 고려해 재검토하라”며 “이미 임금피크제를 시행 중인 사업장도 폐기 등을 위한 특별 교섭 요구안을 준비하라”고 전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국노총 역시 “현장지침 등을 통해 노조 차원에서 임금피크제 무효화 및 폐지에 나서도록 독려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이번 대법원 판결을 근거로 사측과의 협상에서 유리한 고지를 선점하겠다는 의미다.
 
Q) 그렇다면 임금피크제는 무조건 무효일까
A) 법원은 사안에 따라 다르게 판단하고 있다.
 
지난 27일 서울남부지방법원 민사합의 13부(재판장 홍기찬 부장판사)는 한국전력거래소 직원들이 회사를 상대로 청구한 임금 소송을 기각한 바 있다.
 
지난 2016년 한국전력거래소는 일반직 직원의 정년을 58세에서 60세로 연장하는 대신 정년 연장 구간의 임금을 이전의 60%로 줄이는 것을 골자로 한 임금피크제를 설계한 후 시행했다.
 
이에 대해 담당 법원은 우선 “고령자고용법 개정으로 회사는 정년 연장에 따른 임금체계 개편 등 필요한 조치를 취할 의무가 있었다”고 전제했다.
 
그러면서 “임금피크제가 시행되더라도 직원은 기존의 정년 구간까지는 종전의 임금을 그대로 지급받고, 정년이 연장된 구간의 경우 직전 임금의 60%를 지급받는다”며 “임금피크제 도입으로 인해 직원들이 어떠한 불이익을 입게 됐다고 볼 수 없다"며 사측의 손을 들어줬다.
 
정년연장형 임금피크제를 유효한 것으로 본 것이다.
 
하지만 정년연장형인데도 임금피크제가 무효라고 판단한 사례도 있다.
 
지난 2009년 대교는 정년을 2년 연장하는 대신 이르면 40대 중반부터 임금 삭감률이 30~50%에 이르는 수준의 임금피크제를 시행했다.
 
이에 대해 서울고등법원은 “일정 연령에 도달했는지 여부만을 기준으로 임금을 깎는 것은 합리적이지 않다”며 노조의 손을 들어줬다.
 
반면 지난 1월 선고된 인천환경공단 임금 소송에서 담당 재판부는 “57세부터 임금을 깎고 감액률은 10~15% 수준인 임금피크제”는 유효하다고 판단했다. 정년유지형 임금피크제를 도입해 운영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회사가 승소한 것이다.
 
지난해 12월 산업인력공단 역시 정년유지형 임금피크제가 적법하다는 판결을 받은 바 있다.
 
이에 대해 기업들은 “정부에서 컨설팅이라도 해달라”고 요구하고 있다.
 
재판부마다 제각각인 판결에 가이드라인도 제시하지 않는 정부 행정으로 기업들의 부담만 가중되고 있는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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